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  T.S.엘리엇이라는 시인은 몰라도, 그의 시 `황무지`의 첫 구절인 위 시구를 들어본 사람은 많을 것입니다. `잔인하다`란 말은 `인정이 없고 몹시 모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제 막 새잎이 퍼지고 온갖 꽃이 만발하는 4월인데,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시인이며 노벨상 수상 시인인 그는 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을까요?  `황무지`는 434줄이나 되는 긴 시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시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 시가 씌어진 1922년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였습니다. 시인은 정신적 혼란과 황폐, 재생(再生)이 거부된 죽음이 만연한 전후의 유럽을 황무지라는 상징적 표현으로 말합니다.  물론 이 속에는 삶에 대한 시인 개인의 회의와 혼란이 바탕을 이루지만, 시인은 그것들을 보편적 고뇌로 확산하여 사회화시키고 있습니다. 위의 첫 구절에 이어지는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 4월은 황무지에서 죽음과 다르지 않는 삶을 살며 재생을 원치 않는 현대인에게 재생을 일깨우며 요구하는 잔인할 달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4월은 우리에게도 아픈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달입니다. 제주 4·3사건, 4·19혁명, 그리고 가장 최근으로는 2014년 4월 16일에 304명이나 되는 아까운 목숨을 바다에 빼앗긴 세월호의 비극이 모두 4월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아무리 아픈 상처도 아물어지듯이 시간이 흐르면 아팠던 기억도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그날 아침만 하더라도 들뜬 마음으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 학생 250여 명은 다시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단원고 교사 및 배의 승객 50여 명도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습니다. 사건이 발생하던 그날의 경악과 놀라움은 오래 갔지만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과거의 사건이 되어 천천히 잊혀져 갑니다.  비민주적 행태를 스스럼없이 행하며 독재 정권이 되어가던 당시 집권당인 자유당에 분노한 대구의 학생들이 일으킨 2·28 의거가 도화선이 되어 들불처럼 전국으로 퍼져나가, 마침내 독재정권을 몰락시킨 4·19혁명을 기억할 요즘 중고등학생들은 얼마나 될까요? 아직 앳된 나이랄 수 있을 전국의 고등학생들이 목숨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낸 그날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행사도 이제는 점점 소원해집니다.  제주도민의 8분의 1이 죽거나 행방불명 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부터 7년7개월에 걸쳐 제주도에서 일어난 참혹한 역사입니다. 이 사건이 더욱 아프게 여겨지는 까닭은 광복 직후 좌익과 우익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민족을 갈라서 서로 불신하고 폭력으로 이념의 다름에서 오는 문제를 해결하려던 시대가 배경이기 때문입니다. 경찰이 발포하여 시위하던 시민이 사망한 사건을 발단으로 이후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본질에서 곁가지로 벋어나간 가지가 가지를 치고 또 쳐서 광기와 같은 좌익 소탕으로 번져 3만 여가 넘는 무고한 양민들이 무자비하게 살해되고 실종되었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서로 미워하고 대립하여 좌우익 가릴 것 없이 수 많은 희생자를 낸 이 사건은 콩깍지를 불태워 콩을 삶는 형국에 다르지 않습니다.  이제라도 이 사건을 `국가 권력에 의해 이루어진 대규모 희생`이었음을 인정하고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라는 목소리가 커져가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소설가 현기영은 자신의 소설 `순이 삼촌`에서 제주 4·3사건 때 토벌대에 의해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한 북촌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혼자 살아남은 순이 삼촌의 정신적 공황과 살아남은 죄책감을 말하며 제주민으로서의 아픔을 토합니다.  많은 `우리`들은 가을이면 오름에 나부끼는 억새를 즐기러 제주 여행을 가지만, 한라산 중산간에 묻힌 이름 없는 억울한 영혼들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작금의 정치하는 어른들은 4·19혁명의 주체가 학교에서 배운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구현되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하고 저항한 어린 고등학생들이었음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4월은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워, 죽었던 생명을 다시 일으키려 합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을 되살리고, 재생(再生)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생명을 요구하는 4월은 잔인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혼돈(混沌)한 과거라 해도 그 시간이 바탕이 되어 현재를 만들어왔습니다. 외면하고 살아온 불편한 과거라도 때때로 돌아보는 것이 미래를 위한 거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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