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부자(富者)는 남다른 지혜와 슬기를 지닌 사람들이다. 오랜 세월 동안 대를 이으며 더 큰 부자가 되거나 그 명맥을 유지해온 가문은 말할 나위가 없다. 세계적으로도 부를 가장 오래 누린 것으로 알려진 경주 최부잣집 신화는 그런 지혜와 슬기를 방증한다. 최부잣집의 전통은 오늘날의 부자들뿐 아니라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경주 최부자 가문에는 후손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여섯 가지 `가훈`을 비롯해 어려워졌을 때의 처신술을 제시한 `육연`, 가정에서 지켜야 할 도리를 담은 `가거십훈` 등 유훈이 한결같이 떠받들어져 왔다고 한다.   고운 최치원의 후손인 이 가문은 10대에 걸쳐 300년 동안 부를 지켰으며, 사회 환원으로 마감한 전설적인 부자였다. 9대에 걸쳐 줄곧 진사를 지낸 `지식인 양반 부자` 집안이었으나 지탄의 대상에서는 언제나 자유로웠다. 정당하게만 부를 축적하고, 그 부를 적절히 사회에 되돌리기도 했기 때문에 존경받았다.   마지막 부자였던 최준은 나라를 위해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투사 안희제와 협력해 백산상회를 만들고, 이를 통해 은밀하게 막대한 돈을 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으로 제공했다. 인재 양성을 위해 1947년에는 대구대학(`삼성`에 넘겨졌다가 1967년 청구대와 통합돼 영남대학교가 됨)을 설립해 모든 재산과 서책들을 이 재단에 기탁했다.   오래전이지만, 이런 내용을 소상히 다룬 경영학자 전진문의 `경주 최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민음사)을 단숨에 읽은 적이 있지만,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 경주 최부자는 당대뿐 아니라 먼 후손과 이웃에 이르기까지 펼쳐지기를 꿈꾸는 `아름다운 비전`이 있었고, 그 후손들은 묵묵히 그 비결들을 지키면서 시대 흐름에 맞게 개선해 부(재산)를 유지했다.   속담에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지만, 최부잣집 가문의 선조는 부 유지의 `위대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 후손들의 `숨은 노하우`도 신비한 비밀의 DNA에 녹아 있었다.   그 비결은 바로 청렴한 선비정신과 투철한 국가관, 충절과 애민 정신에 뿌리를 두는 데 있었다. 빈민 구제를 통한 재산의 사회 환원도 크게 돋보이는 대목이다. 특히 가훈에 나타난 경영철학은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도 여전히, 어쩌면 더욱 소중한, 일깨움을 안겨준다.   그 첫 번째 덕목은 근검절약 정신이다. 물건을 아껴 쓰고 이웃에 나누어 준다든가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라는 가훈은 그런 정신의 소산이다.   두 번째 덕목은 재산을 모으는 과정에는 정당성과 도덕성을 담보로 했다는 점이다. 처음으로 부를 일으킨 최국선(1631~82)에서 마지막 부를 누렸던 최준(1884~1970)에 이르기까지 흉년 때 굶주리는 사람들을 구제했다는 기록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그 실천 덕목이 가훈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에 잘 나타나 있다.   이익 추구를 위해서는 무차별 인수, 합병을 일삼는 부자들의 약육강식 논리와는 사뭇 달랐다. 또한 가훈 `재산은 만 석 이상 지니지 마라`가 말하듯, 적정 이윤만 도모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주지 않았다.   조선조는 양반 신분 유지가 곧 부의 유지 조건이었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란 가훈은 그래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학문을 해서 양반반열에 오르되 벼슬길에 오르지 않은 데는 부의 지속에는 정치적 중립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지혜의 소산이다.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거나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가 가훈도 휴머니티의 발로이면서도 불만 세력을 잠재우는 전략이었을 것이다.   재산 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운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정치는 금력을 이용하고, 재력가는 금력으로 세력을 매수하려 했다. 이권을 얻어 더 많은 부를 얻으려고도 했다. 그러나 정경유착으로 이룬 부는 오래지 않아 정치적 적들에 의해 파멸에 이르게 마련이었다.   성서에 `부자가 천국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기록돼 있다. 부유해질수록 마음은 가난해지는 사회, 부익부 빈익빈을 넘어서는 정당성과 도덕성이 받들어지는 사회는 아직도 멀기만 할까. 부자 예찬하기보다 오늘의 사회가 바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경주 최부잣집 이야기를 새삼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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