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1일 `경주김씨영분공대종회`에 관련된 일로 `경주김씨남해회관`에 도착하여 이곳 남해를 세거지로 하여 대대로 생활하고 있는 수석부회장의 안내로 경주김씨수은공파 각 문중대표와 만나 종사에 대한 정담을 나눈 후 `남해마늘축제`와 `6.25와 월남전참전 유공자흔적남기기전`을 관람하게 되었다.  제일 먼저 입장한 곳은 `6.25와 월남전참전 유공자흔적남기기展`을 하는 전시장이었다. 입구 안내 테이블 방명록에 `忠則盡命 百世不忘(충칙진명 백세불망)`이라 싸인(sign)하고 진열품을 살펴보았다. 6.25전쟁과 월남 전쟁에 참전했던 참전유공자들이 전장에서 삶과 죽음이 어떻게 유지되고 마감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서 남겨 놓은 일기, 편지, 앨범, 소장품 등 1,286점의 유품이 깨끗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전쟁에서 적을 사살하고 총상을 입은 내용과 가족에게 보낸 편지초안 및 각종 훈장 등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그 사이 수많은 세월이 흘러 더러는 퇴색되고 훼손된 것이 없지 않았으나 대부분 깨끗하였으며,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참으로 가슴 뭉클한 유품 들이었다. 특히 그 가운데 일부 훈장은 자손들이 없어서 버려진 것도 많다고 하니, 마음 아팠다.  마늘 전시장에는 남해산의 특산품인 굵고 깨끗한 마늘을 청결하게 장만하여 보기 좋게 묶어 진열해 놓았기에, 시각적 자극을 느끼게 하였다. 그리고 마늘을 붙여서 유아, 초가, 공룡 등을 만든 조각품이 매우 아름답고 독창적이어서 유아교육에 참고가 될 것 같아서 촬영하였다.  전시장 바깥 공간에 서포 김만중 선생의 동상이 있었다. 선생은 1637년에 태어나서 1692년에 졸하였다.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시호는 문효(文孝)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조선조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의 증손이고, 충렬공 김익겸의 유복자이다.  어머니 해평윤씨는 이조참판을 역임한 윤지(尹墀)의 딸이라고 한다. 선생은 어머니의 엄격한 가르침으로 14세 때(1650, 효종 1년)에 진사 초시에 입격하고 효종3년(1652) 진사시에 1등으로 입격하였으며. 1665년(현종6)에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출사하게 되었다.  정언, 지평, 수찬, 교리 등의 관직을 역임하고, 1671년(현종12)에는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 및 삼남지방의 진정득실(賑政得失)을 조사하기 위해 분견(分遣)된 뒤에 돌아와 부교리, 헌납, 부수찬, 대제학을 지냈다. 1675년(숙종 1)에 동부승지로 재직할 때 인선대비의 상복문제로 서인이 패배하여 삭탈관직 당하게 되었다.  숙종15년(1689) 3월 7일에 남해로 유배되어 있을 때, 어머니는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다가 병으로 선화하였다. 효성이 지극했던 선생은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해 마음 아파하다가 1692년(숙종 18) 4월 30일에 남해 노도에서 56세로 사세(辭世)하였다고 전해온다.  선생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정철, 윤선도와 함께 한국 3대 고전 문학가이며, 충(忠)과 효(孝)와 문(文)의 대표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그는 "우리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말을 통해 시문을 찾는다면 이는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 `국문가사예찬론`은 상당히 주목을 받았다. 『구운몽』, 『사씨남정기』 등의 소설은 지금까지도 관심의 대상이 되어오고 있다.  특히 선생은 당쟁 속에서도 곧은 선비의 정신으로 직언하는 충신이었고,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를 봉양하는데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던 효행으로 1706년에 숙종으로부터 정표(旌表)가 내려진 효자였다.  선생의 좌상 옆에는 선생의 프로필과 사친시(思親詩)를 담은 비가 세워져 있었다. 유배지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다가 그 그리움을 시문에 담으려고 붓을 적시니 눈물이 쏟아져 시를 쓸 수 없어 붓을 던졌다는 시귀(詩句)를 읽어보니, 어머니를 그리워했던 효행에 대해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는 선생의 문집인 『서포집(西浦集)』에 `기사(己巳) 9월 25일`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지만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애절해 `사친시(思親詩)`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모체로 부터 태어나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랐기에, 그 호천망극한 은혜를 어찌 잊을 것이며, 애써 길러주신 구로지은(劬勞之恩)을 모른다면 또한 인간이라 할 수 있겠는가. 사친시비(思親詩碑)에 새겨진 글자 하나하나에 잊을 수 없는 사모효심(思母孝心)을 함께 공감해 보았으면 어떨까하여, 여기 사친시(思親詩)를 옮겨 전해 본다.  今朝欲寫思親語 (금조욕사사친어) 오늘 아침 어머니 그리운 말 쓰려 하니  字未成時淚已滋 (자미성시루이자) 글자도 되기 전에 눈물 이미 흥건하네.  幾度濡毫還不擲 (기도유호환부척) 몇 번이나 붓 적셨다가 도로 던져 버렸으니  集中應缺海南詩 (집중응결해남시) 문집에 남해에서 쓴 시는 응당 빠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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