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가 출범한지도 21년이 되었다. 21년이면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할 만큼 긴 시간이다. 21년 동안 지방의회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지금은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나, 여전히 지방의회가 잘 한다는 소리보다는 ‘지방의회가 하는 일이 뭐가 있느냐’는 냉소적인 반응을 넘어 주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자료를 보더라도 지방의회가 지역 주민을 대표하는 기관인지 범법자를 양성하는 집합소(?)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 제5기(2006년 7월~2010년 6월) 지방의원 3626명 가운데 8.9%인 323명이 임기 중에 사법처리 된 것으로 조사됐다. 사법처리된 것 말고도 의회에서의 몸싸움, 막말, 자기 밥그릇 챙기기 등 상식을 벗어난 행동으로 지역민들로부터 불신과 외면을 받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방의회 무용론(無用論)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최근에 경북지역 지방의회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면 주민의 대표가 아니라 감투를 놓고 벌이는 시정잡배의 활극(活劇)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예천군의회에서는 장모 의원이 의장선거에 낙선한 뒤 동료 의원에게 돈을 전달했다고 폭로해 경찰조사까지 받게 되자 심적인 부담을 느껴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영주시의회에서는 의장과 부의장이 모두 새누리당 의원으로 선출되자 무소속 의원들이 격분해 심한 몸싸움을 벌였고, 급기야 한 무소속 의원이 야구방망이로 자기의 차량 앞유리를 부순일까지 발생했다. 구미시의회에서도 의장과 부의장 선출과정에서 의원들이 두패로 나눠 갈등을 빚으면서 의회가 파행을 겪기도 했다. 기초의회뿐만 아니라 광역의회도 ‘오십보백보’다. 경북도의회는 의장단 선거에서 금품이 오간 정황이 포착돼 선거관리위원회가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청렴하고 높은 도덕의식을 가져야 할 의원들이 주민을 위해 더 좋은 정책으로 의장 선거에 임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의장이 되면 누리게 되는 특권에 눈이 어두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태에 대해 염증이 난다. 1991년 지방의회가 출범할 때는 의원들이 무보수 명예직으로 출발했다. 보수가 없다 보니 유능한 인물보다는 돈꽤나 있는 지역유지 등이 선출돼 집행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보다는 자기 사업에 방패막이로 이용하거나 이권에 개입하는 등 ‘제사보다는 젯밥’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이런 폐해가 늘어나고, 또 지방정부의 권한도 증가되면서 정부는 의회의 전문성과 지역의 유능한 젊은 인재를 충원한다는 취지로 2006년에 유급제를 실시됐다. 주민들은 유급제가 되면 지방의회도 많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전문성도 강화되고 집행부가 살림살이를 잘 하는지 꼼꼼히 따져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세금으로 의원들은 연간 평균 특별·광역시 5,175만원, 도 4,300만원, 자치구 3,052만원, 일반시 2,922만원, 군 2,459만원(2008년 기준)의 의정비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역민들의 바람과는 달리 지방의회는 여전히 구태(舊態)을 답습하고 있다. 봉급을 받는 만큼 일은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질책이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다 전국 광역의회는 유급 보좌관까지 요구하고 있다. 국민정서와는 너무 동떨어진 행동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유급 보좌관을 먼저 요구할 것이 아니라 주민들로부터 불신받고 있는 의회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 일하는 의회상을 구현하는 것이 우선이다. 문뜩 왜 우리나라의 지도층에게는 유럽의 ‘노블레스 오블리제’같은 정신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다 하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고위층 자제가 다녔던 이튼칼리지 출신들이 제1·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여해 2천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 전쟁때는 영국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류 왕자가 전투기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고위층은 정말 부끄러울 정도다. 고위공직자의 인사청문회를 보거나 국회의원들의 군 복무 이행여부를 보면 실망을 넘어 분통이 터져 나온다. 군대에 안간 이유도 가지가지다. 보통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한 이유를 대며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언제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아들이 휴전선 최전방에서 근무한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이제 지방의회도 전반기 의장단 선출을 끝내고 후반기 의정활동에 들어갔다. 다시는 감투를 놓고 국민들로부터 눈살을 찌푸리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지켜 주민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의회가 되기를 바란다. 박노봉 편집국장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