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을 하려고 봉분을 열어보니 유골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거나 관(棺)의 위치가 봉분과 어긋나 있는 경우를 간혹 볼 수 있다. 풍수에서는 이러한 혈 자리를 ‘시체가 도망가는 자리’라는 뜻으로 도시혈(逃屍穴)이라고 한다. 이런 곳에서는 유골이 없어져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 하면서도 다른 방법이 없어 광 중의 흙 일부를 퍼 담아 이장하기도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여러 주장이 있어왔는데 풍수 고전『靑烏經』에서는 관이 뒤집혀지거나 부서지는 원인을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산 어느 곳에 골이 지거나 땅 밑으로 물이 흐르면 그렇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이것 또한 확실한 것은 아니고 현대 과학으로 보아도 근거가 희박하다.
현대 지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토양포행(土壤匍行:soil creep)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토양포행이란 지하 암반층 위에 연약지층이 형성된 경우 표토(表土)는 나무와 잡초 뿌리와 풍화작용으로 단단하나 중간에 있는 연약지층은 암반의 경사에 따라 이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실제로 이와 같은 현상으로 인해 지표층 아래 일정 지층이 지속적으로 움직임으로써 그 위에 놓여진 관(棺)이 함께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 무덤들 대부분이 경사진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고 또한 외부 기후조건이 영향을 미치는 지표면 1m 내외에 시신이 안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토양포행은 진행 속도가 매우 느려서 직접 관찰할 수는 없으나 경사진 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토양이 얼었다 녹았다 혹은 물에 젖었다 말랐다 할 때는 팽창과 수축 현상이 반복되므로 기후의 계절변동이 큰 지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는데 이때 암설은 사면 아래로 약간씩 이동하게 된다. 겨울철 서릿발 역시 토양의 표층을 거의 일률적으로 들어 올리는데 솟아오를 땐 수직으로 녹아내릴 땐 사면으로 내려온다. 
 
그래서 수축과 팽창할 때마다 토양은 아래로 조금씩 내려온다. 또한 동물이 사면에서 구멍을 파거나 흙을 밟을 때, 식물이 성장하고 부패할 때, 지진이 일어날 때도 토양이 움직이기 때문에 그때마다 암설은 아래(높은 곳에서 낮은 곳)로 이동한다. 토양포행에 있어서 암설의 이동속도는 사면 경사의 증가에 비례하여 빨라지나 대체로 연간 1mm 이하에서 수cm까지의 폭을 갖는다.
포행의 속도는 지표면에서 밑으로 내려갈수록 감소하는데 깊이 1m 미만의 표층이 포행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으며 효율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최적의 경사는 5°라고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산에 올라 비탈진 경사면에서 자라고 있는 큰 나무들을 보면 나무의 뿌리는 경사면 아래쪽으로 줄기와 가지는 위쪽으로 기울어진 경우를 볼 수 있는 반면 일정 지대 밖은 반듯함을 볼 수 있다. 
 
이것이 토양포행이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런 곳에 산소를 쓰게 되면 유골 상태가 좋지 않아 후손들을 불안하게 하므로 산소 자리로 적당치 못하다. 
 
풍수가에선 경기도 금곡에 있는 고종황제의 무덤인 ‘홍릉’이 도시혈에 해당된다고 보고 있다. 식민지 시절 일본이 의도적으로 도시혈에 조선의 황제 무덤을 조성했다는 혐의를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