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성군 북이면 명정마을 뒷산에 올라보면 제법 큰 규모의 단정한 묘소가 하나 있는데 이곳의 주인공은 바로 울산김씨의 중시조인 흥려군(興麗君) 김온의 부인 여흥민씨의 묘소다. 민씨 할머니는 조선의 3대 태종의 비(妃)인 원경왕후의 4촌으로 평소학문을 좋아하였기에 부친과 친분이 있던 무학대사로부터 천문과 지리, 복서 등을 배웠으며 장성군 황룡면 맥동마을의 집터와 이곳 신후지지(身後之地)도 직접 잡았다고 한다. 누가 보아도 아 명당이구나 할 정도의 이 묘소는 호남의 8대 명당 중 한 곳으로 우리나라 풍수인 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 보았을 만한 곳이다.   그녀의 풍수이론을 정립한「하소결(荷沼訣)」은 울산김씨의 문화유산으로 지금도 전해오고 있다. 김온은 태종 이방원이 외척을 척결할 당시 원경왕후의 동생들인 민무구, 무질 형제의 옥사에 연루돼 화를 당했고 당시 위기를 느낀 민씨 부인은 아들 3형제를 데리고 한양을 떠나 전남 장성으로 피신하여 정착했다. 민씨 할머니의 후손들은 묘역 앞 비석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새겨놓았다. “여기 백두대간의 한줄기가 서남으로 달려와 온 정기를 뭉쳐 이룩한 복부(覆釜)대혈이 울산김씨 중시조 흥려군(興麗君)의 배(配) 정부인(貞夫人) 민씨 할머니의 유택이다. 할머니께서 친히 잡으신 터로서 말을 탄 자손이 이 앞들에 가득하리라는 말씀 그대로 후손이 번성하고 가문이 흥왕하여 오늘에 이르고 앞으로도 무궁토록 이어지리라 … 생략”   이 글귀는 민씨 할머니가 세상을 뜨기 전 “나를 명정마을에 묻어라 그러면 말을 탄 자손들이 말 등에 가득하리라”라는 유언을 남겼기에 그 내용을 새겨두었다. 이 묘소의 음덕으로 할머니의 5대 후손인 하서 김인후(1510~1560) 선생이 태어났으며 그는 성균관 문묘와 전국 향교의 대성전 그리고 장성 필암서원에 배향되어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공자를 모신 문묘(文廟)에 배향된 인물은 모두 18명으로 그중 호남 출신으로는 하서 김인후가 유일하다. 그로 인하여 장성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선비의 고장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 근 현대에도 제 2대 부통령을 지낸 인촌 김성수를 비롯한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전 국무총리 김상협,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종인, 삼양그룹 창업회장 김연수 등 이 외에도 수많은 인사들이 전국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곳의 혈처는 가마솥을 엎어놓은 것 같은 형국인 복부혈(覆釜穴)의 명당 터로 유명하다. 가마솥같이 생긴 땅은 혈의 사상(四象) 가운데 돌혈(突穴)에 속하고 솥은 재물을 뜻하기에 이런 땅에 묘를 쓰면 후손들에게 반드시 부귀가 이어진다고 본다. 그런데 풍수무전미(風水無全美)라 하여 완전무결한 땅은 없는 법, 현장에 올라보면 묘소 앞의 너무 넓은 명당과 희미한 안산 등 몇 군데의 결점이 보이고 필자의 식견으로는 점혈에 있어서도 묘소의 뒤편이 낮아 이러한 곳은 장자절손지지(長子絶孫之地)에 해당되므로 좋은 혈장에 묘소의 위치선정이 잘못되어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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