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으로 피어나는 봄꽃 잔치에 눈 멀미가 난다. 봄꽃의 향연에 유혹돼 절로 발길이 호수 둘레 길로 향해졌다. 이때 갑자기 요의尿意를 느껴 수변 가水邊 街에 자리한 건물 안을 찾았다. 화장실을 나오다보니 외국 노동자로 보이는 남자 몇몇이 그곳 중국 식당에 앉아 식사를 한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수변 가의 봄꽃과는 달리 손님도 없는 썰렁하고 음습한 음식점이다. 이곳에서 면 가락을 허겁지겁 목구멍으로 넘기는 외국인들 모습이 왠지 바깥 풍경과 대조적이다.  허름한 옷차림 탓인가. 외양으로 짐작컨대 노동자 같다. 헝클어진 머리엔 부연 먼지마저 뒤집어썼다. 그 외국인 역시 자기네 나라에선 소중한 국민이고 한 집안의 귀한 아들일 것이다. 우묵한 눈에 검은 피부를 지닌 초췌한 외양의 그들 모습을 바라보자 문득 안톤 슈낙이 지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중 `오후 세시에 점심을 먹는 사람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배꼽시계는 대략 정확하잖은가. 그럼에도 식당의 벽시계는 오후 세시였다. 별다른 사정없이는 대부분 점심시간은 정오부터 오후 1시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인들이 이 시간을 훨씬 넘긴 시간에 점심을 먹는다는 것은 끼니마저도 제때 챙겨먹지 못할만큼 바쁘거나 아님, 이도 불사할 정도로 시급한 일이 우선시 하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어느 악덕업자인지는 모르지만 외국인을 채용하면서 제때 뱃속 채우는 일마저 착취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드는 식당 안 정경이었다.  끼니는 생계와 연관된다. 인간이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밥벌이를 하고 있다`라는 말로 자신이 하는 일에 책임과 긍지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실은 이 세끼 거르지 않기 위한 안간힘이라면 지나칠까. 이 때 `제 때 끼니를 챙긴다`만큼 밥벌이로써 보람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제대로 행하지 못한다는 것은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한 민초로선 때론 능력 결여로 비쳐질 수 있다. 동물들도 밀림에서 먹이를 구하지 못하면 제아무리 용맹무쌍한 맹수라도 한낱 쥐구멍을 들락거리는 생쥐 꼴 밖에 더되랴.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자신의 주먹만도 못할법한 위 속을 채울 시간조차 지키지 못한다니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삶을 살며 가장 슬픈 일은 어떤 연유로든 고귀한 생명이 스러지는 일이다. 봄은 흔히 말하는 만물이 생동하는 생성의 속성을 지닌 계절이다. 반면 소멸도 내포하고 있다면 지나칠까. 그토록 눈부시던 화려한 꽃잎들이 봄바람에 `하르르` 허공에 흩어지는 모습 역시 봄이 지닌 또 다른 민낯이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화사한 봄꽃의 잔치가 절정에 이를수록 무슨 심리 병리 현상에서인지 마음이 못내 우울하다.   지난날 삶에 짓눌려 사노라 제대로 인생의 봄날을 만끽할 겨를도 없었다. 필자 역시 먹고사는 일에 골몰하여 제풀에 청춘을 잃었다. 그래서인가. 젊은 날 사랑했던 남자에게 오롯이 바쳤던 순정이 상대방의 변절로 진심을 짓밟혔을 때 못지않은 상실감마저 느끼는 이즈막이다.   자연이 스스로 본색을 잃을 때는 다음에 찾아올 계절을 준비하기 위한 몸짓이다. 아름다운 꽃을 떨구는 일은 탐스런 결실을 맺기 위한 순리 아닌가. 그러고 보니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자연 앞에 한낱 티끌만도 못한 존재다. 청춘을 잃으면 노화가 찾아오고 끝내는 죽음에 이르고 말잖은가.   이 날 봄바람에 꽃잎이 흩날리는 벚꽃 나무 아래를 걷다가 빈 의자에 잠시 앉았다. 흡사 팝콘을 터뜨린 듯 소담스럽게 피어난 벚꽃이 유독 아름다웠다. 호수 둘레 길엔 벚꽃 나무를 배경으로 청춘남녀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였다.   마치 오늘이 지나면 더 이상 벚꽃 구경은 생애 마지막이라도 되는 듯 온갖 포즈를 취하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필자 역시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을 때다. 머리를 삭발하고 옆구리엔 플라스틱 물통을 매단 청년과 아가씨가 벚꽃 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는다. 그러다 말고 갑자기 둘이 부둥켜안고 주먹으로 눈물을 훔친다.  "내가 내년에 이 벚꽃 나무 아래서 사진을 다시 찍을 수 있을까? 너, 그때까지 나를 기다려줄 수 있겠어?" 청년의 말에 아가씨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청년을 두 팔로 싸안는다. 두 사람 대화 내용으로 추론 하건대 삭발의 젊은이는 아마도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은 환자인 듯하다. 모르긴 몰라도 그의 생애에 마지막이 될 이 봄날 향연을 청년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여성은 이곳을 찾았을 것이다.  때론 하루가 무료하다고 생각한 게 솔직한 심정이다. 뿐만 아니라 손이 닿지 않는 곳의 행복을 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삭발한 젊은이를 대한 후 건강한 육신에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순간 엿보았다. 청년의 창백한 이마 위에 속절없이 지는 벚꽃 잎이 나비처럼 내려앉는 모습조차 처연해 보여서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