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엔 친교를 위한 정해진 공식은 없다. 다만 끼리끼리 초록은 동색이라고 성격. 취향, 삶의 지향점 등이 엇비슷하게 맞으면 만남이 잦아진다. 여기서 `끼리끼리`란 동양에서 흔히 말하는 기氣가 통하는 사이다. 기엔 분명 좋은 기운이 있고 한편 음기陰氣인 나쁜 기운도 있다. 그래 그런 기운을 두고 "기가 살았다. 기색이 안 좋다. 기력이 쇠했다"라고 말한다. 필자가 무슨 기 연구가는 아니나 초등학교 앞을 지나치다보면 아이들 몇몇이 어깨동무를 하며 무리지어 노는 것을 보곤 한다. 이는 서로 기가 통하는 사이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 기를 매우 중요시했다. 묘 터를 정할 때도 집터를 고를 때도 늘 기를 염두에 두었다. 요즘도 어느 풍수지리학자는 아파트에도 명당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터수다. 인간 삶을 지배해 온 이 기는 그러고 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분명코 통하는 듯하다. 어떤 이는 상면만 해도 까닭 없이 싫은 사람이 있다. 어느 사람은 주고받는 것 없이 괜스레 좋은 사람도 있다. 후자일 경우, 굳이 기를 들먹인다면 서로 기가 잘 통하는 사이라고 감히 말 할 수 있다. 어차피 사회에서 맺어진 인간관계는 이해타산에 얽혀서 그 관계를 유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러 개의 가면을 과감히 벗고 민낯으로 만날 수 있는 사이는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필자 같은 경우 성격이 단순해서 인지, 아니면 몇 퍼센트 결여 탓인지 사람을 대할 때 미처 허울을 준비 못하는 어리석음이 있다. 그래 있는 그대로 여느 가림막 없이 진실, 사실을 상대방에게 여실히 드러내다가 낭패 당하기 예사다. 이로보아 세상은 때로는 진실이 안 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나 할까. 이는 진실은 걸음이 느린 탓일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타인과는 보이지 않는 거리를 두는 게 지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 생각으론 타인 앞에서 자신을 은폐 하여 가식의 너울을 쓴 채 언행을 꾸미는 일은 인간관계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중용을 지켜야 원칙인데 이것을 지키는 처사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어느 한 쪽으로도 한 치 치우침 없는 사람과의 적당한 거리, 이 거리는 수학적 수치로도 계산 할 수 없다. 거리는 정확히 말해 서로 떨어져 있는 두 곳 사이의 거리라 정의 할 수 있다. 또한 `거리` 하면 여러 사물과의 간격을 떠올리겠지만 평소 야구에 관심 있는 필자는 투수판에서 홈 플레이트까지 거리가 매우 흥미롭다. 그 거리는 다 알다시피 18.44m이다. 이 거리에서 스트라이크가 나오고 번트, 병살 타, 장외 홈런, 데드 볼이 나오기도 하잖은가. 어찌 보면 인생사도 이만큼의 거리에서 만남, 사랑, 탄생, 이별, 죽음 등이 벌어지고 있다면 지나칠까. 지인의 경우만 하여도 그렇다. 지인이 사는 아파트 바로 위층에 시부모님이 살고 계신단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지인 집을 찾아와 남편 반찬까지 자신의 식단대로 요리 해주라며 사사건건 간섭을 한단다. 그 바람에 부부 사이마저 멀어지고 있다며 하소연을 해온다.   심지어 그녀는 시댁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고 싶다고도 했다. 그런 지인 말에 어디선가 읽은 내용이 문득 떠올랐다. 며느리가 뜨거운 국을 끓여 들고 그것이 미지근하게 식을 만치 거리인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가 시댁과의 알맞은 거리란다. 이런 거리에 시댁을 두고 사는 게 서로 관계 유지에 좋다는 글을 읽은 후 격세지감마저 느꼈다. 이는 예전엔 시부모를 한 집안에 모시고 사는 게 자식으로서 당연한 도리로 여겨서 더욱 그렇다. 이로보아 야구에서 투수판의 거리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이즈막이다.  이제 머잖아 이 나라를 좌지우지할 새로운 정치인들과 우린 만난다. 어찌 보면 정치인들과 민초와의 거리는 야구 투수판에서 홈플레이트 거리인 `18.44m` 보다 더 가까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선거철만 돌아오면 정치에 대한 환멸을 더욱 부추기는 현상에 입맛이 씁쓸하다. 평소엔 거들떠도 안보다가 선거철만 돌아오면 하다못해 거리에서 구두를 닦는 하층민들에게도 복지를 약속하며 허리를 반쯤 꺾던 정치인들 아닌가.   그러나 이들이 제자리에 안착만 하면 언제 그런 겸손과 따뜻한 인정이 있었느냐는 듯 거리가 까마득하다. 국민의 그림자는 바로 정치인이다. 오늘이라도 정치인들은 자신과 민초 사이의 거리를 새삼 재어 볼일이다. 그 일이야말로 정치가 생물임을 역력히 증표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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