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 수준은 후진국형이지만 국민 수준은 선진국형이다. 국민 수준이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다고 해도 정치가 후진국형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입게 된다. 부패에 연루된 정치인이 신문과 방송에 연일 도배를 하고 있어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현주소인지 모른다. 나라의 운명을 생각하지 않고 막말 정치가 난무하고 있어 국제 사회에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 정치는 한국 동란과 민주화와 격동기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오늘의 정치는 민주화 사례를 떠올리기조차 힘들 지경으로 침몰하고 있다. 마음속에 믿음이 아로새겨진 공감과 존중은 찾아볼 수 없다. 국가의 품격은 결국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말은 정치인이면 모를 리가 없다. 후대들이라도 품격 사회의 시민 대접받도록 해줘야 할 텐데 미래정치가 암담해 답답할 뿐이다.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한 반성은 찾아볼 수 없고 이전투구로 아니면 말고 식으로 말꼬리를 물고 정치판을 흔들어 댄다. 우리가 잃은 만큼의 가치는 요원하고 겸손도 없다. 정치적 이해나 점수 따기의 수단에 몰두하고 있어 꼴불견이다. 혹자는 현 정권이 비전 제시가 없다고 비판해도 여소야대 정치에서는 소신껏 일할 수 없다. 1당 독주의 국회에다 행정부조차 전 정권의 알박기 인사가 가득해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모를 지경이니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 모두의 상처를 보듬어야 할 성직자들까지 정치판에 뛰어들어 막말을 쏟는다.  대통령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라마지 않는다는 섬뜩한 말에 국민들은 할 말을 잃는다. 사회학자들 표현대로 `세계 유일의 화병(Hwabyeong)이란 걸 지닌 앵그리 사회`다. 증오의 앙금인 우리의 한 해 고소·고발은 49만 건으로 일본의 50배다. 우리 땅에 뿌려진 분열의 씨앗 탓이다. 전체 반상(班常)의 구도였던 조선은 그 자체가 양극화 사회였다. 식민지 시대 일본은 대한제국 출신의 고위 관리들을 중용하며 고의적 갈라놓기를 악화시켰다. 급기야 "인민의 평등"을 유혹한 북한 공산주의와의 분단, 전쟁의 치명적 상처가 내재 됐다.  산업화 주축과 민주화 세력의 오락가락 쟁투 속에 한 발짝의 전진 없는 통합이었다. 최악의 인사·정책 갈라치기의 문재인 정부부터는 헤어나오기 힘든 갈등의 수렁 속 꼴이다. 나라의 품격도 함께 추락했다. 1인 가구, 고립된 개인화의 시대 흐름에 따라 소득·세대·성별·정체성의 등 돌리기도 가속이다. 곳곳이 적대적 공존뿐이다. 그러니 정치의 책임이다. 국가의 품격? 정치의 그것에 비례할 뿐이다. 시대가 여의도와 용산에 요구하는 품격은 공감(共感)이다. 내편으로의 묻지마 공감만이 지금의 우리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이해·존중해 보려는 것이 진정한 공감이다.  올해 국민들을 가장 울분케 만든 사회·정치 사안이 `정치·정당의 부도덕과 부패`이다. 국민 들은 만성적 울분 상태에 놓여 있다. 정치인들은 세상이 불공정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국민들을 달랠 묘책을 찾아 나서야 한다. 정치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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