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해체되었지만 비틀즈는 여전히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음악 그룹이다. 비틀즈의 노래 중 명곡이라고 평가 받는 곡은 많지만, 우리 한국인들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노래로는 '렛 잇 비(Let it be)'가 첫 손에 꼽힐만하지 않을까 싶다.
노래 제목인 'Let it be'를 우리말로 옮기자면 '순리에 따르다, 그냥 내버려 두다' 정도가 될 것 같다. 노래는 '자신이 힘들거나 상처 받고 아플 때 또는 암흑의 시간에 처해 있다고 느낄 때 어머니가 위로와 함께 해 주던 지혜로운 말(speaking words of wisdom)이 바로 'Let it be'였다, 그러니 다른 이들도 상심을 겪거나 좌절할 때 '렛 잇 비'가 답을 줄 거'라는 내용으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그것에 휘둘리지 말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관조(觀照)하노라면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위로한다.
노랫말에 이 말을 후렴으로 거듭거듭 반복하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되도록 그냥 내버려 두면 어려움도 순리대로 이겨낼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나는 이 노래를 좋아했고 노래의 메시지처럼 살아보고자 했지만, 글쎄 그게 얼마나 그러했을지 장담은 하지 못하겠다.
예를 들면 이제는 다 자라 자기만의 둥지로 날아간 나의 아이들을 키울 때 나 자신이 참으로 '렛 잇 비'의 자세로 조바심내거나 닦달하지 않고 자신들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천천히 기다려 주던가를 아이들에게 확인해 보고 싶지만, 돌아올 대답에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보다 내가 시키고 싶은 것을 강요했으면서도 아이들을 설득하여 자발적으로 결정한 것이라 자위하지 않았는지, 갈등 상황에 처했을 때 그들 스스로 해결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바심을 내다가 결국은 그들의 갈등 상황에 개입하여 더 빨리 해결해 주려고 하지 않았을지를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봐도 선뜻 '그렇다'라고 대답하기 어려움을 깨닫게 된다.
6.25전쟁 직후 나라가 최빈국이던 시절에 태어나고 성장한 우리 세대는 유년기의 가난은 일상적이었고 그런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우리에게 허용된 자유였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이 최고점을 찍던 시기에 태어나 큰 부족함 없이 자라난 우리 자녀들이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내 생각과 같기를 어떻게 바랄 수 있는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만이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길이라고 세뇌당하면서 살았던 부모 세대는 개성을 찾고 공부가 아닌 다른 다양한 길을 찾으며 자신이 만족할 삶을 추구하는 자녀 세대와 가치관이 다름은 당연한 일이다.
궁핍했던 부모 세대는 자신들이 받았던 세뇌를 자녀 세대에게도 물려 주려하지만 경제적으로 풍성한 시기에 성장한 자녀들에게 이 의도는 당연히 거부당하고 만다. 거부뿐인가? 한 발 떨어져서 '렛 잇 비'라는 생각으로 자녀 세대를 기다려 주지 못하고 성장하는 그들에게 '해야만 하는'을 강조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부모 세대에게 자녀 세대는 '꼰대'라는 낙인을 찍어 버리고 서로 소통이 불가하다고 단절해버린다.
이런 사회적 현상이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고대 수메르의 점토판에도, 한비자(韓非子)의 오두(五蠹)편에도, 중세 볼로냐 대학에서 대학생을 가르치던 알바루스 펠라기우스가 남긴 글에도 기성 세대의 눈으로 젊은 세대를 비판하는 글이 남아 있다. 기성 세대의 권위를 부정하고 급진적으로 자신들을 표현하던 1950년대의 영국의 '앵그리 영맨(angry young man)'이라는 집단도 기성 세대의 눈에는 곱게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세대 간의 갈등은 역사 이래 있어 온 사회 현상이지만, 서구 국가들이 수백 년에 걸쳐 이룬 것을 우리는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이룰 정도로 우리 사회의 변화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기에 그로 인한 세대 갈등은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우리의 윤리관을 지배하던 유교의 흔적들이 이런 갈등을 더 심화시키는 요인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전통 사회를 지탱해 오던 효(孝)의 개념, 장유유서(長幼有序)의 개념이 사고의 밑바닥에 깔린 기성 세대의 눈에는 젊은 세대가 '요즘 젊은 것들'로 표현되고 '버릇이 없는' 세대로 비춰지며 자신들에게 붙여진 '꼰대'라는 말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실제 기성 세대에게도 비판적인 젊은이였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또 시간이 더 흐르면 지금의 젊은 세대 역시 자기들을 부정하는 또 다른 젊은 세대와 맞닥뜨리게 될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그러하니 젊은이가 기성세대와 같은 가치관, 같은 패턴의 생각을 한다면 사회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젊은이의 생각이 막혀 있는 논둑에 물꼬를 내고 기성 세대와의 갈등 상황을 해결하면서 역사는 발전해 왔다.
또한 모든 살아 숨쉬는 것들은 생성, 성장, 발전, 소멸하는 유기체임을 되새겨보자. 지금 날카로운 비판을 품고 사는 젊은이도 어느 날 현실의 격랑에 부대끼면서 자신의 예리한 모서리가 닳아 있음을 보게 되지 않을까? 시간은 느리게 답을 알려 준다.
요즈음 세대 간 갈등이 심각한 정치권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기성 세대가 젊은 세대의 '버릇 없음'을 가르쳐 고치려 하기보다, 관용하면서 젊음에서 오는 예각(銳角)을 스스로 부드럽게 만들어 가도록 기성 세대도 그들을 좀 내버려두면(let it be)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