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시 해평면 낙산리에 있는 옛 도리사(桃李寺) 터는 한국 불교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신라 미추왕 2년(263년)에 이곳의 권력자 모례(毛禮) 집에 머물며 신라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한 곳이기도 하다.지금 이곳 일대는 ‘신라불교초전지(新羅佛敎初傳地)’라는 관광지로 조성돼 있다. 구미시가 200억원을 들여 지난 2017년 개관했다. 현재의 ‘도리사’라는 절은 이곳에서 다소 떨어진 해평면 송곡리에 있다.현재 구미시 시설공단이 운영하고 있는 ‘신라불교초전지’는 한국 불교의 성지로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이곳을 찾는 불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조차 ‘그렇다’고 답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불교 성지로서 제 역할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다.구미문화관광진흥원 박용철 부원장과 함께 현지를 답사한 후 문제점과 함께 신라 불교 성지로서의 제 역할을 하기 위한 제언도 들어 봤다.
◆ 전모례가정(傳毛禮家井)구미시 해평면 낙산리와 경계인 도개면 일대는 5, 6세기 신라 북경(北境)의 주요 거점의 중심이었다. 이곳의 실력자 모례(毛禮)는 고구려에서 온 전법자 아도를 자신의 집에 숨겨주고 거처까지 마련해 준 후견인이었다. 덕분에 고구려의 선진문물을 일찍 접하게 됐다.초전지에서 남쪽으로 ‘양천골’, ‘우천골(우실)’은 지금도 전해지고 있으며, 이곳 초전지에는 모례 우물(井)이 남아 있다.초전지를 처음 찾아 신라 불교가 이곳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알린 분은 ‘3.1 독립선언’ 33인으로 겨레의 선각자이신 백용성 조사였다. 백 조사는 23세가 되던 1886년 8월에 모례의 집 우물을 찾고 근처에서 용맹결사 정진 끝에 도를 깨우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답사한 결과 우물과 유적 등은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방치돼 있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신림리 ‘우곡지’ 좌측의 임도를 따라 40분 정도 가니 낙산리 골짜기가 나왔다. 그곳에서 낙산리로 넘어오는 길은 정비가 필요했다.
◆ 심초석과 도리사 옛터낙산리 ‘후곡지’가 있는 이곳 마을을 ‘부처밭골’이라 부른다. 근래 논과 밭에서는 불상을 비롯한 무수한 불교 유물이 발견됐는데 상당수가 이미 도굴됐다. 안타깝게도 후곡지 인근 밭에는 지금도 심초석 등 귀중한 유물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되고 있었다. 교원대 조사보고서(1997년)는 이곳 심초석이 황룡사, 사천왕사, 망덕사의 목탑지 심초석과 동일한 양식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창건연도를 보면 황룡사는 566년, 사천왕사는 679년, 망덕사는 648년으로, 신라 불교 공인 이후 비교적 초기의 사찰들이다. 이 같은 사실을 미뤄 이곳 도리사가 신라 최초의 사찰이라고 추정하기에 충분하다. ‘도리사’는 황룡사, 사천왕사, 망덕사 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창건됐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이곳이 도리사의 원래 절터라는 주장은 ‘도리사의 구지(舊址)에 대한 고찰(2020년. 금오공과대학교 선주문화연구소)’로 세상에 알려진다.
신라 최초의 사찰로 전해지는 낙산리의 ‘도리사’는 1492년 이후(김종직 사후)에 소실됐다. 폐사되면서 현재 상가가 있는 제1주차장(시내버스 회차지)의 옆 암자로 지위가 승계됐다. 이 암자 역시 1677년 불로 폐사되자 속암인 금당암(金堂庵)이 도리사의 지위를 승계하게 된다. 현재 설선당 터에 대웅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전각 역시 1731년 소실되고, 극락전과 태조선원이 현재의 모습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이곳의 밭에 있는 심초석은 2019년 10월 말 도난을 당했으나 박 부원장이 경찰과 구미시에 신고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한 덕분에 1년만에 제 자리에 다시 놓이게 됐다. 박 부원장은 “이곳 심초석은 한국 최초의 사찰인 도리사 창건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구체적인 조사를 통해 문화재로 등재해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애암(無碍菴)과 원효대사낙산리의 절터는 도리사의 옛터, 낙산보건지소가 있는 마을 뒤쪽, 그리고 재경마을 3곳에 절터가 있다고 전해진다. 재경마을은 보물 469인 ‘구미 낙산리 삼층석탑’이 있는 곳이다. 무애암은 도리사 인근에 위치했다고 전한다.무애암은 원효대사가 직접 지은 암자로 보건지소가 있는 곳이 당초 위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가 3간의 요사채로 춘원 이광수의 소설 ‘원효대사’에도 등장한다.
◆ 낙산리 삼층석탑, 금수굴(金水窟)과 돌계단낙산리 삼층석탑은 보물 제469호이며, 죽장리 오층석탑(국보 130호)과 성격이 비슷한 양식의 통일신라시대(8세기경)에 축조된 탑으로 남매 오누이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임도의 두루미연구소에서 금수굴을 오르는 길에는 돌계단이 있다. 약 500미터 정도의 긴 계단으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오래전에 쌓여진 계단이다.금수굴은 자그마한 굴로 아도 스님이 열반하신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여헌 장현광은 ‘금수굴고풍삼편’을 통해 이 지역의 금오산 도선굴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유명한 명소라고 했다. 현재 굴의 앞부분은 풍화로 떨어져나가 안타까울 뿐이다.
◆ 박용철 부원장의 성역화를 위한 제언신라불교초전지는 적절한 운영 주체를 찾지 못해 현재‘구미시설관리공단’에서 개관부터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구미시는 운영의 공공성과 신뢰성을 갖춘 단체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지만 초전지는 특수적, 전문적인 운영이 필요하다. 사업 수지 개선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운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특정 종교에 편향됐다는 관념에서 탈피해 불교 성지로서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박 부원장은 “현재 초전지는 민가와 접해 있어 안정감이 떨어지므로 경건한 공간으로 재정비가 필요하다”며 “이에따른 소요 재원은 불교의 종단과 사찰, 단체와 협력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도리사 인근에 있었던 무애암(無碍庵)을 복원해 새로운 관광 명소로 조성하는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무애암은 원효대사의 파계 이후에 서라벌을 떠나 만행 중에 이곳에 직접 지은 암자로 요석공주와 설총이 방문해 최초로 만난 장소다. 이러한 로맨틱한 콘텐츠를 스토리텔링해야 한다는 것이다.박 부원장은 “초전지를 구미를 대표하는 관광의 관문으로 삼아야 한다”며 “초전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불교 문화 자산을 상품화하고, 창작 예술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장소로 변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