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으로 한때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했던 대이란 교류가 다시 막혔다. 그러나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의 중심지로 실크로드를 통한 신라와의 교역이 활발했던 곳이다. 익숙하지만 낯선 이란의 이야기를 통해 21세기 실크로드를 꿈꿔본다. 이민족에게도 관용과 배려의 정치를 편 키루스 대왕의 인류 최초의 인권 선언문을 쐐기문자로 새긴 `키루스 실런더`는 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고 2010년 고향인 이란을 찾아 테헤란에 있는 국립박물관에서 4개월간 전시됐다. 1971년 팔레비 국왕 시절 페르시아 제국 건설 2500주년 기념으로 대여 전시한 후 39년만의 일이었다. 대영박물관의 임대전시 형태로 열린 전시를 계기로 이란 국민들은 영국을 향해 자신들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반납하라고 졸랐지만 영국은 외면했다.  ■ 세계최초 대제국 아키메네스의 힘  전시를 위해 `키루스 실린더`가 그해 9월 10일 테헤란에 도착했을 때 마흐무드 아마디네자드 당시 이란 대통령은 키루스 대왕을 `세계의 왕`이라고 표현했다. 호메이니가 혁명을 이루고 난 후 이슬람이 지배한 페르시아 이전의 페르시아와 관련된 표현을 극도로 자제한 것에 비한다면 매우 이례적인 표현이었다. 그만큼 `키루스 실린더`는 이란뿐만 아니라 세계가 자랑하는 문화유산이다. `키루스 실린더`를 영국에 반환한 이후 이란은 실물 크기의 복제품을 제작해 국립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파사르가드에는 키루스 대왕의 무덤이 실존한다. 시라즈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버리고 파사르가드 이정표를 따라 진입하면 곧바로 허허벌판에 강건한 대리석 건조물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키루스 대왕의 무덤이다. 1821년 클라디우스 제임스라는 고고학자가 이 건조물이 키루스 대왕의 무덤이라고 선언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예언자 솔로몬의 어머니 무덤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중세 기독교인들인 이 무덤을 중요한 순례지로 여겼다. 클라디우스 제임스는 이 무덤에 인접한 왕궁터에서 발견된 비문에 `나는 아키메네스 왕 키루스다`라고 쓴 쐐기문자로 이 무덤이 키루스 대왕의 무덤이라고 확정했다.  키루스 대왕의 무덤은 한눈에 봐도 튼튼하게 지어졌다. 석회질 대리석으로 만든 이 무덤은 강도 7도의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2500년이 넘는 세월 비바람에 견디고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남은 것은 역시 키루스 대왕의 위대함을 상징하는 듯하다. 석실 재단의 좌우 길이는 12m, 전체 높이는 11m로 6개의 계단을 만들어 오르내릴 수 있도록 했다. 무덤의 실제 높이는 2.11m다. 키루스 대왕은 바빌론을 점령하고 바벨탑에 매료됐고, 바벨탑을 본떠 자신의 무덤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바벨탑에 비해서는 왜소한 규모지만 그 모습은 바벨탑에 못지않다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견해다.  ■ 잔해만 남은 왕궁터에 제국의 위대함 남아  키루스 대왕의 무덤에는 의미심장한 설화가 전한다. B.C. 330년에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점령했을 때 다리우스왕이 세운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웠다. 그리고 페르시아의 시조격인 키루스 대왕의 무덤을 깨기 위해 파사르가드까지 달려왔다. 그러나 무덤 앞에서 알렉산더 대왕은 멈칫했다. 무덤 앞의 비문을 읽었기 때문이다. 비문에는 "나 키루스는 한때 세계를 지배했지만 언젠가는 이 땅이 다른 왕에 의해 점령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점령자여, 그대도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 점령당할 것이니 내 무덤을 건드리지 말아다오"라고 쓰여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비문을 읽고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자신이 입고 있던 대왕의 옷을 벗어 키루스 대왕의 무덤에 덮어줬다.  키루스 대왕의 무덤을 지나치면 그가 지은 왕궁터가 나온다. 2개의 궁전터와 당시 페르시아인들을 지배했던 조로아스터교의 신전, 연회장 등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 유적들은 페르시아 예술과 건축의 기초를 이룬다. 그 가운데 조로아스터교의 신전인 `탈이 타흐트`는 지금은 기단만 남아있다. 키루스 대왕이 처음 돌로 짓기 시작했지만 그가 사망하자 중단됐다가 다리우스왕이 진흙 벽돌로 완공했다.  외에도 비록 잔해들만 남아있지만 음악당, 연회장 등의 화려한 유적들이 최초의 페르시아 제국인 아키메네스 왕조의 위대함을 잘 설명해 준다. 제국은 사라져 버렸지만 그 역사는 오랫동안 지속됐다. 여전히 중동지역 맹주로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란의 원형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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