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가 황리단길 이전에 일찍이 이렇게 젊고 활기 넘치는 거리를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전국 소도시의 골목길을 전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경주 황남동 포석로, 즉 황리단길은 이제 보통명사가 된 전국적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유명거리다.   경주 행정이나 지역사회에서 골목이나 거리에 대한 가치조명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던 2016년 봄부터 자발적 민간 주도로 시작된 황리단길 열풍은 그저 고맙고 반가웠다. 그 이전에 경주는 딱히 경주다운 거리를 내보이지 못했었다.   이 동네 원주민들의 생활 속 토속적 주거형태 틈새에서 작지만 ‘개념’있는 다양한 업종의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MZ세대가 찾기 시작했고 가족과 연인들이 경주관광 일번지로 손꼽는 거리로 성장해왔다.   이 거리에선 젊음과 힙한 트렌드를 경험할 수 있고 덩달아 젊어진 경주를 소개할 수 있어 어깨가 으쓱했던 것도 사실이다. 신라 문화유산과 함께 조선시대 주택, 일제강점기 주택, 1970년대 단독주택 등 여러 시대 지층의 이야기를 담은 건축물이 혼재해 제각각 다른 외관과 고유한 사연을 품은 주택들은 ‘뉴트로’라는 콘셉트로 리노베이션되거나, 허물려 신축돼 다소 획일화되는 아쉬움이 컸으나 관광객이 몰려드니 다행이라 치부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여전히, 지나친 상업화와 업종의 편중성은 늘 아쉬운 대목이었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짙어지는 왜색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보태졌다.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융통성을 열어둔다 할지라도 지나치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황리단길이 전통 도시의 미래라는 측면에서라도 지금쯤, 가열되고 있는 왜색 논쟁은 필요해 보인다. 이런 현상을 우려하는 이들은 바로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이 많기에 더욱 그러하다.   일본어 표기 옆에 병기한 한글이 없다면 마치 일본의 한 거리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인 가게들이 여럿이다. 일본어로 적힌 상호는 예사다. 일본 동네이자 번화가가 일어로 적힌 식당에 걸려있는 깃발, 일본 가요, 일본 교복체험까지 일본 문화가 나란히 혼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세계적인 문화콘텐츠 교류와 문화 다양성을 수용하는 ‘관용’적 요소를 충족시킨다는 명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고도육성지구인 이곳 경주 황남동의 ‘문화적 고유성 약화와 동질화 현상은 문화 다양성 수용이라는 과제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물론 황리단길의 많은 가게들은 지역의 정체성을 고심하고 고려한 가게들로 각광받고 있다. 일련의 왜색 논란에 대해 경주발전연구원 고경래 원장은 “지금 확산되고 있는 일본풍은 이 시기의 젊은이들이 즐기는 일종의 유행일 수 있으며 문화의 확산은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강압적으로 규제하면 젊고 트랜디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주체들의 반감이 형성될 수 있다”고 했다.    규제는 가장 손쉬운 대응이지만, 그들의 마음이 돌아서면 황리단길의 열기도 가라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규제보다는 황리단길이 일본풍에 경도되지 않고 비전을 제시하고 방향성을 장려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황남동이 가야 할 길은 명확해 보인다. 바로 로컬 브랜드 상권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인데, ‘경주다운 것’, ‘경주다움의 국제화’, ‘오리지널 로컬’, ‘버네큘러(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생겨난 토속적인 언어나 삶의 형식) 디자인’ 등 황리단길의 시간성, 공간성, 장소성이 서로 맥락을 같이 하는 업종을 장려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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