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을 숭모하고 향화(香火)를 받드는 것은 대대로 있어온 전통의례이며, 여기에는 추원보본(追遠報本)과 혈속(血屬)의 단합(團合)이라는 두 가지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자기를 낳아 길러주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것이야 말로 우리 인간이 제1차적으로 감당해야 할 생애임무일 것이며, 어려운 세상살이에 공존하려면 먼저 친족의 단합 없이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신(神)에 대한 제사(祭祀)를 통해 외침(外侵)을 방어(防禦)할 목적으로 씨족의 단결을 도모했던 것이 제사의 근원으로 전해오고 있다.   조상의 기제일이나, 향사 날에 혈속이 모여서 조상을 숭모하고 유훈을 되새기며 제사를 봉행하고, 단합을 도모하는 것은 친족의 의미를 확인하고 공동의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상부상조하려는 내면적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성이 중요하다 할지라도 오늘날과 같이 바쁜 일과를 보내야 하는 현대인에게는 생업(生業)을 위한 일차적 업무에 바쁘다 보면 때로는 참예(參詣)하지 못하고 전화로 대신하는 일이 없지 않다.   그래서 제사는 꼭 받들어야 하는 의례인가? 하고 의문이 제기되곤 한다. 특히 먼 조상의 제사일 경우는 더욱 그러하여 의무적 참예에서 더욱 멀어져 가는 것이 당연시 되는 듯하다. 오직 자기만을 생각한다면 먼 조상은 큰 의미를 주지 않을 수 있지만, 사회적 존재로서의 가치를 규명하려면 근원적 접근이 필요하고 조상에 대한 자아의 명확한 인식 또한 있어야 함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자기가 누구인가에 대한 바른 이해와 성찰은 올바른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일이며, 이는 조상에 대한 명확한 인식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조상에 대한 이해는 자긍심과 자존감을 갖게 하여 세상사를 바르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한다.   당시의 어려운 사회적 여건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높은 지위를 획득했거나 성공한 조상의 예지는 삶을 구축해 가는 데 있어서 지혜와 용기를 주는 표본적 의미를 전해 줄 수 있어서, 조상을 섬기는 것은 보본만이 자아의 완성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라 할 것이다.   특히 참봉은 먼 조상인 왕신위(王神位)를 모시고 대제를 봉행하며 전릉을 배알(拜謁) 봉심(奉審)하는 직위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조선조에는 원(園), 전릉(殿陵) 및 사옹원, 내의원, 예빈시, 군기시, 군자감, 소격서 등 많은 관서에 두었던 참봉은 종9품의 문관직으로 사회적 지위가 우대 되었기에 그 직위를 차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참봉이 어떤 이름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들 한다. 그러나 만백성의 어버이로 즉위하여 영민한 통치로 국기(國基)를 튼튼히 하고, 국인의 행복한 삶을 위해 문화를 창달한 왕의 전릉을 배알 봉심하는 것은 영광의 과업이 아닐 수 없다.   경주시의 경우 숭덕전과 능(陵), 숭신전과 능, 숭혜전과 능, 숭무전과 능에 전참봉과 능참봉이 예조로부터 각각 임명되어 왔다. 해방 후부터는 경상북도지사로부터 임명되어 복무를 해오고 있다. 근년에는 신라의 개국공신인 알천양산촌장, 돌산고허촌장, 자산진지촌장, 무산대수촌장, 금산가리촌장, 명활산고야촌장의 위패를 봉안하고 향사를 봉행해오던 양산재가 육부전으로 승격되어 참봉을 천망(薦望)하여 대제를 봉행해 오고 있다.   그래서 박씨 숭덕전릉에는 전(殿)참봉 1인과 능(陵)참봉 10인, 석씨 숭신전에는 전참봉 1인과 능참봉 1인, 김씨 숭혜전릉에는 전참봉 1인과 능참봉 11인, 계림세묘 전참봉 1인 그리고 김해김씨 숭무전릉에는 전참봉 1인과 능참봉 1인, 육부전에 전참봉 1인 등 모두 전참봉 6인과 능참봉 23명이 복무하고 있다, 이 참봉 모두는 각 문중으로부터 지벌과 문식이 있는 자 중에서 천망(薦望)된 분이다.   전참봉은 매일 새벽 미명(未明)에 기상하여 의관을 정제해서 전릉을 봉심(奉審)하고 매월 삭망에는 전릉참봉 모두가 당해 전릉을 봉심하며, 매년 춘분일과 추분일에 전래의 전통의례에 따라 향(享) 대제(大祭)를 봉행한다. 그리고 정조(正朝) 및 추석, 동지에 다례(茶禮)를 봉행한다.   사철 봉심에는 때로 불피풍우해야 하고 냉한 설상을 극복해야 하므로 육신의 고통이 없진 않지만 오직 선왕의 음덕으로 생각하고 불고가사하며 무보수로 봉사적 복무를 수행해 오고 있다.   이들 참봉들은 전래의 문적에서 보면 조선시대에 전참봉은 매월 210전, 능참봉은 190전 등 정해진 녹봉을 받았고, 전의 운영비도 지원되었다. 오늘날은 그 때 보다 엄청나게 부유한 국가 경제인데도 참봉들에게 아직까지 무보수 명예직으로 방치하고 있으니, 이는 마땅히 재고(再考)되어야 일이다. 칠(七)⦁팔질(八耋) 노령의 참봉이 국가문화유산을 보전하고 대제의례를 전승하며 조상을 섬기는 귀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수당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할 사안(事案)이라 생각한다. 전⦁릉참봉을 무보수 명예직으로 100년 세월 동안 방치하는 것이 마땅할까. 참봉 천망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안타까운 현장의 형편을 고려해 볼 때, 매우 늦었지만 당국은 참봉들에게 근무수당을 지급할 수 있도록 조례를 제정하여 시급히 시행하는 것이 올바른 정사(政事)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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