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선생님 말씀 한마디가 때론 인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장차 꿈을 이룰 밑거름으로 작용해서다. 당시엔 교권이 요즘처럼 상실 되지 않아서였다면 지나칠까.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머리만 쓰다듬어 줘도 왠지 우쭐했다.  초등학교 4학 년 때 일이다. 학교에서 교실 미화 정리를 할 때 선생님은, "너는 참으로 예술적 재능이 풍부하다. 글도 잘 쓰지만 그림에도 소질이 많구나" 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말씀에 힘입어 교실 미화 정리에 솔선수범 했다. 그땐 주로 풍경화를 잘 그린 것으로 기억한다.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초가들이 있는 마을과 뒷산엔 신록이 우거진 고즈넉한 시골 마을 풍경을 주로 그렸다. 선생님은 필자 그림을 볼 때마다 구도도 알맞고 사물이 지닌 채색은 물론, 명암도 잘 표현 한다며 극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곤 선생님은 필자 그림을 교실 벽에 자주 붙여주었다.  선생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어려서 화가를 꿈꾸게 했다. 학창 시절엔 개인 미술 수업을 받은 적도 있다. 그 덕분인지 요즘도 명작을 구분하는 안목쯤은 갖췄다.  그림 속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시대, 국가와 관계없이 우리네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내재돼 있다. 명작일수록 그림을 대할 때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수많은 명작 중에 필자는 얀 베르메르(1632-1675)가 그린 그림을 좋아한다. 얀 베르메르는 바로크 시대 네덜란드 출신 화가다. 그가 표현한 그림 중 가장 인상 깊은 `저울질을 하는 여인`이라는 그림은 사람을 강하게 흡인하는 마력을 지녔다. 그가 남긴 작품을 대할 때마마 `회화의 보석`이라는 칭송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를 알 만하다. 그가 그린 그림이 사후 몇 백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미술품 애호가들이 선망하는 대상으로 자리한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이 `저울질을 하는 여인`이란 그림은 무언으로 전해주는 메시지가 강한 흡인력으로 작용한다. 이 그림 속엔 빈 저울이 여인 손에 들려져 있다. 여인은 과연 무엇을 저울질 하려는 것일까? 그 저울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아 평형을 이룬 모습이다. 그림 속 탁자 위엔 진주, 금줄이 놓여있다.  작품 속엔 그리스도가 최후 심판을 벌이는 그림도 벽 쪽에 걸려있다. 이 그림 속 성화(聖畫)가 여인이 지닌 자태를 한결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또한 거울도 보인다. 그림 속 거울은 무슨 의미일까? 거울은 사물을 본래 모습 그대로 비쳐주는 게 생명 아닌가.  또한 거울은 비쳐지는 형상에 따라 그 가치를 눈으로 매김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그림 속 여인은 삼라만상 모든 현상을 원형 그대로 담아내는 거울을 저울에 달으려 마음먹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정신적인 가치와 세속적인 물질이 가진 절묘한 균형을 눈 저울질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만약 그림 속 여인이라면 거울을 저울에 올리련다. 얼굴에 난 무수한 땀구멍까지 세세히 비쳐주는 거울은 거짓이 없어서다.  세월이 품은 무상함을 알 수 있는 것도 거울을 통해서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그림 속 저울은 그 무엇도 그 위에 올려 지지 않은 채 빈 저울로 수평을 유지하고 있다.  필자도 한번쯤 얀 베르메르 작품`저울질을 하는 여인`앞에 서보고자 한다. 그림 속 여인이 중용을 지켜 저울 위에 아무 것도 달지 않고 고고한 자태로 서있는 의미를 새삼 상기할 필요가 있어서다.  이 때 `가슴 속 욕심을 내려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이 그림 앞에서 진지하게 고뇌도 해보련다.  `저울질을 하는 여인`이라는 얀 베르메를 그림을 떠올리려니 뜬금없이 미국 어느 조사기관이 발표한 내용이 뇌리를 스친다. 미국 사회에서 성공한 사회 계층일수록 거짓말에 능숙하단다. 이로보아 사회적응에 적합한 지름길은 거짓에 익숙해야 하나보다.  하지만 아무리 목적을 이루기 위한 거짓이라도 타인은 속여도 가슴 속 양심은 속일 수 없잖은가. 마음속엔 양심에 거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돈이 지닌 위력은 실로 크다. 오죽하면 돈은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만능키로 작용하기도 하잖은가. 하지만 돈으로 어떤 문을 열 수 있느냐에 따라 열쇠인 돈이 지닌 궁극적 가치가 있을 것이다. 온갖 비리 이면은 돈이다.`세상엔 돈이면 다 된다`라는 물신주의가 팽배하지만 아직도 돈보다 사람이 우선인 세상인지도 모른다. 가끔씩 전해오는 미담이 그것이다. 얼굴 없는 천사가 해마다 자선냄비에 많은 돈을 넣고 있잖은가.  요즘 젊은 날과 달리 마음 속 거울에 자신을 비쳐보는 시간이 부쩍 늘고 있다. 얀 베르메르 작품`저울질을 하는 여인`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으로 일기를 쓰며 필자 자신을 성찰 하는 시간을 갖곤 한다. 내면이 성숙한 삶은 매사 지혜롭다. 인격적 무르익음이야말로 제대로 나이 먹는 일임을 이제야 깨우치니 비로소 뒤늦게 철이 드나 보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