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피플투피플(PTPI) 한국본부가 최근 개최한 국제친선의 밤 행사에서 황경환 회장이 평화장 금장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아이젠하워 메달상을 수상했다...
가수 박주희가 30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밀리토피아 호텔에서 펼쳐진 시상식 ‘2018 ASIA BEST AWARDS’에서 공로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날 시상식에서 박주희는 블랙&화이트의 퓨전 한복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등장,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의 예술부문 공로상을 수상했고 수상 소감으로 “너무나 영광스러운 상을..
김주수 의성군수가 성남시 밀리토피아 호텔에서 개최된 '2018 아시아스타마케팅컨벤션'에서 '2018 대한민국 자랑스러운 한국인' 지방자치행정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2018 아시아스타마케팅컨벤션'은 (사)아시아인재과학원과 (사)국가브랜드진흥원 및 한국SNS기자연합회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주)메인피디와 (주)코..
한국생활체육뉴스 김성진 대표이사가 성남시 밀리토피아 호텔에서 개최된 '2018 아시아스타마케팅컨벤션'에서 '2018 대한민국 자랑스러운 한국인' 생활체육 부문 공로상을 수상했다.'2018 아시아스타마케팅컨벤션'은 (사)아시아인재과학원과 (사)국가브랜드진흥원 및 한국SNS기자연합회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주)메..
더불어민주당 어기구 의원이 성남시 밀리토피아 호텔에서 개최된 '2018 아시아스타마케팅컨벤션'에서 '2018 대한민국 자랑스러운 한국인' 벤처기업 부문 상을 수상했다.
피아니스트 신지호가 성남시 밀리토피아 호텔에서 개최된 '2018 아시아스타마케팅컨벤션'에서 '2018 대한민국 자랑스러운 한국인' 예술 부문 공로을 수상했다.'2018 아시아스타마케팅컨벤션'은 (사)아시아인재과학원과 (사)국가브랜드진흥원 및 한국SNS기자연합회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주)메인피디와 (주)코그미디..
한국정보화진흥원 김장주 부원장이 성남시 밀리토피아 호텔에서 개최된 '2018 아시아스타마케팅컨벤션'에서 '2018 대한민국 자랑스러운 한국인' 정보진흥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영주 부석사가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세계유산 등재 인증서를 전달받았다. 영주시는 김재광 부시장, 이중호 시의회의장, 부석사 관계자 등이 27일 서울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한국의 산사(山寺) 7곳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선포 기념식에 참석해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으로부터 인증서를 받았다.
상주시는 문화재청으로부터 '상주 우복종택'과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를 각각 국가민속문화재와 보물로 지정받음으로써 총 99건의 지정문화재 중 국가지정 문화재가 23건이 됐다.
경산어린이집 연합회 주관(회장 이경미)으로 ‘제19회 경산시 어린이집 자연사랑 그리기 대회에 대한 시상식’이 지난 28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수상자 가족과 어린이집 원장, 교사 등 관계자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어린이들에게 우리 역사의 소중함과 자연을 아끼고 보존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
의성군은 29일 의성 금성산 고분군의 사적지정을 위한 학술대회를 의성 조문국 박물관에서 개최했다. 이번 의성 금성산 고분군 사적지정을 위한 학술대회는 지난 2015년 그간의 발굴성과를 바탕으로 개최한 학술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됐다. '의성 금성산 고분군의 역사적 가치와 특수성 검토'라는 주제로 주..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에서 10기 입주작가 릴레이전 Part4전시가 오는 12월 3일부터 9일까지 열린다. Part4는 서인혜 작가(평면,설치/1전시실), 김지섭 작가(평면/2전시실)의 작품이 전시되며, 서인혜 작가의 작품은 ‘버무려진’이라는 제목으로 화면 하나하나가 마치 투명한 그룻이라도 되는 양, 혈액이 연상되는 밀도 높..
(재)대구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대구문학관이 오는 12월 8일 오후 3시 대구문학관 4층 세미나실에서 문학강연 작가와의 만남을 개최한다. 분기별로 진행됐던 문학강연 ‘작가와의 만남’은 지난 3월 우광훈 소설가를 시작으로 6월 이태수 시인, 10월 이동하 소설가를 초청해 작가의 문학세계를 들여다보고 문학창작과 이해를..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말자는 말이 떠오르는 따뜻한 공연이었어요. 가족의 소중함도 되돌아보고 캐롤로 크리스마스도 미리 만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지난 27일과 28일 이틀간 대구수성 아트피아에서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2018 크리스마스 칸타타'가 성황리에 펼쳐졌다. 크리스마스 칸타는 올해 북미 25개 도..
경산 지역은 일찍부터 신라식 묘제와 문물이 조사돼 신라와의 관계사를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경산 지역에서 등장하는 신라식 묘제와 문물을 중앙에서 일방적으로 파급된 것으로만 보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신라식 묘제양상을 살펴보자. 신라의 중앙인 경주와 주변 지역의 4세기 대 목곽묘는 크게 3개의 유형이 확인된다. 세가지는 이혈 주부곽식의 장방형 목곽묘, 동혈 주부곽식의 세장방형 목곽묘, 단곽식의 장방형 목곽묘다. 적석목곽묘는 사방적석식, 상부적석식, 지상적석식이 있다. 석실묘들은 분지의 산지 구릉에 주로 위치하는데, 그 이유는 경주 시내 고분군 묘역의 협소화로 인해 외곽으로 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산 지역의 신라식 묘제에 대해 논해보자. 경산 지역에서 4세기 전후 대형묘의 묘형은 소위 경주식목곽묘, 즉 동혈주부곽식의 세장방형목곽묘다. 경주식목곽묘는 4세기 전후 경주와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그 분포는 어떤 정치체의 권역을 나타내는 것으로 상정되고 있다. 임당 유적에서 경주식목곽묘는 소국의 형성 과정에서 부상한 임당의 유력 집단이 사로와의 어떤 상호작용을 통해 모방 수용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임당 유적에서 적석목곽묘의 출현은 두 가지 입장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신라 중앙 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지배방식을 실천하기 위한 전략이며 이러한 적석목곽묘는 중앙 세력에 의해 매우 수동적으로 수용된 묘제일 수 있다. 신라토기의 등장과 해석에 대해 알아보자. 장경호 부장 정형은 시기적으로 경주에서 가장 먼저 출현하고, 점차 지방에서 확인된다. 장경호 부장 정형은 신라 토기가 출토되는 영남 지방의 각 지역에서 폭넓게 확인되므로 어떤 규범의 존재를 추론해 볼 수 있으며, 이 규범을 ‘토기제사법’과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양식적 선택압’이란 장경호 부장 정형과 같은 ‘토기제사법’의 수용과 밀접하다고 하겠다. ‘양식적 선택압’은 신라 중앙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발신된 것만은 아니고 토기제사법이 경주로부터 확산되어 오면서 지방의 토착 사회가 수용하는 과정에서 다양하게 나타났던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묘제의 확산은 단순한 매장시설의 확산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관념적인 제도의 확산을 전제로 한다. 토론-경산지역 신라의 중요한 직할지 역할 박형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 축조집단의 재편 이후 경주식 세장방형 목곽묘가 출현하고 이것을 경주(사로국)의 군사적인 정복 활동에 의한 복속이 아닌 복속을 당할까라는 불안한 심리에서 오는 적극적인 모방수용으로 해석하였다. 이것은 하나의 작은 정치체가 있었으며 곧, 압독국으로 보는 것으로 이해된다. 경산 지역 정치체의 중심읍락인 임당 유적에서 적석목곽묘의 출현에 대해서는 신라의 지방 지배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하고 있다. 신라의 지방 지배 과정이라는 것은 곧 경산지역이 신라의 지방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목곽묘단계까지 압독국이 존재하다가 적석목곽묘가 출현하는 시기에 신라의 지방으로 편입되었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3세기대 목곽묘의 결집과 축조집단의 재편이라는 변화를 가져온 집단이 연속적으로 4세기대 경주식목곽묘를 도입한 동일한 축조집단으로 보고, 4세기대 경주의 적석목곽묘를 도입한 집단도 토착 집단으로 본다. 이것은 지역 정치체가 지속적으로 연결된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재편이 이루어지는 2~3세기 어느 시점과 경산 신대리 유적과 내리리유적에서의 목곽묘 미출현 현상은 압독국의 소멸이라는 기한과 연결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중앙(경주)에서 보면 직접 파견한 인물 또는 세력을 나타내는 근거 일 수 있다. 3세기 목곽묘의 재편 이후와 고총 출현기에 중앙의 묘제인 경주식 목곽묘와 적석목곽묘가 나타나는 점, 고총 출현기에 중앙의 토기와 토기제사법이 나타나는 점은 중앙의 것을 모방한 것보다는 직접 축조, 생산, 전례, 현지 적응에 따른 변형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나아가서 대구와 성주지역으로 변형된 토기기종의 전파에 의한 2차 확산의 진원지였을 가능성도 있다. 결국 경산지역은 3세기 이후 중앙의 직할지 혹은 직접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임당 고총은 주로 4세기 중후반부터 6세기 전반까지 축조됐고 임당동과 조영동, 부적리 등 세 곳에 나뉘어 분포하고 있다. 임당 고총에 대한 연구는 고총 사회와 고총 집단의 위계 또는 계층화 연구, 그리고 고총 출토 유물에 대한 편년과 해석 등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임당 고총의 축조 방법은 다음과 같다. 임당 고총에서 주부곽 배치는 주로 장방형의 주곽 아래쪽에 방형의 부곽을 배치한 창(昌)자형이 많은 편이지만 주곽과 나란하게 부곽을 배치하는 명(明)자형이나 11자형 등이 확인된다. 주곽의 축조 형태를 보더라도 대개 청석 암반을 파고 목곽을 설치한 암광목곽묘가 대부분이지만 고총 초기에는 수혈식석곽묘나 적석목곽묘가, 고총 후기에는 횡혈식석실묘가 축조되기도 한다. 임당 고총 묘형을 정리해 보면 적석목곽묘와 수혈식석곽묘의 구조로 처음 축조되기 시작해서 암광목곽묘가 전형적인 묘형으로 자리하고, 이후 고총 축조의 후기에는 횡혈식석실묘가 도입되는 과정을 알 수 있다. 임당 고총에는 주곽의 묘형 변화와 상관없이 5세기 초반부터 줄곧 이혈묘광 昌자형으로 주부곽을 배치한다. 하지만 5세기 4/4분기의 임당2호 북분은 이혈묘광 明자형 주부곽식으로, 6세기 1/4분기의 임당6A호는 단곽식, 동시기 조영EⅡ-4호는 이혈묘광 明자형 주부곽식으로 배치된다. 신라 각 지역 고총은 주부곽 배치나 주곽의 묘형, 평면 형태가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것이 곧 각 지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징이 아닌가 생각한다. 경산에서 신라 중앙의 장제 습속이 수용되고 유지되는 것은 중앙에서 지방으로 행사된 일종의 ‘장제 압력’이며, 지방에서는 이러한 ‘압력’을 주도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지방 수장층의 권위를 확보하고 신라 정통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의도로 이해할 수 있다. 각 지역의 고총군은 각 지역의 지형적인 환경이나 장제의 전통에 따라 고총의 장축 방향을 다르게 했다. 임당 고총 축조에 있어 시간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제도를 반드시 유지하고자 하는 것도 있고, 그 기본적인 원칙은 유지하되 일부 환경에 따라 변용이 되는 것도 있다. 그런가 하면, 특별한 규제나 제한없이 각각의 고총마다 다르게 채택되는 요소도 있다. 토론-경주와 유사성 강하면서도 차이성이 있어 우병철 영남문화재연구원 연구기획부장 경산 임당 고총의 묘제 축조 방법에 대한 연구 및 기왕의 연구사를 토대로 임당 고총 묘제의 특성을 잘 정리해 주어 경산 임당 고총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경산 임당 고총은 신라의 중앙인 경주지역을 제외한 영남지방에서 가장 많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연구도 많이 진행되었다. 임당 고총의 발굴조사 성과에서 고총의 선후 축조 관계 및 축조 방법에 대한 사실이 다수 밝혀졌고, 이를 토대로 고고학 분야에서 시간 변천을 논하는데 주요 유물인 토기 양식 변천의 구체화 및 신라토기 가운데에서도 경산토기 양식을 특성화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유적 및 유물의 전반적 특성으로 보아, 삼국시대에서 경산지역은 신라의 지방세력 중 가장 경주지역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지역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고총 역시 타 지방의 특성으로 보아 경주지역의 영향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보고된 경주 쪽샘지구 B지구 고분은 연접분으로 B2호→B1호·B3호·B6호→B4호분의 순으로 축조되었다. 이 중 B2호분과 B6호분은 매장주체부가 이혈 주부곽에 평면형태가 ‘日’자형이다. 경산 임당 고총의 매장주체부가 이혈 주부곽에 평면형태가 ‘昌’자형인 것을 보면 유사성이 강하면서도 차이성이 있다. 특히 부곽의 경우 경주지역의 경우 주곽과 너비가 같으면서 깊이는 주곽보다 깊다. 반면 경산 임당 고총의 경우 부곽의 너비가 주곽보다 넓지만 깊이는 주곽보다 낮은 것이 일반적이다. 전체의 맥락으로 보면 부곽에 유물을 다량 부장하기 위한 목적은 경주나 경산이나 동일하다고 할 수 있지만 어떠한 이유에서 인지 차이성이 있다.
압독국의 중심유적인 임당유적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이 1982년이니 어언 30년이 훨씬 넘어가는 시점이다. 당시 신문기사의 내용을 통해 많은 국민들이 문화재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으며, 신라의 수도인 경주가 아닌 당시 지방에도 금은제로 만들어진 귀중한 문화재들이 많이 산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押督國은 현재의 경상북도 경산시와 대구광역시 동구 일원을 중심으로 성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그 중심지는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볼 때, 현재의 경산 임당유적으로 비정되고 있다. 경산 임당유적은 경산시의 북서쪽에 위치하는 유적으로서 행정구역상 경산시 임당동·조영동과 압량면 부적리에 걸쳐서 분포하며 기존에 알려진 임당 구릉만을 가리키는 협의의 범위만 하여도 동-서 약 1.2㎞, 남-북 400-800m 정도의 범위에 걸쳐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지금까지 조사·연구 자료들을 통해 볼 때 당시 압독국 및 신라의 지방사회로 전환된 이후에도 중심지의 기능을 수행했던 곳은 현재의 임당유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대형분묘의 축조와 출토유물의 질과 양, 대규모 취락 및 대형주거지의 설치, 방어시설인 토성의 축조 등 당시 과학기술의 투입이 집약된 다양한 자료들이 이곳에 집중되어 분포하고 출토되기 때문이다. 발굴조사 결과, 중요한 2곳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사적으로 지정했는데, 임당동고분군이 사적 300호로, 조영동고분군이 사적 331호로 각각 지정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 두 유적을 묶어서 사적 516호로 지정하였다. 이는 임당유적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두 유적은 조사 후 외형이 복원되어 웅장한 모습을 후손들에게 보여주고 있으며, 그곳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들은 1600년전 이 지역을 다스렸던 지배자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비춰주고 있다. 임당유적을 중심으로 주변지역에 대한 크고 작은 다수의 유적이 계속해서 진행되었으며, 아울러 임당유적 발굴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12년 영남문화재연구원이 주관한 ‘임당 발굴 30년 그리고 압독문화’란 주제로 2번째 학술발표회가 개최된 바 있다. 이제 임당유적을 중심으로 3번째 학술대회가 개최되는데, 이번 세미나의 주제가 '최근 연구 성과를 통해 본 압독국'이다. 이를 통해 더욱 많은 연구자들이 심도있는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토론-대정들판 대규모 취락유적 가능성 높아 정인성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이번 발표는 그간의 연구를 개관하면서 임동에서 발굴조사된 중요 유적의 형성과정과 변화를 추적하여 이를 토대로 ‘압독국의 신라 복속과 신라 지방사회로의 재편문제’를 다루고 있다. 4세기 후반경(372년과 377년)에 이르러 신라가 東晋, 前秦과 통교 재개한 기사에 기대어 4세기 전반쯤에 이르러 國에서 國家단계로 이행하였다는 주보돈의 주장을 받아들여 압독국이 4세기 전반쯤 신라에 복속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되는 고고자료로 일부 목곽묘 자료를 들고 있는데 토론자로서는 이것이 전형적인 ‘경주식목곽묘’인지 의문을 품고 있다. 근년 경주 인근에서 발견된 초기 경주식 목곽묘와의 유사성이 강조되는데 그 구조와 출토유물을 살피건데 이질적인 부분도 다수 발견된다. 오히려 4세기 무렵에는 신라의 지방사회가 되었을 것이라는 학계의 선입견이 만들어내는 고고학적 이미지는 아닌지 묻고 싶다. 고고학적으로 인정되는 이러한 임당유적의 변천을 ‘신라 중심 정치세력과의 관계’에기대에 해석하려고 했던 지금까지의 연구 강박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 ‘압독국의 성립과 변천’에 우선 집중하여 그 특징을 밝혀내는 작업 속에서 주변 정치세력과의 관계도 드러날 것으로 판단한다. 임당구릉 주변의 대정들판은 삼국시대 이래의 대규모 취락유적이 분포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압독국사’를 연구하는데 놓칠 수 없는 공간이라고 여기는데 이 지역에 대한 대규모 개발계획이 수립되어 있다.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임은 물론 임당동 유적경관이 최대한 확보되는 방향으로 공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관계제현들의 관심과 지혜가 모아져야 할 때이다.
현재의 경산시는 1914년 기존의 경산군, 하양군, 자인군을 통합해 만들어졌다. 각 고을의 역사는 신라 혹은 고려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의 경산, 즉 장산은 군치로서 해안현, 여량현, 자인현을 거느리고 있었다. 장산군은 신라 경덕왕 때 고친 이름으로 원래 이름은 압량 또는 압독이라 했다. 이들은 초기의 압독국, 원효의 출생, 압량주군주로서 김유신의 행적, 김인문의 장산성 축조 감독 관련 기사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먼저 초기 기사의 압독국에 대해 임당유적의 양상을 고려해 논의했는데 일찍부터 신라가 그 중심부에 토성을 축조하고 중앙의 지배 세력을 이식하기도 해 거점 ‘국’으로 삼았던 것으로 파악했다. 초기의 압독국은 신라가 지방을 성 또는 촌으로 편제하는 5세기 이전 경산 지역에 압독국으로 지칭할 만한 실체가 있었다는 것은 바로 임당유적 때문으로 고총, 즉 높고 큰 무덤은 왕릉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이런 무덤이 있다는 것은 독자적인 정치체가 존재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문헌사와 고고학에서는 5세기 단계의 지방 고총군에 대해서 ‘간접 지배’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논란이 되는 원효 가문의 신분과 관련해선 ‘설요묘지’를 바탕으로 이들이 왕족으로 경산 땅에 분봉됐으며 압량에서 왕경인 신분을 유지하며 거주하다가 원효로 인해 다시 왕경으로 진출해 활약하게 된 것으로 추정했다. 이어 신라가 지방 제도를 정비하면서 압량이 어떻게 편재됐는지는 신라에서 지방에 대한 직접 지배가 이루어진 것이 늦어도 5세기에 들어서는 지방을 성·촌 단위로 파악 또는 편제했다는 것, 5세기 말 6세기 초에는 주요 성·촌에 도사를 파견했다는 것이다. 임당 유적 I지구의 평지에선 6세기에서 7세기 전반기의 유물이 출토되는 적심건물지, 배수로, 우물, 연못 등의 유구가 조사됐다. 사적 제218호로 지정돼 있는 압량 유적은 김유신이 군사를 훈련시켰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고 그 위치가 압량면 방면이라는 것이 주목된다. 이것은 임당유적이라는 기존의 중심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장산성의 축조와 관련해 중심지의 이동이 있었는지 검토해 봤다. 장산성의 축조는 신라의 입장에서 왕경의 방어를 위한 것이었겠지만 압량군의 공간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즉 그 시점에 임당유적에서 경산 시내, 혹은 기존 고산면 방면으로 중심지가 이전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를 통해 경산의 고대 역사에서 강조해야 할 부분은 그 독자성보다는 신라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토론- '간접·직접 지배방식 개념 규정되어야' 강종훈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 압독국 소멸 후 경주로부터 6부 지배 세력의 일원이 경산 지역으로 와서 거점을 잡고 지배를 실현했다면 이것을 신라의 직접 지배로 불러야 하는지 간접 지배로 불러야 하는지가 논란이 될 수 있다. 발표자는 이것도 ‘간접 지배’의 일종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그동안 재지 수장층을 온존시킨 상태에서 공납 등을 통해 지배력을 관철시킨 것을 간접 지배라고 칭해 왔던 것을 감안하면 다른 개념을 사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흔히 ‘직접 지배’로 칭해져 온 지배 방식도 수시 교체의 가능성이 내포된 지방관 파견을 가리키는 것이기에 발표자가 상정하고 있는 특정인 또는 세력의 분봉 및 그로 인한 장기간에 걸친 연고권 행사와도 분명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백제에선 6세기 전반까지 ‘담로제’에 입각한 지방 통치 방식이 있었던바 아마도 발표자가 생각하고 있는 4~5세기 경산 지역에 대한 지배 방식은 이것과 유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신라의 경우 어떻게 개념을 규정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어 설요묘지명에 나오는 ‘설’ 땅을 압독국 지역으로 보고 원효 가문과 경산의 관계를 규명하고자 했다. 하지만 원효의 출생지로 알려진 불지촌은 압량군의 치소가 있었던 현재의 경산시 임당동 또는 압량면 일대가 아니라 그 동쪽의 자인면 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삼국유사'에 나온다. 자인면 지역은 통일신라 시기에 장산군(즉 압량군)의 영현 가운데 하나였던 자인현이 위치했던 곳으로 애초에 압독국의 중심지와는 꽤 떨어진 곳이라 할 수 있다. 설요묘지명에 보이는 설씨의 식읍으로서의 ‘설’ 땅을 자인 지역으로 한정해서 본다면 그것은 나름 수긍의 여지가 있으나, 임당동이나 압량면을 중심으로 한 경산시 전체로 확대시켜 이해하는 것은 과도한 것이 아닐까 한다.
경산 임당유적은 1982년부터 발굴되기 시작하였으니 올해로 임당유적에 대한 첫 발굴부터 35주년이 지났다.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6세기까지에 걸친 다양한 유물과 유구들이 임당유적내의 여러 곳에서 다수 확인되어 소국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잘 보여주는 장기·지속적으로 점유된 임당유적의 학술적·문화적 가치에 대하여 주목하고 국가사적으로 지정했다. 구체적으로 목관묘, 목곽묘, 적석목곽분, 석실분 등의 대형 고분군뿐만 아니라 임당 환호유적, 임당토성 등 다양한 유적이 나와 경산 부적동고분군을 포함해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의 이름으로 사적 제516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임당유적 발굴 35주년을 맞이하여 임당유적의 학술적 가치와 문화재적 가치를 현재까지의 발굴성과와 연구 성과를 토대로 재조명하고 새로운 시각에서의 연구도 진행할 필요성도 커졌다. 새로운 발굴성과와 연구결과를 토대로 임당유적의 특성과 가치를 새롭게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임당유적의 향후연구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다. 앞으로 임당유적을 잘 보존관리하면서 활용할 가치를 일깨운다는 점에서 임당유적이 가진 활용가치는 △신라의 대릉원 급으로 활용가능성, △경산지역 역사문화 교육학습자료 △주민생활 속의 애향심고취자원 △생활환경의 쾌적화와 힐링공간 △KTX로 지나가며 보이는 국내 유일의 고분군으로서 관광자원 △지역발전의 문화적·경제적·정신적 자원 △시민들의 생활환경과 경산의 도시품격을 함께 높이며 도시발전을 이루는 방향의 활용잠재력으로서의 가치 등이다. 이처럼 임당유적이 가지고 있는 활용가치와 활용잠재력을 고려하여 앞으로 임당유적을 잘 보존하며 활용하는 전략수립과 방법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임당유적의 보존과 성공적 활용을 위해서는 국가차원에서의 지속적 관심과 재정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학계뿐만 아니라 경산시청과 경산시민의 적극적 관심과 참여 그리고 재정적 지원이 필수적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지역주민에게 문화적 자긍심과 애향심을 불러일으키며 주민의 생활환경도 개선하고 지역발전에 기여하는 지역의 자랑거리로서 임당유적을 만드는데 있어서는 시민의 관심과 참여 그리고 경산시청의 관심과 지원이 문화재청의 관심과 지원보다 더 중요함을 다시 일깨우고자 한다. 좋은 사적(史蹟)과 좋은 역사공원은 주민과 지방자치단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경산시가 독창적이면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고대국가 압독국의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연구·전시하고, 온 국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압독국 유적 전시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압독국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살펴보면 ‘압독국(押督國)’, ‘압량소국(押梁小國)’으로 기록된 경산지역에 위치했던 고대국가였다. 1982년을 시작으로 경산 임당동·조영동, 압량면 부적리·신대리 등 압독국 관련 유적 발굴을 통해 그 실체가 밝혀졌으며, 지금까지 1700여 기의 고분과 마을유적, 토성, 소택지 등이 발굴되어 사적 제516호로 지정됐다. 발굴조사에서는 금동관, 은제허리띠, 말갖춤, 토기 등 2만 8천여 점의 유물과 인골, 동물뼈, 생선뼈 등 당시의 생활모습을 알 수 있는 다양한 희귀자료가 출토되어 한국 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압독국 유적 전시관 건립이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립박물관 설립타당성 사전평가에서 적정 사업으로 최종 선정된 타당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운데 사적 제516호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고분군의 가치조명을 위한 학술세미나가 지난 28일 경산시립박물관 강당에서 열려 눈길을 끌었다. 경산시 주최, 경북신문 주관으로 열린 이번 세미나는 '최신 연구성과로 본 압독국'을 주제로 했다. 종합토론에서는 김용성 한빛문화재연구원 조사단장을 좌장으로 주제발표에 대한 열띤 토론도 진행됐다. 경산시민들을 비롯한 문헌사, 고고학분야 연구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보였던 이번 학술 세미나에서 석학들의 발표와 토론을 집중 소개하고자 한다. 정리=장성재 기자·김다정·구아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