경기도 포천시 선단동 산 11번지에 가면 이조 말 철종의 생부인 전계대원군의 묘가 있다. 일반적으로 대원군이라면 누구나 흥선대원군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대원군이란 호칭은 왕이 된 아들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로 선왕의 후손이 없어 방계가족 중에서 누군가 왕위에 올랐을 때 그 왕의 아버지에게 붙여진 호칭이다. 조선조에서 대원군은 모두 4명으로 그들의 묘소는 전부 경기도에 있다. 선조의 생부인 덕흥대원군과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묘는 남양주에 있고 인조의 아버지 정원대원군은 김포에 있다.    전계대원군(1785~1841)은 조선조 21대 영조의 증손자이며 사도세자의 손자가 되는데 사도세자와 숙빈 임씨의 아들인 은언군, 은신군 두 아들 중 은언군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25대 철종은 은언군의 손자가 되고 26대 고종은 또 둘째 은신군의 증손자가 된다. 전계대원군의 할아버지인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고, 아버지 은언군은 역모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으며 본인 역시 그 영향으로 강화도에 유배되어 일평생 가난한 농부로 생활했다. 빈농의 아들인 철종(이원범)은 아버지와 함께 농사일로 강화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분명 왕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글자도 모르는 까막눈이었다.    이조 말 안동김씨와 풍양조씨의 세도정치 하에 똑똑한 왕족들은 그들이 정권을 유지하는데 걸림돌이 되었으므로 어리석고 못난 자만이 생명을 부지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1849년 24대 헌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안동김씨들은 그들의 뜻대로 정권을 이어가고자 어리석은 철종(이원범)을 왕좌에 올려놓고 세도정치를 이어나갔다. 덕분에 아들 원범이 철종으로 즉위하게 되자 아버지를 전계군에서 대원군으로 추봉하였고, 1841년 58세로 세상을 떠나 양주 땅에 묻혀있던 아버지(이광)를 1856년(철종7)에 현재 포천군 선단리로 이장해왔다. 묘역의 봉분하단에는 호석을 둘렀고 앞쪽으로 묘비와 상석, 향로석, 장명등, 망주석 무인석 등을 갖추었으며 주변에는 곡장을 둘러 왕릉에 버금가는 묘역으로 크게 조성하였다. 이 묘는 전계대원군과 그의 첫째부인인 완양부대부인 최씨의 합장묘이고, 둘째 부인이며 철종의 생모인 용성부대부인 염씨는 이 묘소를 기준으로 좌측 동쪽 약 2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곳의 산세는 한북정맥의 줄기인 해룡산(661.2m)에서 왕방산(736.8m)으로 넘어가는 중간 돌탑봉에서 남쪽으로 하나의 지맥을 뻗어 주산을 일으키고 계속 내려와 금형체의 현무봉을 만들고 그 아래 용진처에 묘소가 있다. 주산은 그 모양이 소의 뿔처럼 생긴 고축사로 귀한 산이다. 풍수고서 『人子須知』에서는 혈장주변에 고축사가 있으면 제상 또는 왕의 은총을 받아 부마가 태어난다고 하였다. 혈장 좌우에는 청룡백호가 나름 감싸주고 있으나 현무봉에서 혈장까지 내려오는 용맥은 별 지현굴곡이 없이 그냥 내려온 지맥이라 혈장에 지기가 그다지 왕성해 보이지는 않는다. 안산은 둥그스름한 아미산으로 그 모양이 아름다우나 혈장의 정면에서 약간 벗어났고 또한 거리감이 있어 혈장의 장풍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수세는 좌선룡에 우선수로 합법하고 좌향은 해좌사향(亥坐巳向)으로 동남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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