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 어머니의 가정교육은 지금도 삶에 매우 주효奏效하다. 매사 융통성 있게 생각하는 장점이 그것이다. 지난날 어머닌 우리들에게 사고의 확장성을 누누이 강조했다. 이런 어머니 밥상머리 교육은 편협 된 사고를 배제하고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성향 탓인지 학창시절엔 소설가의 꿈을 꿨다. 소설은 다 알다시피 생각의 획일성과 고정관념을 거부하는 문학 장르다. 이렇듯 소설 창작을 꿈꾼 것은 통제되고 고착된 이성 체계에서 탈피, 불확실성과 우연성이 지배하는 내밀한 삶의 비밀에 한껏 접근하고 싶어서다.
 
뿐만 아니라 소설은 비록 허구일지언정 우리네 참된 모습이 내용 속에 용해돼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연극 무대요. 인간은 그 위에 배우”라는 세익스피어의 말이 아니어도 인간 삶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여러 겹 가면을 쓴 얼굴, 온갖 욕망으로 점철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런 인간의 파행적인 일면이 어떻게 개인과 사회를 도덕적으로 마비시키고 정신적으로 붕괴케 하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 한 편의 소설을 통해 세상사를 세세히 그려내는 일에 주력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꿈은 아득히 멀어지고 말았다. 오늘날 수필과 평론만 집필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그 꿈은 접지 못한 상태다. 이는 인간이 지닌 모순과 오류, 선과 악을 제대로 그려내는 소설의 매력에 매료 돼서이다. 인간사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소설은 이 점을 주장하기도 한다. 사실 인간 삶은 과학적인 통계 및 냉철한 합리성, 객관적인 진리에 의해서만 꾸려지진 않잖은가.
  인생길에선 때론 예기치 않은 기적과 마주하기도 한다. 미처 예상치 못한 역경 및 고난을 만나 비애悲哀도 맛보잖은가. 소설은 이렇듯 인생은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이끌려 영위된다는 점을 우리들에게 시사해주는 힘을 지녔다. 소설이 지닌 특성을 열거하노라니 여고 시절 읽었던 한 편의 글이 문득 생각난다. 나도향의 소설「물레방아」가 그것이다. 이 소설을 읽고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고뇌한 적 있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표면적으론 사회 계급 간 갈등과 대립을 표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간 본성에 초점을 맞췄다. 인간관계 균열이야말로 모든 비극의 단초가 된다는 사실을 제시하는 게 이 소설 특징이기도 하다.
  이 소설 주인공 이방원의 살인은 1920년 당대 신경향파 소설에서 표현했던 것과는 색다른 형태다. 지주인 신치규의 계급에 따른 적대 관계 및 가난에 대한 복수 중심이 아니다. 이방원 아내와를 둘러싼 치정 관계가 불러온 극단적 표현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과 갈등도 내재 됐다. 작가는 신치규의 추악한 육욕肉慾과 아내가 보인 물질에 대한 탐욕에 기인된 인간성 타락을 소설 주제로 삼았다. 특히 이 작품은 탐욕의 파탄이 주조主潮이다. 아울러 일제강점기 때 우리 농촌이 지닌 가난과 전통적인 성윤리 의식 변질이 빚는 갈등 고조로 맞게 된 이방원과 그의 아내에 대한 비극이다. 신치규 첩이된 아내를 칼로 찌르고 이방원 자신도 함께 죽음을 선택했잖은가. 이로 보아 물질과 인간 본능의 함수관계에 대한 작가적 인식과 관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말 할 수 있다. 한편 ‘물레방앗간’이라는 배경 설정은 이 소설을 성공으로 이끌게 한 에로티시즘의 상징물이 되고 있어서 매우 인상 깊다.
 
이 소설에 대하여 새삼 부연敷衍을 한 연유는 요즘 세태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과 어느 면은 맞물렸다는 생각에 의해서다. 이즈막 곳곳에선 흉기 소지자가 늘어나고 있다. 살인을 예고하는 글들이 인터넷을 도배 하는가 하면, 벌건 대낮에 젊은 여성이 공원에서 강간당한 후 사망하기도 했다. 또한 정치인들의 비리 사건이 뉴스에선 연일 보도 되고 있는 실정이다. 세상이 흉흉하고 사회 지도자층에 대한 신뢰도가 점점 땅에 떨어져서인지 세상 살맛이 안 난다. 이런 형국에 정치인들이 걸핏하면, “사기꾼이 쓰는 소설 이다.”라는 말로 정치 공세를 퍼붓는다. 이는 아마도 소설은 허구라는 인식 때문인 듯하다. 즉,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이 진실을 토로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거짓을 꾸민다는 의미 아닌가. 하지만 맡을수록 구린내가 진동하는 정치인들 부정부패에 문학의 한 장르인 소설을 빗댄다는 것은 왠지 썩 달갑지 만은 않다. 물론 한 편 소설 속엔 복잡하고 미묘한 인간 삶의 음영陰影이 짙게 드리워지는 게 사실이긴 하다.
  요즘 세상이 온갖 범죄 온상이 되어서인가보다. 사회가 그다지 밝지만은 않다. 이 일에 정치인들의 행태도 한몫 거든다고나 할까. 정치인의 비리 등은 엄밀히 따진다면 양심을 속이고 물질에 눈 먼 짓거리가 아니던가. 이런 면에선 정치인들이 자주 쓰는, “사기꾼이 쓰는 소설” 운운도 영 틀린 말은 아닌 성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