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이 헛것인 줄 알기까지한세월이 지났구나밝았던 얼굴, 낭랑했던 음성눈부셨던 둘레에헛것 가득 찬 줄 알기까지한평생이 걸렸구나벼락, 천둥인 줄 알았던 것도 헛것이고젖은 신발인 줄 알았던 것도 헛것이고모래도 헛것이고, 티끌도 헛것이고흰 살결도, 검은 눈물도, 꽃도, 안개도절집도, 성당도, 학교도, 국가도아직 오지 않은 천년도모두 헛것이었구나헛것인 줄 알기까지 한평생이 걸렸구나 -조창환, '헛것'   시에는 한 시인이 지금까지 걸어 온 삶의 역정과 깨달음과 시인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창환 시인의 새 시집 '건들거리네(동학사)'를 읽는다. 이번 시집 해설에서 우대식 시인은 조창환 시인의 시집이 '텅 빈 세계로의 운수행각雲水行脚'이라고 평하며 깊이 있는 조명을 하고 있다. 필자 또한 '건들거리네' 새 시집이 주는 감동에 매료되면서 자신의 내면을 깊이 통찰한미학적 완성도가 높은 시집임을 느꼈다. 우리는 왜 사는가?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다양한 명답은 있다. 달은 하나지만 천 개의강에 천 개의 달이 뜨듯이.   어떤 외국의 시인은 "우물쭈물 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라고 묘비명에 자신의 안타까운 삶을 기록했다.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나를 잃고 사는 사람이다. 나를 잃고 산다는 것은 껍데기 인생일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에서 나를 찾지 못한 채 허둥대다가 삶의 종말을 맞게 된다.어쩌면 삶의 비밀은 이곳에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저것이 헛것인 줄 알기까지/ 한 세월이 지났구나'라고, 삶이 헛것인 줄 알기까지 한평생이걸렸다고 성찰하고 있다. 생의 본질이 '공수래 공수거'임을, 그 진부한 진술에 있음을 새삼 되돌아본다.생은 어쩌면 아지랑이 같은 것, 아침 안개 같은 헛것임을 아파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머리에서 가슴까지 사랑이 가는 데 70 평생이 걸렸다'는 탄식과 흡사하다. 벼락, 천둥인 줄 알았던 것도 생을 살고 보니 헛것이고, 젖은 신발인 줄 알았던 것도 헛것이었다.모래도 흰 살결도 절집도 성당도…. 아직 오지 않은 천년도…./ 헛것이었다는회한 섞인 진술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후회없는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주고 있다.생의 후반부에서 비로소 깨닫는 삶에 대한 통찰과 사유의 깊이가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시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