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유럽을 횡행했던 소피스트(sophist)들을 과연 철학자 그룹 혹은 지식인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단지 희대의 말 재주꾼들이었을 뿐이라는 게 내 개인적인 견해이다.  "정의란 오직 강자(强者)의 권리에 불과하다"라고 한 그들의 주장처럼, 소피스트들은 객관적 진리와 정의에 대한 논증보다는 교묘한 주관적 화술(話術)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말 재주를 연마한 사람들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표적에 도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임에도 그들은 그것을 굳이 논증(論證)하라한다.  그러니까 출발지점 `A`에서 목표지점 `B`를 향해 날아가는 화살은 늘 A 와 B, 두 지점의 1/2, 그리고 또 나머지 거리의 1/2 지점을 통과할 뿐이기에 화살은 영원히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없다는 그들의 궤변에 대해 수학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논증으로 대항하기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현대 사법체계에 출현한 율사(律士)라는 직업의 기원을 고대의 소피스트에서 찾을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요즘 우리사회는 어쩐지 진실과 정의보다는 누가누가 더 법리를 잘 따져 상대를 굴복시키고 자신의 이익을 관철할 수 있는가에만 관심들이 몰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중국 고사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눈앞에 있는 사슴을 가리켜 말(馬)이라 우기면서, 누가 보아도 사슴이 분명한데 그 사슴이 말(馬)이 아님을 증명하라 한다면 그 사슴의 세포를 채취하여 유전자 검사라도 해야 한다는 것인지? 그리고 유전자 검사로 말이 아닌 사슴임을 증명한들 다시금 그 유전자 검사 결과를 또 믿지 못하겠다고 우기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즉, 논증을 논증하라하고, 그 결과를 다시 논증하라하면 그 논증은 소피스트의 화살처럼 영원히 목표지점에 도달하기가 불가능하여 결국은 진실이나 정의는 강자의 주관 속에만 존재하는 허망한 주장으로 만인(萬人)의 조롱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어떤 문명이 반드시 인간의 지성과 일치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21세기 첨단문명을 이룬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단히 비이성적인 사회는 절대로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생명체의 진화학적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대단히 비논리적인 매카니즘을 가진 생명체는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도태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데, 진화를 역행하는 우리 사회가 이대로 존속하기 어렵다는 것은 굳이 미래를 분석하여 예측할 필요가 없이 필연적으로 불행한 결말을 맞게 된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의 각성이 요구되는 시점이 아닐까?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고 정의를 구현해야 하는 이유는 고상한 인간으로써의 도덕적 품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생존을 위한 필수적 조건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인데, 사악한 궤변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드는 자들은 타인에 대한 해악뿐만 아니라 곧 스스로에 대한 자해행위라는 점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자신을 향해 날라 오고 있는데도, 저 화살은 영원히 나에게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그 소피스트적 논증에 기대어 몸을 피하지 않는다면 그가 먼저 사망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기에 드리는 말이다.  이 시대의 소피스트들에게 말하고 싶다. 천동설(天動說)이 진리로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지만, 그 때도 지구는 돌고 있었고 지금은 아무도 지동설(地動說)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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