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다녀오다가 저녁 요기를 할 요량으로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다른 음식 코너는 이미 영업을 마쳤고 우동, 라면 같은 가루음식은 된다길래 그것이라도 주문하고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한 청년 둘이 두리번거리더니 내가 앉은 옆 테이블로 와서 앉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가다가 얼핏 그들이 입은 옷에 눈이 갑니다. 
 
그 둘이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안에 받쳐 입은 옷의 무늬가 유달리 어지럽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보니 옷의 무늬가 아니라 몸에 새긴 문신(文身)입니다. 붉은 색, 검은 색이 어지럽게 뒤섞여서 팔과 다리에 꽃을 피우고 구름 속에서 수염을 휘날리며 눈을 부릅뜬 용이 곧 승천할 듯합니다. 손과 발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덮은 문신을 보며 ‘아이구, 아팠겠네’하는 혼잣말이 절로 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년들은 순진한 표정으로 앞에 놓인 라면을 패기 있게 먹고 있습니다.
 
진화론자인 찰스 다윈이 ‘세계에 문신이 없는 민족은 없다’고 할 정도로 사실 문신은 선사시대부터 역사를 함께 해 왔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문신은 신분이나 인격을 표시하고, 전사들에게는 계급장이 되기도 하고, 주술적 목적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출토된 고대 여사제의 황금마스크에 신라 금관에 쓰인 出자형 나무무늬 문신이 새겨져 있는데 고대 유라시아 전역에 그런 문신이 퍼져 있었던 것으로 봅니다. 아시아 일부와 폴리네시아 지역, 남미의 소수민족들은 최근까지도 그런 목적의 문신을 신체에 새긴 것으로 보입니다.
  전에 융프라우에서 만났던 신혼여행 중인 인도인 신혼부부가 생각납니다. 결혼식 때 했을 화려한 무늬의 헤나 타투의 색이 신혼여행 일정이 흐르면서 옅어지고 있던 신부의 손이 기억납니다. 문신은 아니지만 인도의 결혼식에서 신부는 화려한 화장과 함께 손과 팔에 ‘헤나’라는 염료로 정교한 무늬를 그려넣습니다. 
 
헤나로 그린 무늬는 쉽게 지워지지 않아서 타투, 즉 문신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겠지요. 뉴질랜드 마오리 족에게 문신은 전통이며 성스러운 행위로 여겨져서 적에게는 위협을 주고, 전사에게는 승리를 기원하는 부적으로 전사의 얼굴 전체에 문신을 했을 것입니다. 태국에는 지금도 사고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준다는 부적의 의미를 지닌 의미의 ‘싹 얀’이라는 문신이 있습니다. 싹 얀의 도안은 일정하게 정해져 있고 승려가 대나무 바늘로 직접 시술해야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미국 배우인 안젤리나 졸리의 팔에도 이 싹 약 문신이 보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중세시대는 일반인에게 문신은 금지된 것이었습니다. 유교가 사상의 기저를 이루고 있던 문화에서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支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곧 나의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처음이라는 의식이 뿌리 깊었을 것이니 피부를 상하게 하여 무엇을 새기는 것은 죄인에게나 내리는 수치스러운 형벌로 인식되었을 것입니다. 
 
중죄인에게 자자형(刺字刑) 즉 문신으로 범죄자임을 드러내어 수치심을 주었는데, 이를 ‘경을 치다’고 했다 합니다. 조선말에 단발령에 극렬하게 반대하던 근거도 효경(孝經)의 저 구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한(韓) 편에 마한 일부 부족에게 문신 문화가 있었음을 짐작케하는 기록으로 미루어 고대에는 우리도 주술적 목적으로 몸에 문신을 새기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현대는 어떤가요? 굳이 자기의 힘을 과시하는 문신이 아니어도 생활 속에 문신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모양을 다듬으려는 눈썹 문신은 남녀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되고 있고, 매번 해야 하는 화장 대신에 눈이나 입술에 반영구 화장이라고 하는 문신을 하는 것도 일반적입니다. 거기에다가 문신으로 몸에 난 흉터나 반점 등을 커버하여 콤플렉스를 치유하기도 합니다. 문신을 패션의 트렌드로 여기기까지 합니다.
 
문신을 일례로 삼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그때는 틀려도 지금은 맞는 것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이런 변화의 간극이 매우 커서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변해갔다면, 오늘날은 다른 가치관이 교체되는 간극이 매우 짧거나 아예 세대별로 다른 가치관이 공존하기도 합니다. 
 
온몸에 한 문신을 태연히 드러내고 다니는 젊은이와 그것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동시대에 어울려 살아갑니다. 심지어 내가 낳은 자식과도 사회나 현상을 보는 가치가 충돌하여 토론하다 보면 마음 상하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다변화’라는 말이 오늘날만큼 어울릴 시대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려면 어른 세대가 마음의 유연성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점점 좁아지고 완고해지려는 마음에 유연성을 잡아두려고 나는 책을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