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유식하게 만드는 것이 학문인데 '무식한 학문'이라 하면 당연히 형용모순이 되겠지만, 어쩌다가 우리가 그런 모순된 세상을 만든 것일까?
지금 고위직 공무원이나 정치인들 중에 학벌이 나쁜 사람은 흔치 않아 보인다. 예전에는 학력이 높다하면 곧 지식인이요 인격을 갖춘 사람, 그러니까 학력과 지식과 인격을 등치시켜 보았기에, 사회적 행세나 지위를 가지기 위해 너도 나도 스펙 획득, 스펙 쌓기에 몰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누가 보아도 화려한 스펙을 가진 사람들이 고위직을 누리며 행하는 작태나 무식이 점입가경이라. 이제 그야말로 학력과 지식과 인격의 괴리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아닌가 한다.
 
흔히 무식이 죄인가? 라고들 하지만, 공적인 지위가 없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일는지는 몰라도, 중요한 사회적 지위를 가졌거나 공직자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경(經)에 이르기를, 지극한 어리석음이 만악(萬惡)의 근원이라 하였으니, 반드시 유식해야 할 자리에 무식한 자가 유식을 가장하고 앉아 있다면, 그것은 만인(萬人)을 기만하는 행위와 다름 아닌즉 범죄와 무엇이 다를까?
 
먹지 않고 변을 볼 수 없듯이, 배운 바 없고 경험하지 않은 일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일찍이 지식이란 상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중견기업의 CEO 시절, 사원 채용에 이력서를 보지 않았으며, 대면 상담으로 응시자의 사람됨을 가늠하되 오로지 실기시험을 통해 당락을 결정했던 것 같다.
 
참나무는 불을 피우는 장작으로 좋고, 소나무는 집을 짓는 목재로 적당하며, 오동나무는 장(欌)을 만드는데 쓰인다. 사람 또한 저마다 기질과 능력이 제각각이라 하는 일과 쓰임새가 다르기 마련인데, 특정 성향이나 특정한 상표를 가진 사람들로만 조직을 운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조직이 기업체라면 반드시 그 기업은 망할 것이며, 그 조직이 국가라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하게 된다는 것은 이론이나 주장이 아니라, 동서고금(東西古今) 인류 역사의 생생한 경험에 속한다.
 
축구 구단의 감독으로 탁구선수 출신을 기용하고, 농구 구단의 감독으로 축구선수 출신을 기용하여 그 팀이 승리하는 것을 보았는가? 심지어 푸줏간 주인에게 외과 수술을 맡기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문자란 발음을 기호화하거나, 의미를 상형(象形)화한 도형일 뿐인데, 유식한 사람을 일컬어 글줄이나 읽은 사람이라 표현했던 이유는, 글을 읽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란 뜻이 아니라, 그 글을 통해 습득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어떤 지식을 예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학문이 세분되고 전문화 되면서 어떤 분야의 특정한 지식만은 높아지는지 몰라도, 반면 전공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의 문외한(무식꾼)을 만든다는 점에서, 현대 교육을 광의(廣義)로 해석하여 무식한 학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모든 중생이 불성(佛性)을 갖추었다 하니, 한 학승이 큰 스님에게 묻는다. '저 마당에 누워 있는 견공(犬公)에게도 불성이 있는지요?' 큰 스님이 큰 소리로 대답한다. '무!'. 불성이란 부처가 될 성품이로되, 모두가 가졌으나 모두 부처는 아니듯이, 모두가 사람형상이로되 모두가 사람은 아닌 듯하니, 그 '무!' 라는 외침에 내가 화들짝 놀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