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 미술관은 단순한 문화 인프라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한 도시의 문화적 품격을 드러내는 존재며 나아가서 문화관광산업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대표적인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선진국의 주요 도시들은 오랜 세월 고민하고 지역민과의 협의를 거쳐 세계적 수준의 미술관을 건립하는데 공을 들인다. 오일 부국인 카타르나 UAE 같은 나라는 누구나 들어도 수긍이 가는 미술관 건립 프로젝트를 마련하고 문화강국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스페인의 공업도시였던 빌바오가 금속과 화학공업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심각한 침체의 길로 접어들다가 구겐하임미술관 분관을 건립해 관광문화도시로 거듭났다는 예는 새삼 꺼내들 이유도 없다.  국내의 여러 도시도 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광역자치단체는 이미 미술관을 가지고 있고 기초자치단체들도 저마다 도시의 정체성에 걸맞은 미술관을 보유하고 있거나 새로 만들기 위해 고심을 하고 있다.  미술관이 과거의 전시기능 일변도를 벗어나 복합문화공간으로의 기능을 가지는 것이 트렌드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미술관을 만들어 개성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는 곳도 많다. 또 어느 지자체는 개점휴업 상태의 실패를 경험해 애물단지로 전락한 경우도 있다. 미술관을 만들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비전을 세워야 하는지를 잘 알게 하는 사례다.  경주시가 드디어 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경주시립미술관 건립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이 완성된 모양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경주시립미술관은 황성공원 내 2535㎡(766.8평) 부지에 150억원을 들여 지상 2층 건물로 짓는다.  최종 부지로 선정된 황성공원내 문화공원 부지는 미술관 접근성, 주변 관광지, 인근 미술관과의 연계성, 시민 이용 편의성 등의 요인에서 강점으로 꼽혔다. 미술관 건립비는 총 150억원 규모다. 경주시는 내년까지 토지조성비를 투입하고 2024년까지 건축공사비, 용역비를 2025년까지는 전체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 미술관 기본 공간 구성은 연면적 2535㎡(766.8평)에 전시실 594㎡, 수장고 251㎡, 사회교육시설 53㎡, 도서실 29㎡, 사무실 70㎡, 편의 공간 24㎡ 등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지하에는 일반수장고 세미나실, 지상 1층에는 기획전시실, 개방형 수장고, 전시실 등이, 지상 2층에는 체험공간, 창작 스튜디오 등이 들어선다.  용역 보고서에는 운영 전략 방안으로 시립미술관으로서 경주의 문화와 예술 인프라 강화와 콘텐츠 형성을 위해 기존 공립미술관과의 차별화, 경주시의 역사적 문화를 신라 예술을 통해 재조명,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예술 중심의 인큐베이팅 지원 등으로 구상한다고 돼 있다.  물론 경주시립미술관이 용역 결과대로 지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양한 의견을 더 들을 것이고 보고서에서도 제시된 기존 공립미술관과의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한 아이디어도 수렴해야 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용역 보고서대로 지을 것이라면 여기서 멈추는 것이 옳다. 5억원이 넘는 용역비용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이 보고서를 준용한 계획을 세운다면 150억원의 예산을 허비할 공산이 크다.  지금까지 시작하지 못한 미술관 건립을 한두 해 늦춘다고 해서 지각변동이 일어날 일도 아니며 더욱 꼼꼼하고 세계적인 문화관광도시 경주의 위상에 걸맞은 미술관 건립 계획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 먼저 장소성에 대해서 말하자면 황성공원은 그리 매력적인 공간이 되지 못한다. 접근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인근 관광지와 너무 이격돼 있으며 중심상권과의 연계성도 없다. 경주에 남아 있는 가장 좋은 장소는 누가 뭐래도 구경주역 부지다.  물론 이 부지는 코레일로부터 매입해야 하고 문화재 발굴조사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부지 매입을 위해서는 예산 확보를 위해 노력하면 되고 문화재 발굴조사가 끝날 때까지 치밀한 건립계획을 마련하면 된다. 파리의 퐁피두센터가 파리의 구도심인 레알지구에 들어서 그 지역의 상권을 살리고 인근 관광지와 시너지 효과를 얻은 선행사례를 본볼 필요가 있다.  또 공간 구성 계획도 기가 막힌다. 사무실을 21평 안팎의 좁은 공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미술관 운영 인력은 크게 관리부서와 학예연구 담당부서로 나뉠 수 있는데 최소 인력이라 하더라도 15명은 넘어야 한다. 21평의 면적에 15명이 업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아마도 필수요원을 10명 미만으로 생각한 모양인데 이해할 수가 없다. 편의 공간은 7평을 조금 넘는다.  의자 몇 개를 두고 잠시 쉬어가라는 말인가. 현대의 미술관에는 카페에 준하는 휴게공간이 필요하다. 7평의 휴게공간에 누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지 기가 막힌다. 게다가 사회교육시설은 16평으로 계획됐다.  미술관의 사회교육시설은 세미나와 콘퍼런스, 심지어는 콘서트까지 할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어처구니없는 계획이다. 전시실 공간은 180평 정도를 잡았다고 하니 충분하지는 않지만 수긍할만 하다. 다른 도시의 미술관과 비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최소한 상식선의 공간 계획은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건립예산을 총 150억원 규모로 잡은 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150억원이 아니라 15억원을 투입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콘셉트의 미술관을 만들 것이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한수원이 경주에 자립형사립고등학교를 짓기 위해 출연하기로 한 예산 787억원이 학교 건립이 무산되자 시립도서관과 미술관을 짓는데 사용키로 한 것이다.  150억원으로 미술관을 건립하고 나머지는 도서관을 짓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예산이 적다. 미술관을 건립하고 대표적인 작품을 구입하는데 드는 비용만 하더라도 150억원이 모두 투입될 수도 있다. 물론 앞으로 예산을 더 늘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단순하게 150억원이라면 충분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다면 큰 오산이다.  용역보고서에 제시된 `경주시 문화예술 이미지 구축`과 `경주시 관광명소 확보`, `경주시민의 문화예술 복지관련 인프라 구축`, `문화예술도시 이미지 극대화 및 미술 관련 교육·체험 인프라 육성`이라는 미술관의 비전을 이 계획대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여기서 멈추기를 권고한다. 이 계획대로라면 조그마한 전시공간 하나를 마련해 무수하게 많은 실패한 미술관의 `one of them`에서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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