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東西古今) 어느 시대 어디에서든 권선징악(勸善懲惡) 즉, 선한 행동은 칭찬받고, 악한 행동을 비난하는 것은 인간들이 오늘날과 같은 성문법(成文法)을 만들기 이전에도 인륜과 도덕이라는 불문법(不文法)에 의해 체화(體化)되어 왔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선(善)한 이를 가까이 하고 악(惡)한 자를 멀리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데, 요즘은 어찌하여 악한 자는 상(賞)을 받고 선한 이가 벌(罰)을 받는 그런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가?  나는 무신론자(無神論者)이기에 신의 존재도 믿지 못하면서 하물며 미신 따위를 믿을까만, 지중해에 번성했던 고대도시 `폼페이`는 윤리를 저버린 타락한 인간들의 모습에 격노한 신의 저주로, `베스비오스` 화산을 폭발시켜 한 순간에 도시 전체를 매장해버렸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신의 노여움이 자연 재앙으로 나타난다면, 수많은 민심의 성냄은 어떤 재앙을 가져오게 될까? 하기에 그 옛날, 일인천하(一人天下) 전제군주시대에도 왕은 배(船)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아, 고요한 물이 배를 띄워주지만, 그 물이 한 번 소용돌이치게 되면 배를 전복시킨다 하였을까?  먹구름이 해를 가릴 수는 있어도 해가 없어지지 않듯이, 거짓이 진실을 덮을 수는 있어도 진실은 거기 그대로 있을 뿐이다. 오물이 가득한 항아리를 비단(緋緞)으로 가릴 수는 있어도 주위에 진동하는 그 악취를 어이할까?  빅뱅(big bang)이래 우주의 질서가 중력(重力)의 법칙으로 지탱되어 왔듯이 인류가 국가 이전에 부족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도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권선징악`이라는 불문율(不文律)이 작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만일 인간사회의 불문법인 권선징악이 성문법의 해석 오류나 인위(人爲)에 의해 권악징선(勸惡懲善)으로 뒤바뀐다면, 신의 노여움 따위야 차치하더라도, 그 공동체가 붕괴되는 것은 물리학의 반중력(反重力) 작용과 다를 바가 없다는 얘기다.  이전에도 해온 말이지만, 지성과 윤리란 사람의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만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에 관한 필수적 조건이다.  우리 형법 제20조에서 제24조까지에도 정당방위(正當防衛), 긴급피난(緊急避難), 자구행위(自救行爲), 등을 위법성조각사유(違法性阻却事由)로 삼고 있는 이유는, 도로교통법상 중앙선 침범이 중대한 위규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정면충돌을 회피하기 위해 자구적 조치로 행한 중앙선 침범을 처벌할 수 없음과 같은 것인데, 그 누가 승복할 수 없는 부당함에 불복한들 그것을 위법이라 할 수 있겠는가?  육법전서(六法典書)를 다 암기하고 있은 들, 자의(自意)가 곧 법일 수는 없기에, 위법성조각사유마저 몰각함이 오히려 현행법은 물론 최 상위(上位)의 자연법마저 거스르는 일이라는 게 비법조인(非法曹人)인 나의 생각이다.  오죽하면 군율(軍律)이 엄하기 짝이 없는 전장(戰場)에서조차 정신이상이 의심되는 상관의 부당하고 불합리한 명령에 항거할 권리를 인정한 것일까?  그 어느 시대 그 어떤 독재자도 사람이 숨 쉬는 방식까지 법으로 규정하지는 못했듯이, 아무리 방대한 성문법전(成文法典)이 있어도 개인의 성향이나 생각까지 법으로 규정하지는 못할 것이며, 또한 인간의 이성이 크게 반하는 불의에 저항함은 사람이 가진 천부의 권리이다.  자신에게 가장 편파적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공정함을 편파적이라 공격하고, 거짓말이 일상인 사람들이 진실한 말을 거짓으로 바꾼다. 언론이 사실을 보도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의무이자 당연한 자구행위지만, 만일 언론이 권력과 결탁하여 권악징선(勸惡懲善)함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사회적 배임(背任)이자 자멸행위가 되지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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