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풍광에 한껏 홀렸다. 늪 주변 윤슬이 반짝이는 물속에 몸을 반쯤 담그고 묵묵히 서 있는 나무들 모습이 인상적이어 서다. 수분이 충분한 탓인가.  둘레길 벚나무들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벚나무들은 어느 사이 이파리들이 한 잎 두 잎 낙엽이 되어 떨어지기 시작하련만, 늪지대 나무들의 잎은 유독 푸르고 싱싱하다.  이 모습에 반하여 잠시 그 숲과 마주했다. 이 때 자연으로부터 발현되는 아름다운 색채가 갑자기 메마른 가슴에 스미는 느낌이었다.  그 어떤 물감이 이토록 심오한 자연의 빛을 흉내 낼 수 있으랴.  투명한 가을 햇살에 빛나는 나뭇잎들이 순간 눈 멀미를 일으킬 만큼 그 색채가 강렬하다. 이 색에 심취하여 오롯이 심신을 물들이다보니 자연이 품은 신비로움이 경이롭기조차 하다.  이 정경에 뜬금없이 화가 고흐를 떠올려봤다. `만약 고흐가 지금 호수 늪에 묵묵히 서 있는 저 나무들을 바라본다면 어떤 그림을 그려냈을까?` 라는 생각에 의해서다. 고흐는 자연의 색인 태양 빛을 찾아내려는 고뇌를 숱하게 한 화가가 아니던가.  고흐는 다 아다 시피 자신의 광기를 주체 못하여 스스로 귀를 자른 화가로도 유명하다. 무엇보다 그의 그림이 필자를 매혹시키는 것은 밝은 그림 색감 속에 내재된 우울함이다.  얼마나 솔직한 내면의 표현인가. 그 색감이 마치 자연의 색이나 다름없다.  자연은 한 점 꾸밈이 없다. 계절의 순리에 의하여 봄이면 바짝 메말랐던 나뭇가지에 아기 젖니 같은 연둣빛 촉을 틔운다.  또한 바람과 비를 머금으며 그것을 진초록으로 키운다. 여름이면 푸름으로 온 세상을 장식하며 한껏 싱그러움을 뽐낸다.  가을이 오면 그토록 푸르렀던 나뭇잎을 울긋불긋 형형색색으로 물들이곤 한다. 그리곤 가장 낮은 곳으로 잎을 아낌없이 떨군다.  이곳을 산책하다가 둘레 길에 조성된 숲에서 상수리나무가 떨어트린 도토리 한 톨을 보았다. 높은 나뭇가지 위에서 때마침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툭` 하는 소리를 내며 땅을 향해 하향하길 주저치 않는 도토리다.  왠지 그 소리마저 경쾌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허리 굽혀 주워보니 도토리 알은 꽤나 실했다.  의자에 앉아 손바닥 위에 도토릴 올려놓고 하릴없이 들여다봤다.  반들거리는 단단한 과피(果皮) 위에 흡사 모자처럼 씌워진 받침대도 미처 벗지 못하고 땅위로 내려왔다.  도토리를 가만히 살펴보노라니 그 작은 몸속에 온 우주를 품은 듯하다.  겨우내 나목으로 모진 삭풍을 견뎌온 상수리나무 아니던가. 봄이면 상수리나무는 하늘을 우러르며 잎을 피우고 꽃을 피웠다.  이 때 하늘은 만물의 떡비인 봄비와 훈풍을 상수리나무에게 한껏 안겨주어 온몸에 수액을 돌게 했을 것이다.  이때 뿌리는 땅 속에서 더욱 굳건해지고 힘껏 그것이 빨아올린 수액으로 도토리는 여름내 과육을 살찌우며 생장하여 결실을 서둘렀을 법하다.  또한 도토리는 자연의 담금질도 겸허히 수용했다.  용광로 속 같은 무더위와 거센 비바람의 시련도 용케 견뎠다. 이렇듯 작은 열매인 도토리 속에도 생존을 위한 고투(苦鬪)가 배여 있다.  우린 어떤가. 시련과 역경 앞에 걸핏하면 무릎을 꿇기 예사 아니던가. 삶의 장벽 앞에 서면 두려움과 좌절감부터 맛본다.  어찌 보면 이것은 인지상정이다. 어느 누구인들 삶의 역경이 안겨주는 고통을 쉽사리 이겨낼 수 있으랴.  그래서인가. 요즘 자살하는 사람의 소식이 마음을 어둡게 한다. 취업난이 매우 심각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애써 공부하여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쳤잖은가. 이렇듯 높은 문턱을 넘어서 직장에 입사한 젊은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자신의 회사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는 안타까운 뉴스다.  어디 이뿐이랴. 한강물에 뛰어든 사람을 구하자마자 구조대원 앞에서 다시 물속으로 뛰어든 20대 소식은 우리를 아연케 한다.  하다못해 땅위를 기어 다니는 미물의 지렁이다. 이것들도 비가 내린 다음 날 생존을 위해 땅 위로 기어 나온다.  수 년 간을 땅 속에서 지내던 매미다. 이런 매미도 여름이면 지상으로 올라와 목청을 한껏 뽐내다가 불과 몇 십일 만에 생을 마감한다. 제 수명을 지킨 것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삶의 궤적 역시 순탄치 않았던 게 사실이다. 오죽하면 인생사를 고해(苦海)라고 일렀을까.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는 게 인생사 아니던가. 일회성인 삶이다. 역경이 닥쳐오면 이를 앙다물고 자살할 힘으로 용기를 내어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다시금 손바닥 위에 놓인 도토리를 자세히 살펴본다. 이것에서 삶의 교훈을 얻고 있어서다.  삶 속에서 온갖 풍상과 맞닥뜨려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텨야 함을 도토리를 통해 새삼 그 지혜를 깨우쳐 보는 하늘 맑은 어느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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