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현자(성인)들의 말씀으로 인간이 일평생 사는 동안 기쁨을 맞이할 때가 10번 생기고, 슬픔을 당할 때가 10번 생긴다고 한다. 기쁨이 생길 때면 웃음이 나오고, 슬픔이 생길 때면 울음이 나온다. 기쁨은 마음이 즐거운 느낌이고 슬픔은 괴로운 마음이다. 그리고 웃음은 웃는 일이고, 울음은 우는 일이다. 웃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천성이다. 육체에는 영양제이고, 정신에는 웃음이라 한다, 어떤 철학자는 언제 울어야 할 팔자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무엇에든 웃는 것이라 했다. 또한 웃음이란 완전히 평온하고 흔들림이 없는 정신 표면에 떨어지지 않고서는 그 효과를 낼 수 없다. 말하자면 무관심이란 것이 웃음의 필연적인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웃음은 몸 전체가 즐거워지는 감동이며, 그 감동은 몸 전체를 흔든다. 웃음이 겸손할 때 발생한다면, 그 웃음은 눈물보다 슬기롭다. 웃음은 동작이고, 마음과 정신의 표현으로, 인생이 사는 과정이 눈물 골짜기라면 무지개로 다리가 놓일 때 까지 마음껏 웃어라한다. 웃음의 종류도 다양하다. 상대방에게 평안하고 환심을 사게 하는 미소가 있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담소(언소)가 있다. 이야기 끝에 갑자기 튀어나와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폭소가 있으며, 쌀쌀한 태도로 비웃음이라는 냉소도 있다, 그리고 가장 신나는 웃음으로는 박장대소란 손바닥을 치며 크게 웃는 모양새가 있는가 하며는, 건소는 억지 웃음으로 진심으로 하지 않고 겉으로만 웃는 건소도 있다.   웃음에 대한 어느 시인의 글귀에, 너의 웃음은 새로운 별들을 창조했다/우리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별들을/그리하여 너는 미소를 건넬 수가 있다/새로운 새들에게/보기 드문 꽃들에게/ 소설가 이무영의 글에도, 웃음판 끝에는 으례껏 허전한 순간이 오는 법이다. 더욱이 기쁨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의 웃음 끝이란 가슴이 저리도록 쓸쓸해지는 것이 보통이라 한다. 속담과 격언에도, 웃음 끝에 눈물이란 재미나게 지나다가도 괴로운 일이 생기는 것은 세상사라는 뜻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이 울음이다. 우는 것이 생명의 시작이다. 그리고 1년 동안까지는 자는 행동을 제외하고는 툭하면 우는 것부터 먼저 배우는 것 같다. 울음이란 감격이 자극할 때 터지는 구극(막다른 고비)의 언어라 한다. 영국의 한 문인은, 성급한 자가 노여움을 풀 수 있으며 성질 사나운 자가 원망을 풀 수 있는 수단은 울음보다 더 빠른 것이 없다고 한다.   울음의 주제는 이별에서 생기는 일이 많다. 그 속에는 요즘 유행되는 노랫말 가사처럼 서러움, 아쉬움, 아픔, 그리고 눈물이다. 기쁨에는 행복이 있지만, 울음에는 오로지 눈물 뿐이다. 우리 민족의 국민성 가운데 하나가 영화 중에 희극 보다는 비극을 더 좋아한다. 인정과 동정심이 많아 희극은 실컷 웃다가도 싱겁다 한다. 그러나 비극은 영화의 줄거리가 마치 자기의 사건인 것처럼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린다.   한바탕 울고 나면 소화제를 마신 후처럼 뭔가 체증이 내려앉고, 머리 속이 후련하여 가벼워지는 느낌을 갖는다. 웃음과 눈물은 같은 감정의 바퀴를 돌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는 풍력을 사용하고, 또 하나는 수력을 사용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 웃음이란 긴장의 해이이고, 울음이랑 흥분의 잔재물이다.   철학자 김태길 교수는, 웃음은 슬픈 때를 위하여 있고, 울음은 기쁜 때를 위하여 있다는 것이다. 이에 인생이 ‘슬프다’는 현실은 웃고 살라는 결론을 빚어낸다는 것이다. 인간을 위로하는 성경의 말씀이 찬송가에 실려있다. “세상 풍파 지난 후/영화로운 나라와/눈물 없는 곳으로/들어가게 하소서/빠른 세상 살 동안/크신 은혜 베풀어 주소서” 염원하는 기도가 인간의 마음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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