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이 2023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선정했다더군요. ‘이익을 보면 의를 잊어버린다’는 의미라는데 어쩐지 냉소적인 시선이 느껴집니다. 물론 이 ‘올해의 사자성어’가 일부 엘리트 집단의 관점이라고는 하지만 지난 한 해 우리 사회를, 특히 정치권을 바라보면서 갖던 그 절망감은 대부분의 우리들도 공감하게 됩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흘러 한 해가 지나가고 해가 바뀝니다. 오늘 진 해가 내일 다시 뜨는 것은 태곳적부터 변함없이 이어지는 자연의 순환이지만, 우리들은 그 자연의 순환에 스케줄을 만들어 가는 해와 오는 해를 구분하고 새해에 뜨는 해는 지난 해의 나쁜 기운을 다 씻어버린 맑고 신선한 얼굴로 떠오를 것이라고들 기대하고 믿게 됩니다. 그것이 희망이라는 이름의 꿈입니다.   새해는 갑진년(甲辰年) 용의 해입니다. 실재하는 동물이 아니면서도 용은 기린이나 봉황과 함께 우리 민족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신령한 존재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용을 가리키는 순 우리말은 ‘미르’입니다. 조선 전기에 간행된 아이들의 한자 학습 교재 ‘훈몽자회(訓蒙字會)’에 ‘龍은 미르 룡’이라고 나옵니다. 여기서 ‘미르’는 물(水)의 옛말인 ‘믈’과 의미가 상통합니다. 밤하늘을 길게 가로지르는 은하수의 순우리말도 ‘미리내’입니다. 미르님이 사는 신령스러운 냇물이라는 의미지요. 또 옛날 설화나 민속, 문헌에 등장하는 용은 꼭 어떠한 미래를 예측하고 있음으로 미루어 ‘미르’는 ‘미리(豫)’의 옛말과도 상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야사나 설화에서 용의 등장은 그 뒤에 꼭 성인의 탄생, 큰 인물의 죽음, 민심의 이반 등과 같이 미래를 예측하고 있는 걸로 보아 ‘미르’는 앞날의 일을 알고 있으며 또 그것을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는 신성한 존재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민간 신앙에서도 용은 물을 지배하는 신으로 용신 신앙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농경민족에게 물은 생명과 같은 것이었기에 용왕굿, 용신제 등 용을 신격화한 민간신앙의 형태로 전해졌고, 일부는 아직도 전해져 행하고 있습니다. 오래 가뭄이 들면 마을 사람들은 용왕님께 기우제를 지내며 비를 내려달라고 빌었고, 지금도 바닷가에 사는 어민들은 음력 정초나 2월초에 간단한 제물을 차려놓고 용왕에게 풍어와 조업의 안전을 비는 별신굿을 지냅니다. 가까이에서도 이런 형태의 신앙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간혹 오후 늦게 대왕암 부근의 바닷가에 가면 물가에서 촛불을 켜놓고 북을 두드리며 뭔가를 빌고 있는 사람들을 조우하기도 합니다. 그들 역시 용왕님께 무언가를 간절하게 비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용과 관련된 이름으로 ‘미르’ 외에도 ‘이무기, 이시미, 영노, 깡철이, 바리’같은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미르’는 신령스럽고 상서로운 일을 예측해주는 데 비해서 ‘이무기, 이시미, 영노, 깡철이’들은 대개 미처 용이 되지 못해 악심(惡心)을 품고 가뭄을 들게 하고 사람이나 짐승을 함부로 해치는 괴물로 등장합니다. 속담 ‘용 못 된 이무기 심술만 남는다’처럼 이무기들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 나타납니다. ‘깡철이’는 경상도 지역에서 주로 쓰이던 명칭인데 용이 채 못된 뱀으로 하늘을 나는 능력이 있으며 깡철이 하늘을 날 때 온 하늘에 불이 가득해져서 그것 때문에 가뭄이 든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깡철이든 이시미든 미르든, 이런 순우리말 이름은 한자 외래어 ‘용’에 밀려 이제는 사라진 이름이 되고 말았습니다.   새해, 갑진년의 용은 푸른 용이라고 합니다. 예부터 황룡(黃龍)은 황제를 상징하여 권위적이고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이미지로 그려지지만 그에 비해 푸른 용은 우리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푸른 용은 동쪽을 수호하는 사신(四神)으로 오행 중 나무와 봄을 관장하며 비와 구름, 바람과 천둥 번개 등 날씨를 관장하고 모든 생명의 탄생을 다스리는 역할도 맡고 있습니다. 생명이 다시 살아나고 만물이 무성해지는 봄은 승천하는 푸른 용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비록 사사로운 이익 앞에서 의로움 따위는 저만치 내던져버리던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을 보며 실망을 금할 수 없던 지난 해였지만 해는 지고 다시 떠오릅니다. 박두진시인의 시 구절처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로 해가 말갛게 다시 솟으면 땅 속 깊은 곳에서 잠이 깬 푸른 용이 날아오를 것입니다. 푸른 용이 날아오르면 시들어가던 만물에 생명수를 뿌리고 어두웠던 시간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어 삐뚤어진 것들을 바로잡을 것입니다. 그래서 2024년이 저물어 갈 때쯤 한 해를 돌아보면 ‘파사현정(破邪顯正) -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르게 드러냄)’의 해였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