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자승 큰스님의 원적 급보에 산하대지는 빛을 잃었고, 혼란스러운 마음과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승 큰스님!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가 편안치 못함이 마치 불타는 화택(火宅)과 같다.”(법화경 제3 비유품) 라는 사실을 큰 스님께서는 너무나 잘 알고 계시면서, 큰스님께서는 어찌 “생사가 없다 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세속에 지중한 인연들을 멀리하시고 그렇게 소신(燒身)으로 감당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큰스님께서는 사부대중이 하나 같이 공감하는 부처님 전법(傳法)의 중요성을 통찰하시고 부처님 법을 전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처님 전법(傳法)의 중요성은 첫째도 둘째도 삼계 화택의 불안정한 세계의 부질없는 집착에서 벗어나라는(법화경 제3 비유품) 것이 사바세계 뭇중생들에게 던진 부처님의 사자후가 아니고 무엇이었습니까? 그런데 당신께서는 스스로 불타는 화택에서 소신(燒身)을 택하신 그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성도 하신 이후 부처님의 옛 도반 다섯 비구에게 처음 설법을 하신 것이 중도(中道)였습니다. 그것은 출가자가 가까이하지 않아야 할 두 극단을 천명하시면서 그 두 극단은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쾌락의 탐닉에 몰두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자기 학대에 몰두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여래는 중도(8지성도)를 완전하게 깨달았으니 이 중도는 즉, 8정도는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생사(生死)가 없는 해탈 열반으로 인도한다.” (쌍윳따니까야 제56:11)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부처님의 이러한 대 사자후도 윤회하는 사바세계의 불타는 화택으로 부터 벗어나라는 명령이었고, 이 길을 부처님께서는 중도, 즉 8정도 라고 천명하시면서 삼계 화택(火宅)을 벗어나는 길은 이것이 유일한 길이다.라고 하셨기에 ‘생사가 없다. 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더라.’라는 당신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 뜻이 더더욱 화두가 되어 지금 이 시간도 저의 귓전을 맴돌고 있습니다. 아무튼 한국 불교의 큰 별이셨던 자승 큰스님의 영전에 다시 한번 합장 배례 올리면서, 부디 극락왕생(열반) 하옵셔서 다시는 불타는 화택의 불안정한 이 사바세계에는 오지 마시기를 간절히 발원하옵니다. “사성제(四聖諦)의 고귀한 부처님의 진리를 알고 보지 못하는 무명(無明:avijjā)의 중생에게는 생사(生死)가 있지만(무명경:S56:17), 사성제(四聖諦)의 고귀한 부처님의 진리를 알고 보는 명지(明知:vijjā)의 수행승에게는 생사(生死)란 꿈속의 꿈이라고 말씀하셨다네” (명지경:S56:18)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불기 2567년 12월2일 통도사 자승스님 영단에서 사)21세기 불교포럼 이사장 황경환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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