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받았다고 친구가 바람이나 쐬러 가자기에 지리산 자락 산청으로 2박3일의 짧은 여행을 떠났습니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 되어 친해진 후로 지금까지 수십 년을 변함 없이 한결같은 관계로 이어진 친구와의 나들이가 무척 기뻤습니다.   태풍 카눈이 남부지방을 막 지나간 뒤라서 차량 통행이 많지 않은 한산한 고속도로를 두 시간 달려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수량이 불어나 넘실거리는 경호강의 누런 물빛과 온몸으로 바람을 맞은 나무에서 떨어져 땅 위에 융단을 깐 이파리와 잔 나뭇가지들이 태풍이 이제 막 지나갔다고 속삭입니다. 한 참 전에 인기를 끌었던 TV드라마 ‘허준’에서 허준의 스승이라고 잘못 알려진 조선시대 명의 유의태의 무덤을 지나서 금방 동의보감을 테마로 한 공원 입구가 나옵니다. 산청군이 운영하는 휴양림 안에 한방 테마 공원을 조성해 놓았고 숙소도 휴양림 안에 자리한 터라 짐을 풀고 푸른 산색이 가득 채운 창밖 풍경을 내다보니 피로했던 눈이 한결 시원해지더군요. 벗이 있고 산이 있고 태풍 지난 깨끗한 하늘이 있어, 이것이 바로 힐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저녁 식후 공원 안을 산책삼아 걷노라니 광장에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궁금한 마음에 우리도 가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한창 마당놀이 공연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안내하는 이에게 팜플릿 한 장을 받아 읽어보니 관광객을 대상으로 이 지역 극단이 공연할 연극과 마당놀이 공연을 요일별로 다른 래퍼토리로 준비한 공연 시간 안내였습니다. 솔직하게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우리 나라 관광지에서 흔히 열리는 가요 무대가 아니라 연극이라니, 그것도 무료공연으로요!   그날 저녁 공연은 지역에 구전된 옛이야기인 효자와 지리산 호랑이와 산삼 이야기를 주제로 한 마당놀이 공연인데 간간이 관중들의 참여를 유도하며 흥을 돋우는 것이 휴가지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공연이라고 느꼈습니다. 모두 행복해지며 끝나는 연극의 말미에 출연 배우들이 관객들을 공연 판으로 이끌어서 극 중의 호랑이와 어울려 춤을 추도록 초대합니다. 몇몇 관객이 앞으로 뛰어나가 어울리는 중에 나이 지긋한 여성 관객 한 분의 멋들어진 춤사위가 분위기를 휘어잡습니다. 배우들도 관객들도 모두 그이의 춤에 환호하며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공연이 끝났습니다. 이 지역극단이 이렇게 정기공연을 할 수 있는 것은 극단 소재 산청군의 여러 방면의 적극적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못한 곳에서 기대 이상의 공연을 보는 즐거움이 이번 나들이의 백미였다고 할까요?  연극 관람을 좋아하지만 연극 공연을 접하기 어려운 중소도시에 사는 탓에 꿩 대신 닭으로 나는 영화를 자주 봅니다. 하지만 연극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영화의 그것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마치 야구경기를 현장에서 관람하는 것과 TV로 보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지요. 특히 소극장 공연일 경우 배우들의 대사, 숨소리, 표정과 손짓, 무대 위를 걷는 발소리 같은 소리를 들으며 연극을 보고 있으면 잠깐 동안 나도 그 연극 속에 있다는 착각도 합니다. 그러나 나의 거주지인 경주같은 중소도시나 읍면 지역에서 원할 때마다 연극을 감상하기는 불가능한 일에 가깝습니다. 연극, 전시회, 연주회 등 다양한 문화 예술 공연을 내가 원할 때에 맞추어 감상하는 것은 서울이나 몇몇 대도시 정도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다른 도시에서 열리는 밤 공연을 찾아다니지 못하는 건 내 게으름이 가장 큰 탓입니다. 그러니 해마다 열리는 경주 국공립극단 페스티벌 기간 동안의 공연을 학수고대하여 기다리게 됩니다.   경주는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에서 빠질 수가 없는 역사문화 도시입니다. 경주시에서도 관광객들을 위해서 이러저러한 공연을 다양하게 기획하여 펼치고 있습니다. 경주문화재단을 통해서 시내 중심가의 ‘봉황대 뮤직스퀘어’, 교촌 마을에서의 ‘교촌 버스킹’, 동궁과 월지에서는 ‘경주국악여행’, 구 경주역사 광장에서의 ‘경주문화관 1918’ 등, 다양한 공연을 기획하여 실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공연들은 관광객에게는 여행지에서 뜻밖의 기쁨을 발견하게 하고, 시민에게는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며 아울러 역사와 문화가 조화를 이룬 관광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다지게 하는 사업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모든 공연이 음악 위주로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가요, 국악, 연주곡 등 다양한 음악을 골라가며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은 좋으나 거기에 연극이나 마당놀이 공연이 포함될 수 있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경주에도 시립극단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국공립극단 페스티벌에 타 지역의 극단과 함께 경주시립극단도 참가하여 좋은 연극을 보여주더군요. 공연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경주문화재단이 시립극단과 협의하여 관광객을 위한 행사에 시립극단의 공연을 포함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로써 경주 문화예술의 위상도 좀더 올라가지 않을까요? 덕분에 연극에 목마른 한 시민의 갈증도 채울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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