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시장 한복판에서 가느다란 두 다리에 검은 비닐 장화를 신은 장애인이 한 손으론 땅을 짚고, 다른 손으로는 작은 손수레를 밀며 장바닥을 기어가고 있었다. 마침 그날은 입추가 지났으련만 날씨마저 몹시 추웠다.  이 때 오토바이를 몰던 중년 남성 한 분이 손수레 앞에 멈춰 선다. 거동이 좀 이상했던가. 옆을 지나치던 필자도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그 중년 남성을 응시했다.  그 남성은 장애인의 모습을 애잔한 눈초리로 바라보더니 지폐 몇 장을 자신의 장갑 속에 넣어 장갑채로 장애인에게 건네주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일에 그는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돈과 장갑을 받아들고는 얼떨떨한 눈치다. 순간 그의 손등이 내 눈에 들어왔다.   마치 거북등 껍질 같은 손등이다. 동상이 걸렸는가. 손등이 퍼렇게 부풀어 있었다. 겨우내 얼음장보다 차가운 길바닥을 맨 손으로 기어서 다녔으니 온전할 리 있으랴.  오토바이 위의 그 남자는 장갑 채 그에게 돈을 주자마자 헬멧을 쓰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 남성,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어디에 사는가.  이후 그곳 시장을 갈 때마다 그 장애인과 마주치곤 한다. 그의 두 손을 자세히 살펴봤다. 지난날 그 오토바이 탄 남성이 주고 갔음직한 검은색 장갑을 그는 손에 착용하고 있었다.   그 날 오토바이 탄 중년남성, 그가 장터의 장애인에게 주고 간 장갑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화롯불이나 진배없었을 것이다.   혹한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장바닥을 기어 다니느라 꽁꽁 얼어붙은 그의 손, 그 손에 장갑을 끼워 준 남성이 참으로 아름다운 이타심을 지닌 착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손이 하는 역할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사람들은 손에 대한 고마움을 모른다.어느 유명한 과학자는 한국인의 세계적인 창조적 발상은 젓가락질에서 나온다고 했다.   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연약하고 작은 손으로 오만가지를 창조해낸다. 아이들 양육하고, 밥 지어 먹고, 어머니 병 수발에 글도 쓴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재래시장에서 만났던 오토바이 남성처럼 남의 아픔을 진정으로 어루만져준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감흥을 안겨주는 글 또한 손으로 쓴다. 손으로 쓰되 따뜻한 가슴을 품고 있어야 진선미 서린 싹이 트는 법이다. '예와 덕성을 제대로 갖추고 세상에 유익한 목소리를 남기려고 고뇌하며 글을 쓴 적 있던가?' 가슴에 손을 얹어본다. 작가란 좋은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 창작을 한다.  우리 고장의 고(故) 목성균 수필가는 무명작가로 오랫동안 창작활동을 하다가 사후에 유명 작가로 조명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 다수를 이구동성으로 명작이라고 한다. 세사만사世事萬事를 따뜻하고 정감 어린 눈으로 바라 본 후 정갈한 손으로 써내려간 그의 서정적 문장력 덕분이다. 가히 높은 예술적 경지가 아니고선 창작되지 못하였을 거란 칭송이 이 때문이다.  그는 오랜 동안의 지병으로 고통을 겪다가 눈을 감았다. 누구보다 뜨겁게 창작열에 불타던 고 목성균 수필가의 아름다웠을 추억을 떠올리며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를 입속으로 흥얼거려본다.바하의 선율에 젖은 날이면/잊었던 기억들이 피어나네요./바람에 날려간 나의 노래도/휘파람 소리로 돌아오네요/내 조그만 공간 속에 추억만 쌓이고/까닭 모를 눈물만이 아른거리네/작은 가슴 모두 모두와어/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먼지가 되어 날아 가야지/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이하생략)선비정신의 표상 목성균 작가다. 그가 생전에 손아귀에 움켜쥐려했던 것은 명성과는 거리가 먼 자기만의 영역인 문학을 향한 치열한 작가정신이었을 게다.   요즘 세태를 보면 그릇된 욕망으로 인하여 높은 신분에 올랐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인간이 불행해지는 것은 어찌 보면 손아귀에 잔뜩 움켜쥐려는 헛된 욕심 때문이라면 지나칠까?   세상만사가 지나고 보면 한낱 먼지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난 고목성균 작가가 못내 그리워지는 이즈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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