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동쪽 경주, 비단길의 끝 경주. 섬유의 여왕으로 불리는 명주를 손으로 직접 짜며 전통과 명맥을 이어가는 마을이 있다. 바로 경주시 문무대왕면 명주길 두산리다.   두산리는 문무대왕면 면사무소 소재지에서 감은사지와 문무대왕 수중릉이 있는 동해안 방향으로 흐르는 대종천을 따라 2~3km 가다 보면 나오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특이한 것은 이 마을로 들어오는 2차선 도로의 가로수가 뽕나무여서 전국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이색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경주명주전시관이 위치해 있는 두산리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전국 유일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손 명주를 생산하고 있다. 대량으로 생산되는 질 좋은 섬유의 홍수 속에 우리 여인네 손끝으로 탄생하는 결 고운 전통 명주는 그 값어치를 따질 수 없다.    그 명맥을 우리 경주의 여인네들이 잇고 있다. 두산마을 할머니들은 생산량도 많고 품질도 월등한 기계로 명주를 짜는 대신,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손 명주의 모든 과정을 전통 그대로 간직한 두산마을과 손 명주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어르신들을 찾았다.   현재 두산리에는 전국 유일의 손명주 생산마을이란 자부심을 가지고 60~80대 13명의 이 마을 할머니들이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손명주를 짜고 있다.    13명 중 90대 한 명, 80대 네 명, 70대 세 명, 60대가 다섯 명으로 대부분 40~60년 경력을 자랑한다. 이들 중 94세의 이수봉 장인이 현역 최고령자다.   이곳 장인들은 한평생 대부분을 손 명주 짜기에 바친 이들로,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배웠거나 이 마을로 시집 와서 부터 수십 년간 명주짜기를 해온 전문가들이다.   한때는 이 마을에서 베틀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할머니들은 전통문화를 계승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작목반을 조직해 명주 생산 활동을 이어갔다.   지난 2002년부터는 개별적으로 길쌈을 해오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두산손명주연구회’로 작업을 이어오다가 2017년 국가지정무형문화재 제87호 ‘명주짜기’ 보유단체로 인정받았다.    전국 유일의 손명주 생산지 두산마을 할머니들이 명주짜기의 전통기법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온 것을 국가가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은 경주시티투어 동해안권 코스 경유지 중 한 곳으로 코로나19로 중단됐던 명주작업관이 재개관되면서 방문객들의 발길도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관광객들을 위해 1주일에 4회(화, 목, 토, 일 오전 10시~ 12시) 방문하면 할머니들의 베틀 시연을 볼 수 있다.   2010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경주시전통명주전시관은 현재 두산마을 할머니들이 베틀 시연을 보여주는 ‘명주작업관’, 명주 원사에 빛깔 고운 천연 염색을 하는 ‘명주염색관’, 양잠과 실크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명주전시관’ 등 3동의 한식골기와 건물이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자리잡고 있다. 또 인근에는 953㎡의 뽕밭도 조성돼 있다.   한 필의 명주 천이 나오기까지는 모든 전 공정이 까다롭고 정성이 많이 필요한 전통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누에치기를 시작으로 ‘실뽑기’, ‘실내리기’, ‘베날기’, ‘바디 실꿰기’, ‘베메기’, ‘꾸리 감기’, ‘베짜기’, ‘푸세하기’의 여러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지 전통 명주 한 필을 짤 수 있다.   특히 명주작업관에서는 회원 할머니들이 번갈아 가면서 명주짜기의 전 과정인 고치풀기부터 푸세하기까지를 분업으로 재현하고 있다.   명주작업관에서 바짝 말린 고치를 70~80℃의 물에 불리며 가늘디 가는 흰 실을 뽑아내고 있는 이순희(74)할머니는 “22세에 이 마을로 시집 와 이 일을 한 지는 20년 정도다. 소일거리 삼아 재밌게 하고 있다. 명주는 생지 자체로 매우 우아한 멋이 있다. 이 아름다움을 알아주는 이들은 아직도 명주를 찾고 있다”고 했다.   쪼그려 앉아 감긴 실을 다시 실패에 감고 있는 이 마을 가장 오랜 경력의 이수봉(94세) 장인은 “열아홉에 이 마을로 시집와서 지금까지 명주 짜고 있지요. 슬하에 7남매를 두고 있는데 농사도 짓고 이 일도 했어. 길쌈으로 아이들 공부도 시키고 대학도 시키고 유학도 보냈어”라며 환하게 웃는다.   베틀에서 ‘바디’를 잡고 실꾸리가 든 ‘북’을 좌우로 ‘탁탁’ 소리를 내며 반복적인 동작을 하고 있는 이남두(63) 씨는 “친정어머니에게 배워 결혼하고 20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 마을 회원들 대부분 집에 베틀이 있어 집에서 작업하기도 한다”고 했다.   두산리의 뽕나무부터 누에를 거쳐 베틀에 올려지는 명주실은 모두 경주산이다. 두산리에서 생산되는 누에고치는 물론, 경주 서면에서 양잠 하는 농가와 계약 재배를 통해 생산되는 누에고치를 전량 구매해 명주실을 뽑아낸다고 한다.   김경자(63) (사)두산손명주연구회장은 “이 일은 하루아침에 되는 기술이 아니다. 작업의 전과정을 완전하게 숙지하신 분들은 고령자들이다. 회원들도 연세 드신 분들께 조언을 받고 배우며 일한다”고 했다.   그려면서 “경주시에서 연간 약 4천만을 지원받는데 누에고치 배양 지원, 할머니들 기술제공 시연비, 건물 전체 관리비 명목 등이다. 고생하며 자발적으로 전통을 이어온 어르신들을 예우하는 차원에서라도 좀 더 넉넉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김 회장은 또 “너무 힘든 일이라 기피 작업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 시어머니의 일을 전수받은 것으로 그나마 두산마을에 살고 계시기 때문에 이 일의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손명주 문화재 담당을 ‘경주시 문화재과가 아닌 농업유통과에서 관리’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경주시에서 국가지정 되기 전, 명주전시관을 농업유통과에서 관리해왔고 그 건물은 문화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문화재과로의 이관 제기를 일축해 버린다. 전통손명주 기술이 농산물이 아니잖은가”라고 반문했다.   두산리 손명주 기술은 ‘전승자로 입문하는 과정에서 전 과정을 익히지 못해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후계 양성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손으로 짠 명주에 대한 수요와 관심 마저 줄어들면서 전통 손명주 생산기술이 자칫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두산리 명주마을은 월성원자력홍보관에서 동쪽으로 12㎞ 떨어져 있다. 약 18분이 소요된다. 양남면 나산리와 상라리를 지나는 호젓한 시골길을 따라 닿을 수도 있고 대본리 문무대왕수중릉을 지나 잘 닦인 도로를 따라 가도 접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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