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에게 보도나 소식을 널리 알리는 정보나 홍보용으로 대표적 명칭을 두고 '저널리즘'이라한다. 저널리즘에는 신문·방송·잡지 등 활자나 전파를 매체로 하는 보도나 그 밖의 전달 활동이나 그 사업을 가리킨다.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의 주종인 신문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사건이나 화제 따위를 빠르게 보도·해설·비평하는 정기 간행물로 홍보 및 전달용으로 널리 쓰이는 소식지이다. 신문은 세상을 알리는 세계의 거울이고, 사회의 목탁이라 한다. 그 뜻은, 목탁은 세상 사람을 깨우쳐 기도하는 사람이나, 기관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그리고 방송은 보도나 음악·스포츠·연극 따위를 라디오나 텔레비전 전파에 실어 내보내는 매개체이다. 또한 언론은 말이나 글로 자기의 사상을 발표하는 일이나 또는 그 말이나 글을 두고 하는 것이다. 신문은 자유이며, 누구나 그것을 읽게 될 때 천하태평이라 한다. 미국 3대 대통령으로 미국 독립 선언서를 기초하여 민주주의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든가, 혹은 정부 없는 신문이든가, 그 둘 중에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하고 결단을 촉구 당한다면, 나는 일순의 지체없이 후자를 선택할 것"이라 했다.해마다 4월 7일 '신문의 날'이 되면 독자들에게 신문에 대한 정의를 표어로 모집하는 행사가 있다. 거기에 선정된 표어로, 신문을 보며 배우네, 나무도 숲도 읽어내는 안목. 착 펴면 척 보이는 세상, 다시 신문이다. 급류를 타는 세상, 방향기 잡는 신문, 나를 움직인 진실, 세상을 움직일 신문, 가치 있는 정보, 같이 읽는 신문. 시대를 읽고, 세대를 잇다. 가장 좋은 적금, 신문 읽는 지금, 정보의 생활 속에서, 시대의 중심을 지킨다. 세상이 답답할 때 신문은 답한다.신문의 자유는 어떠한 민주국가에 있어서도, 생활의 요소라 한다. 미국 소설가 힐튼은, 매일 보는 신문은 완전히 좋은 것을 칭찬하는 일이 거의 없고, 반대로 거의 항상 효과가 있을 것 같고 이목을 집중시킬 것 같은 기사만을 쓰고 있는 것이 신문의 특성이라 했다.시인이요, 언론인 김영랑은, 그의 저서에서 논거한 것으로 신문은 절대 불편부당 (공정·중립의처지)하여 엄숙히 중립을 지켜야 할 것이며, 특히 신문의 민주화라는 입장에서 진실의 보도, 선덕 (바르고 착한 덕행)과 왜곡의 불식을 위하여 항상 일반 대중의 전 국민을 상대로, 그를 여러 현상을 의식하며, 사물을 생각하는 마음의 움직임인 주관으로 하고, 또 그들의 복리를 위한 사회의 공기성 (공공의 물건)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할 것이다.그리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참다운 소리를 청취하는 여론의 조사와 또 국민의 총의(전체의 공통된 의사)를 종합하는 의미로 세론(여론)을 널리 조사하는 것이 신문의 중대한 사명이다. 신문은 사회의 창(창문)이라하고, 신문인을 지칭하여 무관(지위가 없음)의 제왕이라 한다. 이는 신문이 사회여론의 강력한 대변자임을 강조하는 말로써 여론이란, 어떠한 형태로 표현된 대중의 공통적인 관심사에 대한 공통 의견을 말한 것이다.그리고 방송은 보도나 역사 이야기 등 시청자의 구미에 맞게 알려서 한층 호감을 갖는 매개체 중에서 더욱 가까움을 느끼게 하는 전달체에 속한다. 국민들마다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는 것은, 자유를 최대 자극함으로 인간의 지식에 더 많은 것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보도와 지식을 전달함에 시대적 사명으로 가장 앞서는 것이 '저널리즘'이다. 문학과 저널리즘과의 친근한 관계는 외관만의 것이다. 문학은 예술이며 영원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만, 신문이나 방송은 시대의 움직임 속에 있는 영업이다. 현대의 저널리즘은 문맹에 관한 의견을 우리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사회의 무지와 접촉하게 해준다. 저널리즘은 근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산물의 하나요, 근대문화의 형성에 불가결한 조건이 되고 있으며, 그의 힘은 크다. 세계를 설득할 만한 유능한 편집자는 모두가 세계의 지배자이다. 신문은 세계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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