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황궁과 5리 떨어져 있어 ‘황오리’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던 경주시 황오동은 2021년 12월 폐역이 된 경주역 동편 바로 옆 기차역 주변의 오래된 마을이다. 근대까지 교통·행정·상업의 중심지였던 황오동은 현대화를 거치면서 빠르게 쇠퇴했다. 원도심 중에서도 다른 마을과는 달리, 조명받지 못했던 쇠락 일로의 마을이었다. 그런 황오동(이하 황촌)에선 최근 들어 활력이 넘친다. 경주 대표 관광지인 황리단길 등과 인접해있으면서도 그간 가려졌던 이 마을이 주민들의 노력으로 다시 ‘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2020년 7월 ‘일상이 여행이 되는 마을, 행복 황촌’이란 사업명으로 경주역 동편 일대 황오 지구 구도심 지역(16만4500㎡)이 일반근린형 도시재생뉴딜사업 대상지로 최종 선정되면서부터다.2021년부터 2024년 올해까지 4년간 국비 72억 포함, 총 127억(마중물사업)이 투입돼 활력이 넘치는 황촌, 살고 싶은 황촌, 함께하는 황촌, 주민이 행복한 마을 만들기 등을 표방하며 공공상생점포 및 주민복합문화공간, 마을부엌·카페, 게스트하우스(경주 한 달 살기 프로그램 운영), 나들이길·문화마당 조성, 폐가 철거 및 집수리 등의 빈집 정비, 주민역량 강화 등 주민공동체와 상권 활성화를 위한 사업이 추진 중이다. 이 마을 사업은 행복황촌, 일상이 여행이 되는 마을, LOCAL STAY 등을 키워드로 내세우며현재 진행되고 있는 원도심(성동 지구) 도시재생뉴딜사업과 연계돼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이곳 황촌은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관사촌’이 옛 영화 속 흑백 필름처럼 남아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 핵심 콘텐츠인 관사촌은 당시 경주역과 함께 조성된 배후 주택지다. 일본 현지의 주택이나 지역에 남아있는 다른 적산가옥과는 다른 형태의 관사는 색다른 적산가옥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오랫동안 지역 주민들에게는 원효로 북쪽은 ‘뒤 관사’, 원효로 남쪽은 ‘앞 관사’로 불렸다. 지역의 어르신들에게는 ‘경고지하도 철도관사’로 통한다. 뒤 관사의 한 주택은 최근 주인이 바뀌어 내부 수리 중이었다. 한 눈에도 전형적 관사의 외양을 가진 이 주택의 주인인 최성호(행복황촌 협동조합 이사)씨는 “이 관사는 다른 합숙소 형태의 관사와는 달리, 단독 관사 형태로, 당시 역무원 중 고급 관리 관사로 추정된다. 1929년 지어져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관사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황촌은 근대건축물은 물론, 1970~90년대 경주의 삶의 발자취와 정취를 간직한 유일한 동네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선 개발에서 외면당하고 관심에서 벗어난 시간들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근현대 지층의 건축물을 비롯한 유무형적 독특한 감성이 고스란히 보존돼 ‘도시 재생’으로 다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주 어느 동네도 가지지 못한 이 동네만의 소중한 자산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주민이 행복한 마을 만들기에 한창이다. 군데군데 버려진 폐가에선 도시재생의 꽃이 피고 있다. 이제 황촌은 여행객들에게 생소한 곳이 아니라 다른 지자체 도시재생팀 사업 견학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최근에는 마을 만들기 사업이나 마을 공동체 사업, 사회적 경제조직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에서 일주일에 서너 팀 정도 찾는다고 한다. 그러니 이 마을 골목에선 ‘낯선’ 이들과의 만남이 심심치 않다.지역주민으로 구성된 여행사, 주민들이 주도해 조성한 마을 호텔, 청년들의 젊은 아이디어로 재탄생한 먹거리 가게들이 운영되면서 ‘황촌’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2023년에는 행복황촌 도시재생뉴딜 사업의 일환으로 지역공동체 회복과 도심활력 증진을 위한 생활밀착형 복합문화공간 ‘황촌마을활력소’이 들어섰다. 이곳은 부족한 생활 편의시설 제공을 포함한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 건립을 위해 추진됐다. 또 황촌술도가(수제막걸리 만들기), 황촌파티쉐(어르신 제빵교실), 골목이야기(디지털아카이빙), 황촌 골목길 콘서트 등 주민 제안공모사업도 활발하다. 최근 장미란 문체부 제2차관 일행도 황촌을 찾아 ‘경주 황촌 체류 여행’의 일정을 함께 하며 황오연가·황오여관 등 마을호텔(도시민박 시설)에서 전반적인 숙박 환경을 점검했을 정도로 성공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천천히 이 마을의 골목길을 걸으며 재생의 열기를 살펴보았다. 정리된 가로 경관과 비어서 방치돼 있었던 노옥들이 개선되고 정비돼 한결 다듬어지고 깔끔해진 것과 새롭게 문을 연 몇몇 상점들이 입점한 것 외에는 마을의 외형적 변화는 거의 없었다. 이는 도시재생의 원래 취지에 부합하는 것으로 하드웨어적 건물을 기본으로 제공하고 주민들이 마을공동체를 만들어 직접 운영하는 과제에 충실한 결과로 보인다. 행복황촌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민대식 센터장은 “세월의 느낌이 묻어나는 오래된 골목 등이 주요 콘텐츠로, 훼손하지 않는 것이 기본 가치다. 주민들에게 우리가 가진 경쟁력은 바로 이것”이라고 강조한다고 했다. 특히 오래 방치돼 있던 빈집들이 활용사업의 일환으로 화려한 변신을 거쳐 거듭나고 있다. 지난 3월 내국인 숙박이 가능한 경북 1호 도시민박업 마을호텔이 경주서 첫 문을 열었는데, 이는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 내국인 숙박 특례 전환’으로 도시재생 사업지구 내 국·내외 관광객을 맞이하는 마을호텔이다. 지역 상권 회복 및 빈집 정비의 일석이조 효과를 노리며 선순환적 도시재생의 좋은 사례가 되고 있는 이 사업은 관광진흥법령에 따라 외국인만 가능하던 숙박에서 도시재생을 위해 설립된 마을기업에 한해 내국인도 숙박할 수 있게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본격화됐다. 마을기업인 ‘행복황촌’ 도시재생 거점시설인 마을호텔은 ‘행복꿈자리’, ‘블루플래닛’, ‘황오여관’, ‘스테이황촌’ 등 현재까지 7개 업소가 등록됐다고 한다. 핵심 관광지 내 유명 호텔에서 벗어나 구도심에 머물며 지역민들의 고유한 삶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공급과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래서 황촌은 오랜 도심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유적지를 돌아보는 관광이 아닌 머물다 쉬는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 경주의 주요 도심 관광지와 걸어서도 이동 가능한 도보 관광의 요충지인 이 마을의 장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일제강점기였던 1930년 전후 경주역 역무원들의 숙소였던 철도 관사를 리모델링한 풀빌라 ‘황오여관’, 구옥을 개조한 한옥 체험업 ‘소여정’, 에어비앤비 게스트하우스 ‘블루플래닛’, 빈집을 리모델링한 마을호텔 1호 ‘스테이 황촌’, 100년의 역사가 담긴 ‘황오연가’, 1년에 걸쳐 직접 부부가 직접 개조한 집, 詩人 부부가 운영하는 ‘스테이 詩In’, 도시재생 거점시설 공유숙소 ‘행복 꿈자리’ 등이 마을 곳곳에 조성됐다. 관사로 지어진 주택이 주민들의 손을 거쳐 민박으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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