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훈의 달 6월이 되면 특별히 생각나는 두 사람이 있다.  한분은 `비목`을 작사한 한명희 선생이고, 다른 한 사람은 6·25가 발발 하던 그해 7월13일 초대 미8군 사령관으로 한국에 부임한 월튼 워커(Harris Walton Walker) 중장이다.  금성천 갈대밭에 노을이 타면/강물도 그리움에 목이 메인 듯/휴전선 아픈 사연 피멍이 되어/천리길 굽이마다 흐느껴 예누나/백암산 별빛 속에 풀벌레 울면/ 산화한 님과 엮던 덧없는 세월/소박한 산 목련은 차마 못잊어/은하수 쪽배 타고 노저어 예누나.  이 시는 `비목`을 작사한 한명희 선생의 시다. 그는 백암산 계곡 비무장 지대에 배속된 청년 장교가 잡초에 우거진 곳에서 6·25때 전사한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와 돌무덤을 발견하고 돌무덤의 주인이 자기와 같은 젊은이였을 거라는 생각에 비목을 세우고, 시를 쓴 그것이 특히 보훈의 달에 많은 사람들이 애창하는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로 시작되는 가곡 `비목`이다.  6·25가 터지고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또 남침 한 달여 만에 부산을 제외한 상당 지역이 북한군에 점령당했다. 낙동강은 피로 물들었고 메케한 화약 냄새는 시체 썩는 냄새와 뒤엉켜 코를 찔렀다. 워커는 `낙동강 방어선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 절대 물러 설수 없다. 물러설 곳도 없다. 물러서서도 안 된다. 1인치라도 적에게 내 주는 자가 있다면 그는 수천 명의 전우 죽음에 책임을 져야한다`, `탈출구가 있다고 기대하지도 말라, 사수하느냐 죽느냐(Stand or Die) 그것뿐이다`  1·2차 세계 대전을 지휘하며 각종 공훈을 세워 별 3개를 단 불도그 워커는 한국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진 하던 북한군을 낙동강 방어선에서 막아 내면서 부하들에게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한국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그의 결연한 의지는 1950년 8월18일 밤부터 23일까지 7차례 북한군과 맞붙은 치열한 전투로 국군 2300명과 미군 1282명이 전사하고 북한군은 5690명이 죽었다.  이 전장에는 우리의 위대한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도 있었다. 이 치열했던 낙동강 전투의 방어선을 사수했기 때문에 9월15일 새벽 항공모함, 구축함, 순양함 등 8개국 261척(미국225, 영국12, 캐나다3, 호주2, 뉴질랜드2, 네덜란드1, 프랑스1, 한국15)의 함정과 7만여명의 병력이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성공률 0.02% 가능성에 불과한 인천 상륙작전의 발판을 성공적으로 수행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워커의 한국 생활은 너무나도 짧게 그것도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추운 날씨 탓에 전쟁이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던 그해 12월23일 의정부 24사단과 27여단 소속 장병들에게 표창이라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고 서울에서 떠났던 그의 지프가 경기도 양주군 (현 도봉구 도봉동596-5)에서 마주 오던 트럭과 충돌해 61살의 일기로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워싱턴 D.C 내셔날 몰(National mall)에 있는 한국 전쟁 참전용사 추모 공원 비문에 이런 글이 있다.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조국 미국은 그대들에게 경이를 표하나니 이름도 모르는 어떤 나라의 자유 수호를 위해 국가 부름에 기꺼이 응했던 우리의 자랑스러운 아들과 딸들이여! 그대들은 그 나라(한국)를 알지도 못했고 그 국민을 만난 적도 없거늘….  이 전쟁으로 미군은 4만3000여명이 전사하고 10만8000여명이 부상당했다. 올해로 6·25 전쟁 발발 72주년이 되는 해이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자비의 마음과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옛 성현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마음속에 자비의 마음과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을 모하뿌리사(Moha purisa, 어리석은 인간)라고 했다.  1945년 8·15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고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비통했던 지난 역사를 극복하고 세계무역 10위권의 국가로 국제무대에 우뚝 서 있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초석은 6·25 휴전 후1953년 10월 1일 미국의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와 한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미 군사동맹을 체결, 오늘날까지 지속되어온 결과였다는 것은 세계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은혜로움의 지난 역사를 마음에 되새기고자 1956년 세계평화 운동의 상징인 `국제피플투피플`을 창시한 미국의 제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뜻에 작은 보답이 되고자 올해로 40여 년간을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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