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이 깃든 선물을 대하노라면 가슴에 온기가 돈다. 그것엔 주는 이의 따뜻한 마음이 담뿍 담겨 있어서다. 어느 문인이 건네준 선물인 화장품 역시 그렇다. 그것을 얼굴에 바를 때마다 그녀의 따순 정을 피부로 느끼곤 한다. 십 수 년 전부터 외도로 평론을 집필했다. 이 때 평소 친교와 무관하게 좋은 작품을 엄선, 평설의 텍스트로 다루었다. 당시 그녀 작품도 필자 평문에 언급됐다. 이렇게 꾸려온 평론들을 집적集積, 얼마 전 제2 평론집 『해석의 의미, 다름의 가치』를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이 저서는 자비로 출간하였다. 즉 이 말은 모 재단에서 베푸는 예술인들을 위한 문예기금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 한다. 필자의 경우 그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문단 입문 30 여 년 동안 몇 번 문예기금을 받지 못했다.   이런 사정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출판사에선 필자 책 발간 비를 배려해 줬다. 덕분에 어렵사리 이번 평론집을 발간할 수 있었다. 이런 필자 형편을 잘 아는 그녀였다. 자신의 수필 작품에 대한 평문을 필자가 집필해 주고 평론집에 수록해 준 것에 대하여 고마움을 표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사실 문인들은 글 한편 창작하는 일이 피를 말리는 일이기도 하다. 애써 쓴 글들이 그야말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땅의 많은 문인들은 세속의 욕망과는 거리가 먼 순수 문학을 지향하며 스스로 글 감옥에 갇히곤 한다.   어찌 창작의 고통만 수반되랴. 문인들이 자신의 저서 한 권 발간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글 한편 쓰기도 어려운데 수많은 글을 창작하여 책을 발간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무엇보다 경제적 부담이 큰 것도 그 원인 중 하나이다. 이런 경우는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예술인들의 창작 의욕 고취와 어려움을 해소 시켜주는 복지 차원인 문예기금 혜택 이다. 하지만 이것의 손길을 제대로 못 받는 그야말로 사각 지대에 놓인 문인들이 다수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어찌 보면 이 문예기금 수혜 선정은 많은 문인들에겐 유일한 희망이기도 하다.   작년 이 맘 때 세상을 뜬 배우 강수연의 제 1주기 추도회를 개최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디 이뿐이랴. 마이클 조던이 신던 농구화가 한화로 29억 원이라는 최초 고가로 경매에서 낙찰 됐다는 뉴스도 전해졌다. 유명 운동선수가 경기장을 뛸 때 신었다는 이유 치고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신발이다. 운동화는 온갖 오염된 물질과 땀으로 범벅된 특유의 발 고린내마저 풍기는 물건 아니던가. 농구 황제라 일컫는 마이클 조던이 평소 지닌 체취와 땀이 오롯이 배었다는 이유만으로 이것이 고가를 지녔는지는 모르겠다.   29억 원이라는 돈은 서민에겐 평생 만져 볼 수 없는 거금이기도 하다. 물론 연예인인 배우, 세계적 농구선수인 마이클 조던, 이 들 모두가 대중들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온 유명인인 것은 익히 안다. 그들이 남긴 예술적 족적이나 운동선수로서 대중에게 미친 공로를 추앙하기도 하고 예술혼을 추모 하는 일은 매우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반면 문인들에 대한 세인의 평가는 어떤가? 때론 칼보다 강한 게 펜의 힘이다. 문인들이 창작한 한 편의 시, 수필, 소설 등의 문학작품 역시 연예인이나 농구 선수가 지닌 유명세 못지않은 강한 파급력을 지녔다. 십 수 년 전 필자가 모 신문 칼럼난에 배가 안 부른 초기 임산부도 보호, 이들을 위한 지정 좌석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투고한 적 있다. 대중교통에 초기 임산부 좌석 배치를 건의하는 글이 신문에 게재된 후 일이다. 우연의 일치일진 몰라도 얼마 안 돼 정부에선 임산부 좌석을 전철 및 버스에 마련하기도 했다. 이렇듯 문인이 쓴 글 한편이 세상의 오류 및 모순을 바로잡고 탁류도 정화 시키며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겐 따뜻한 위안과 눈물을 닦아 주는 손수건 역할도 한다. 그러나 어디를 둘러봐도 이런 사회적 공헌을 하는 문인들이 설 자리가 변변치 않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만 살펴봐도 문인 전용 방송 채널도 없다. 심지어 애써 창작한 작품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그나마 다행히 유명 문인들의 문학적 성취를 기리는 문학관은 곳곳에 설립된 것으로나마 위안을 삼아야 할까보다. 하긴 요즘 종이책이 제자릴 잃고, 전자책이 그 자릴 차지하는 세태다. 물론 교술 문학 특성을 지닌 수필이 독자의 독서 충족 욕구인 읽는 재미를 완벽하게 채워주진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엇보다 현대인들은 독서를 즐기지 않는다는 데에 수필 문학이 외면당하는 원인이 있노라고 서러운 자위마저 해본다. 그러나 가슴을 흔드는 한 줄의 명 시, 명 소설, 명 수필 등의 문학 작품이 수두룩하다. 이렇듯 애써 쓴 문인들 작품이 한낱 발 고린내 물씬 나는 농구 선수 운동화 한 켤레 만큼도 대중들로부터 평가를 못 받아서야 되겠는가? 문인들이 사회로부터 이런 처우를 받는 현실이 서글퍼서인지 이글을 쓰는 데 도통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