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은 누구나 순수한 가슴을 지녔던 시기다. 하지만 잊을 수 없는 흑색 추억도 있기 마련이다. 그 기억을 더듬어보면 요즘도 빈번히 일어나는 학교 폭력, 왕따 현상이 그것이다.   당시엔 학교마다 일명 ‘통일 동산’이라는 장소가 자리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쉬는 시간이면 학생들이 삼삼오오 이곳 후미진 곳으로 모였다. 그리곤 한 학생에게 머리에 양은 양동이를 씌우고 번갈아 가며 손바닥으로 두드리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이런 폭력을 일본어를 빌어서 ‘이지메’ 라고도 불렀다. 이런 일에 가담하는 학생들은 공부는 뒷전이었다. 시간만 나면 아이들 괴롭히는 일에 주력 했다. 그들 중 몇몇은 화장실에 숨어서 담배도 뻐끔거렸다. 불량 학생이었다. 집단의식이랄까? 이런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 역시 일부 학생들에게도 고스란히 답습 되곤 하였다. 우리 반에도 왕따 및 폭력을 자행 하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 집안도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며 내성적인 성격 탓에 말수도 적은 아이가 그들의 표적이었다. 수업 시간엔 늘 그림자처럼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아이였다. 들고 다니는 책가방마저 버거워 보일 정도로 체구도 왜소하고 야윈 아이였다. 주위에 친구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 사이에 따돌림을 당하곤 했다.   그러나 어느 가을 날 갑자기 이 아이가 임팔라 사슴으로 돌변했다. 마침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이었다. 여행 경비가 부담돼 못 올 줄 알았다. 그런데 어인일로 집결지에 일찍 당도해 버스 안 맨 앞좌석에 앉아 있었다. 이것을 본 반에서 대장격인 한 아이가 버스에 오르면서 마시던 사이다를 갑자기 그 아이 머리 위에 쏟아 부었다. 그리곤, “ 야, 너 네 엄마 비상금 몰래 털어 수학여행 가냐?” 라며 빈정거리며 뒷좌석으로 갔다. 머리에 사이다 세례를 받자 그 아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비척이며 버스 통로로 나서는가 싶더니 맨 뒷자리로 방향을 틀었다. 이 순간 그 애의 표정은 여느 날과 현저히 달랐다. 그날처럼 험악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버스 안 뒷자리에서 아이들과 키득거리며 잡담을 나누던 대장에게 갑자기 성난 황소처럼 돌진했다. 그리곤 그 아이의 팔뚝과 귀를 힘껏 물어뜯었다. 그 애가 졸지에 공격을 당하자 버스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일로 반 아이들은 수학여행 기분이 엉망이었다. 대장 아이가 병원으로 실려 가기도 했다. 임팔라 사슴이 되었던 그 애 또한 선생님께 호된 꾸중을 듣고 버스에서 내려야 했다. 사이다로 젖은 몸이 마르지도 않은 채로 말이다.   필자가 그 애를 임팔라 사슴이라고 호칭 하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평상시엔 그악스럽고 언행이 거친 대장 앞에선 옴짝 달싹도 못하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은 완전히 딴 얼굴이 되었잖은가. 그야말로 그 날 그 애의 행동은 마치 맹수와 같았다고나 할까? 사실 우리 상식으론 표범, 호랑이, 사자 등이 야생 동물 가운데 가장 무서운 짐승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어느 문헌에 의하면 아프리카 정글 지역 현지에선 의외의 짐승을 가장 사나운 동물로 손꼽는단다. 그 동물은 다름 아닌 맹수들에게 가장 손쉽게 잡아먹히는 임팔라 사슴이라고 한다.   순하디 순한 짐승이 맹수로 둔갑하는 이 배리背理를 우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선 임팔라 사슴들이 삭막한 황야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의 강한 집단행동에 의해서다. 그러나 이 가공可恐할 행동을 하는 사슴은 다르다. 이 집단에서 소외당해 외톨이 신세다. 이렇듯 집단으로부터 왕따 당한 임팔라 사슴은 자기 방어기제 방편으로 어떤 동물이든 위험을 느끼면 날카로운 뿔을 무기삼아 저돌적으로 대든다는 것이다. 이런 특성을 잘 알고 있는 덩치 큰 코끼리는 멀리서 임팔라 사슴을 발견하면 피하고 사자마저도 두려움을 느껴 회피 한단다. 이는 집단으로부터 소외의 아픔을 동물 심리 측면에서 입증해주고 있는 사례가 아니고 무엇이랴. 인간도 매한가지 아닌가. 지난날 임팔라 사슴이 된 그 아이 행동에 비추어 볼 때 인간도 동물과 다름없다는 유추를 해본다. 그 애는 평소 얼마나 학교생활이 힘들었을까? 그때는 필자 역시 무심히 그 아일 대했었다. 돌이켜보니 필자라도 다정히 대해줄 것을 하는 후회가 앞선다. 요즘 학교 폭력이 사회 문제로 대두 되고 있다. 또한 직장 및 학교 등지에서 여전히 집단 따돌림이 성행하고 있다. 예전과 달리 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한 현대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조금치도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사회적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느낌이다. 이기심 팽배로 타인을 존중하고 아끼는 일엔 인색해진 탓일까? 내 자신이 소중하면 타인의 인권도 중히 여겨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사회적으로 임팔라 사슴의 등장을 막는 일이다. 임팔라 사슴처럼 단절과 소외에 시달리면 자칫 집단에서 버림받았다는 트라우마가 정신적 분열기질을 일으키는 병소病巢로 작용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는 불특정 사람들에게 보복 심리를 지닐듯하여 우려마저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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