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록’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본 적 있습니다. 절해고도(絶海孤島) 무인도에 자리한, ‘더 록’이라고 불리는 감옥이 배경인데 내가 좋아하던 배우 숀 코네리가 주연을 맡았단 것 말고는 별다르게 기억에 남은 내용은 없습니다. 다만 한 번 수감되면 절대로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그 감옥 섬이 ‘알카트라즈’라는 실제 섬이라는 배경 지식만은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아무리 흉악범이라 해도 사방이 깎아지른 절벽인데다가 아래로 흐르는 거센 조류에 빠지면 절대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섬에서 같은 처지의 죄수와 감시하는 간수 외는 아무도 만날 수 없는 무기수(無期囚)로 시간을 보내도록 한다는 것은 참 잔인한 일이라는 감상이 들더군요. 몸이 갇힌 것보다 세상과는 영원히 단절된다는 현실이 더 잔인한 형벌 같더군요. 인간에게서 ‘희망’을 탈취해가는 것만큼 큰 형벌이 없을 거니까요.   몇 주 전, 그 섬을 샌프란시스코 바닷가 카페에 앉아서 대면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망망대해의 절해고도가 아니라는 것과 지금은 감옥 섬이 아니라 관광지라는 사실이 의외였습니다. 알카트라즈 섬은 샌프란시스코 해안에서 기껏 2km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지만 이 해안은 상어가 많고 수온이 낮은데다가 조류가 빨라서 비록 수십 미터의 절벽으로 둘러싸인 섬을 빠져나온다 해도 맨몸으로 헤엄쳐서 탈출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려졌습니다. 밤이 되면 샌프란시스코의 환한 불빛들을 재소자들이 갇힌 방 창문으로 건너다 볼 수 있어, 갇힌 자의 괴로움을 더 키워놓았다고 합니다. 날개가 꺾여 날 수 없는 죄수들이 갇힌 섬 이름이 스페인어로 ‘펠리칸 새’를 의미한다는 것도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이 섬은 원래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채집과 수렵을 하던 장소였지만, 1800년대 미 정부가 여기에 군사 기지를 지었다가 점점 교도소의 기능이 추가되었다고 합니다. 운영 비용의 문제로 교도소가 폐쇄된 후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 아메리카 원주민 활동가들이 이곳을 점령하여 백인들이 인디언들에게 거저 빼앗다시피한 인디언들의 땅을 되찾으려는 운동의 활동 기지로 삼았습니다. 비록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이 운동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요구하는 권리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미국 내에서도 인디언이라는 명칭은 사용이 기피되고 아메리카 원주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의 미국 땅의 주인은 오래 전부터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 온 원주민들의 것이었습니다. 부족 단위로 공동체를 이루어 살며 그들 고유의 문화를 누리던 그곳에 유럽에서 이주해 온 백인들이 들어와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거나, 혹은 빼앗다시피한 가격으로 그들을 몰아내고 주인 노릇을 하게 된 것이지요. 원주민들은 조상들의 땅을 지키고자 애를 썼지만 문명이란 이름의 야만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럽에서 옮겨온 질병과 무자비한 학살로 원주민의 수는 급격히 줄어갔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조차 미국 정부의 정책으로 고향을 떠나 황폐한 황무지로 강제 이주를 당하고, 수 천 km 떨어진 곳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또 많은 이들이 죽어갔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시민권이 주어진 것이 1928년이지만, 이후에도 여전히 그들에 대한 인종차별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합니다. 미국 정부는 소위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 명분으로 강제 이주된 원주민들을 일정한 지역에 다시 배치하여 그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했지만, 미국에 세금을 내지 않는 댓가로 그들에게 전기나 수도와 같은 기초적인 삶의 편의성부터 투표권 제한 등과 같이 미국 국민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와 혜택에서 철저히 배제하였습니다. 그 결과 자치구역 내 원주민들의 빈곤과 실업률이 매우 높고 상당수가 마약과 알콜 중독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한 예로 나바호족 자치구인 애리조나의 풍경이 관광객에게는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운 곳이지만, 온통 붉은 사암 언덕과 붉은 황무지뿐인 곳에서 그들은 마실 물과 전기가 부족하고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일 외에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평균적인 미국인보다 훨씬 빈곤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한 때 베스트셀러였던 책 ‘총, 균, 쇠’에서 저자는 문명의 발달 수준이 차이가 나는 것은 지리적, 환경적 요인에 의한 것이지 인종별 선천적 능력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지정학적 조건과 기후나 토양 등의 환경적 조건이 불리한 곳에 터를 잡고 살아서 문명이라는 이름의 야만을 일찍이 터득하지 못한 것이 죄라면 죄라 할까요? 어떤 문명이 자신보다 열악한 다른 문명을 힘으로 누르고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것이 식민주의라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백인의 식민 지배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골든게이트가 보이는 아름다운 해안에서 알카트라즈 섬을 바라보다 생각이 너무 멀리까지 뻗어나간 것일까요? 하지만 나바호자치구에 속하는 엔텔로프 계곡의 숨막히는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현실이 자꾸 생각나 안타까운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땅의 주인이었던 이가 보호라는 명분으로 제한된 구역에서 국민으로서 누릴 권리로부터도 소외된 삶을 산다는 사실이 알카트라즈 섬을 떠올리게 할뿐이었습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