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딸들과 떠난 여행이었다. 저녁 무렵에서야 여행지에 도착한 터라 시장기를 느꼈다. 이 때 어디선가 입안에 침샘을 자극하는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 냄새에 이끌려 어느 식당 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그러자 휘황한 빛을 발하는 금목걸이를 착용한 주인인 듯한 여인이 갑자기 손사래를 친다. 그러는 여인의 검정색 웃옷 앞섶을 바라보자 순간 눈이 부셨다. 심지어 이물감마저 느꼈다. 얼핏 봐도 그녀가 착용한 목걸이는 단순한 금 목걸이가 아니었다. 마치 밧줄처럼 꼬인 튼실한 금줄이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그 줄에 매달린 아기 주먹 만 한 크기의 황금으로 세공한 둥근 메달이 무척 인상적이다. 형광등 불빛을 반사 받아 매우 번쩍 거렸기 때문이다. 식당 안을 자세히 둘러봤다.   그러는 사이에도 식당 여주인은 우리에겐 더 이상 눈길도 안 줬다. 식당 한구석에서 고기를 굽느라 여념이 없다. 아마도 이곳 특징은 숙성된 돼지고기를 초벌구이를 해서 손님상 앞에 내놓는가 보다. 비좁은 홀 중앙엔 단체로 온 많은 사람이 긴 식탁을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옹기종기 앉아 음식을 먹는 모습이 보인다. 이밖에도 식당 안엔 많은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마도 이곳 주인은 이렇듯 손님이 많을 땐 찾아오는 손님을 말 대신 손사래로 출입을 막는 듯 보였다.   도대체 고기 맛이 얼마나 뛰어나면 이렇듯 호황을 누린단 말인가. 이 식당 고기 맛이 왠지 궁금했다. 식당에서 문전박대(?)를 당하여 밖으로 나오니 문 앞엔 여러 일행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듯 소위 맛 집이라고 소문이 나면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한 배려쯤은 행해야 원칙이다. 하다못해 출입구 앞에 작은 의자라도 몇 개 마련해 놓는 게 손님을 위한 마음 씀씀이 아닌가. 이곳은 이런 친절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듯 손님이 북적 거리는 게 신기했다. 근처 식당들은 한산했다. 요식업도 운이 따라야 잘되나보다.   마침 간간히 비마저 흩뿌렸다. 30 여 분을 기다렸으나 식당 자리는 좀체 비워지지 않았다. 더구나 남녀가 함께 앉아있는 식탁마다 온갖 술병이 수북이 놓여있다. 그것을 보자 술자리가 펼쳐지면 자리에서 금세 일어나기란 쉽지 않다는 판단이 섰다. 비도 내리고 다리도 아파 처마가 마련된 옆집인 다른 식당 앞에서 서성거렸다. 잠시 후 그 식당 안에서 일가족이 나온다. 그들은 우리를 보자 식당을 찾는 줄로 알았는지, “ 이 식당 고기가 맛있습니다. 망설이지 마시고 이 식당으로 들어가세요.” 라고 권한다.   우선 허기를 달래는 게 급선무라 딸들과 그 식당 안을 들어섰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곱상한 외모의 여주인이 우리를 보고 반색을 한다. 돼지 목살 구이를 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잠시 후 상다리가 휘도록 갈치속젓, 깻잎 말이 초절이, 콩나물 무침, 두부조림, 조기구이, 선지 국, 김치 등 고기 집 반찬 치고는 한정식 집 수준이었다.   곧이어 칼집을 내어 숙성시킨 두툼한 두께의 돼지 목살 고기를 접시에 담아내어오는데 장식한 꽃들이 있어 매우 고급스러웠다. 반찬 그릇 역시 흔히 쓰는 플라스틱 재질이 아니었다. 사기그릇이 전부여서 상차림이 무척 정갈해 보였다. 이것을 대하자 최고급 식당에라도 찾아 온 기분이었다. 고기를 구워 한 점 먹어보니 그 풍미와 식감이 일품이다. 옆 집 금목걸이 여사장 식당 고기는 아직 맛보지 않아 그 맛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식당 고기 맛은 지금껏 먹어본 돼지고기 중에 최고의 맛이라고 칭해도 손색없었다. 식당 주인의 진실한 마음이 어우러져서인지 더욱 고기가 맛있었다. 잡곡밥 역시 김이 모락모락 나도록 따뜻했다. 이 식당 음식은 삶에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음식이 되어주고도 남음 있었다. 반찬마다 최선의 정성이 깃든 맛 전부 아닌가. 사실 식당을 찾았을 때 주문한 음식이 기대와 다르게 나오면 이것만큼 속상한 일은 없다.   진실과 정성을 쉽사리 찾아볼 수 없는 요즘 세태다. 음식도 맛 집으로 소문났다고 하여 어렵사리 찾아가보면 맛을 극대화시키기 위함에서인지 조미료를 과하게 넣은 음식이 대부분인 곳이 많다. 음식도 정성과 질 좋은 식재료로 요리한 맛은 다르다. 이로 보아 음식과 우리네 인생이 닮은꼴이라면 지나치려나. 우린 사람 관계도 이해타산으로 눈 저울 질 하느라 바쁘잖은가. 사실은 인간관계도 꽃처럼 정성껏 가꿔야 한다. 집안의 화초도 관심에서 멀어지거나 방치하면 시들기 마련 아니던가.   그날 우연히 찾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었을 뿐만 아니라, 삶의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도 새삼 깨닫게 됐으니 운수 좋은 날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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