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 오죽하면 귀한 자식일수록 여행을 많이 시키라고 할까? 이는 여행을 통하여 세상을 보는 견문을 갖추게 하기 위한 한 방편일 것이다. 또한 젊은 날 인생사를 두루 섭렵하여 쓴맛 단맛을 일찌감치 체험케 하는 것도 훗날 삶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일찍이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만이 인생을 논할 자격이 있어서일 게다.   필자 경우만 하여도 그렇다. 어려서 집안에 아버지 부재로 지독한 가난을 겪은 적 있다. 이 때문인지 타인이 겪는 삶의 고통을 내일처럼 공감하기 일쑤다. 뿐만 아니라 이제 이 나이에 이르고 보니 그야말로 상대방 눈동자만 봐도 대략 심리상태 정도는 짐작할만하다. 이러한 독심술은 그동안 겪어온 삶의 경험에 의해서이다.   반면 젊은 시절엔 세상물정을 몰라서였나 보다. 그야말로 달콤한 속임 술수에 항상 솔깃해했다. 이 시절만 하여도 세상 때가 덜 묻어 닳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신혼 시절 일이다. 이웃에 필자 또래인 새댁이 살았다. 겉보기에도 순박하고 수줍어하여 조신해 보이는 여인이었다.   어느 날 이 여인이 누런 양은 주전자를 들고 필자를 찾아왔다. 필자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는 눈치더니 그 주전자 뚜껑을 조심스레 연다. 심지어 뚜껑 열은 주전자를 필자 코앞에 바짝 대고는 그 속에 든 물질이 풍기는 냄새를 맡아보라고 권했다. 뜻밖의 그녀 행동에 이끌려 얼결에 주전자 안에 코를 대었다. 이 때 향긋한 아카시아 꽃향기가 물씬 풍겨와 코를 자극한다. 이 내음에, “이게 무어냐?”고 묻자 그녀는 토종 벌꿀이라고 했다.   그녀는 친정 부모님이 강원도 산골에서 벌을 몇 통 친다고 했다. 며칠 전 자신 어머니가 갖고 온 꿀이란다. 친정어머니가 병환중인 할머니 병원비로 돈이 궁한 나머지 주위에 팔아달라고 부탁했단다. 이 말 끝에 그녀는 필자가 생각나서 우리 집부터 갖고 왔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실 꿀이 그다지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할머니 병원비를 조달하기 위해 꿀을 팔아야 한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당시 시중 가격보다 다소 비싼 가격을 치러 그 꿀을 몽땅 샀다.   나중에 안 일이다. 시골에서 양봉 사업을 하는 친척이 마침 우리 집을 찾았다. 그분께 자초지종을 말한 후 꿀을 맛보였다. 그는 필자에게 그녀로부터 단단히 속았다며 토종꿀도, 사양 꿀도 아닌 물엿에 아카시아 향을 첨가한 가짜 꿀이라고 한다. 이 말을 듣자 속았다는 생각과 더불어 그토록 순한 양처럼 보이던 그녀 얼굴이 눈앞을 스쳤다. 양의 탈을 쓴 이리나 다름없다는 생각에 평소 선한 이미지를 안겨준 그녀 모습에 갑자기 혐오감이 일었다. 한편으론 심한 불쾌감과 함께 그녀 말을 믿은 내 자신이 매우 어리석었다는 자책마저 들었다. 이즈막도 수십 년 전, 필자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거짓을 행하던 그녀 얼굴이 떠오르면 왠지 미간이 모아지곤 한다.   그때 타인을 내 마음처럼 믿었다간 낭패 본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했음에도 이즈막도 걸핏하면 남을 믿기 예사다. 요즘처럼 각박하고 삭막한 세태엔 소위 색안경을 준비하는 게 삶의 지혜이기도 하다.   돌이켜 보니 지난날 이런저런 삶의 경험 때문인지 이제는 오류나 모순된 일은 행하지 않을 성 싶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잠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지금도 여전히 타인이 겪는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잖은가.   누군가 어려움을 호소해오면 이를 매정히 뿌리치지 못한다. 남의 어려움을 마치 내일보다 더 신경 써서 해결해 주려고 애쓰곤 한다. 개중에는 이런 인간적인 필자 마음을 자신의 잇속에 역이용하는 사람도 없잖아 있다. 마음 자락을 잘 간수해야 진정 사람답다. 자신의 잇속을 위하여 선량한 타인의 진심을 이용하고, 눈속임 방편으로 사탕발림을 하는 사람은 신의(信義)가 없으므로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언젠가 어느 지방에서는 계주가 곗돈 수십억 원을 횡령, 잠적했다는 뉴스를 접한 적 있다. 곗돈을 부어온 사람은 계주를 신뢰했기에 아무런 의심 없이 돈을 맡겼을 법 하다. 사람은 행동거지 하나를 보면 열을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필자에게 가짜 꿀을 토종꿀이라고 속여서 팔았던 그 여인네도 전에 살던 동네에서 많은 이웃 사람에게 같은 방법으로 가짜 꿀을 팔아왔다고 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여인의 말에 연민을 느껴 별다른 의심 없이 가짜 꿀을 샀던 우매한 필자였다. 사람은 자신의 잣대로 상대방을 재기 마련이다. 내 마음이 순수하면 별 의심 없이 상대방 속임수에 걸려들기 십상이다. 흔히 착하면 복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도 이젠 옛 말이 되었다. 상대를 철석같이 믿었다간 오히려 손해만 보았잖은가. 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입기 마련이다. 지혜롭고 혜안을 갖춰야 타인에게 속임을 당하지 않는 듯하다. 이런 세상이지만 아직도 필자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로 보아 천성 고칠 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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