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이렇듯 비가 내리는 스산한 날엔 괜스레 마음이 침잠한다. 그동안 코로나19가 안겨준 두려움 탓인가 보다.   역병 창궐 후 날씨에 따라 감정 기복이 더욱 심화(深化)됐다. 이젠 우울감이 골수에 깊이 침전된 느낌이다. 아예 우울함이 심연에 온통 당의정을 입힌 듯하다고나 할까.   언제부터인가 이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는 꼭 빈대떡을 부쳐 먹곤 하였다. 고소한 들기름으로 부친 따끈한 김치전은 매우 맛깔스럽다.   이로 보아 우울증을 앓으면 살이 찐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우울할 때마다 음식 먹는 일로 마음을 달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빈대떡도 우리 고유의 음식이다. 김치와 불고기는 국제적인 식품으로 자리한지 이미 오래다. 외국의 슈퍼마켓에서 김치를 팔고 있을 정도다. 빈대떡 역시 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음식 중 하나다.   1983년도 쯤 어느 신문사 보도 내용으로 기억한다. 해외 각국의 주한 대사관 부인들 수십 명이 모인 모임에서 일이다.   우리나라 음식을 그녀들에게 시식 시키고 선호도를 조사했나 보다. 이때 그녀들은 우리의 맛있는 음식 제1위로 빈대떡을 꼽았다고 했다. 김치, 불고기에 이어 빈대떡의 풍미(風味)가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음을 알 수 있다.   전라도가 고향인 지인과 가끔 전화 통화를 한다. 어느 때 그녀에게 전화를 걸면, " 허드레 떡 부쳐 점심으로 먹는 중이야"라고 말할 만큼 그녀는 주식(主食)에 가까우리만치 빈대떡을 즐겨 먹는다.   그녀가 빈대떡을, `허드레 떡`이라고 지칭할 때마다 그 말이 왠지 정겹게 다가왔다. 하여 빈대떡을 각 도마다 어떻게 부르는지 알고 싶었다. 마침 이규태의 `빈대떡`이라는 글을 통하여 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이규태는 이 글에서 빈대떡을 서울에서는 빈자 떡, 황해도에서는 막부치, 전라도에선 허드레 떡 혹은 부꾸미, 평안도는 지짐이 등으로 불리고 있다고 밝혔다. 각 도마다 빈대떡의 이름이 다른 것에 흥미로웠다. 빈대떡은 요즘도 서민들이 즐겨먹는다. 빈대떡만 전문으로 하는 식당도 있잖은가. 빈대떡 종류로는 녹두지짐이, 해물파전, 김치전 등이 있다. 이규태는 윗글에서 빈대떡은 빈자(貧者)의 뱃속을 채워주는 음식이었다고 말한다. 명절 전야 서울의 양반집에서 빈대떡을 수레 가득 싣고 남대문 밖 빈민굴이나 이태원의 행려병자들에게 나눠주곤 했단다. 이 음식을 나눠 주면서," 북촌 김 대감의 보시요. 청계천변 현 대감의 적선(積善)이요"를 외쳤다고 했다. 예로부터 돈푼깨나 있는 양반들이 빈자의 허기진 뱃속을 명절 때만큼이라도 돌아보게 했던 빈대떡 아닌가. 굶주림에 허덕이는 일만큼 서러운 일이 어디 있으랴. 배를 잔뜩 주렸던 차에 양반들이 던져준 빈대떡을 허겁지겁 먹었을 빈자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이때 수년 전 일도 갑자기 오버랩 됐다. 겨울 어느 날 서울 시청 앞 지하도를 지나칠 때다. 냉기 도는 시멘트 바닥에 종이 몇 장에 의지한 채 지내는 노숙자들이었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그들 모습이 참으로 비참해 보였다. 겨울철인데도 그곳에선 악취마저 진동했다.   앙상한 닭 뼈를 수북이 쌓아놓고 그것에서 살점을 뜯어 먹는 노숙자도 있었다. 아이를 등에 업은 여인과 그녀의 자녀인 듯한 2명의 어린아이들이 닭 뼈에서 정신없이 고기를 발라먹는다. 그 모습은 차마 두 눈 뜨고 바라볼 수 없으리만치 애처로웠다. 무슨 연유로 엄동설한에 어린애들을 데리고 밖으로 내몰렸는지 사연은 모르겠다. 무엇보다 코끝이 찡했던 것은 어린아이들 외양이었다. 흘러내리는 누런 콧물로 얼굴이 범벅이 된 여인 등에 업힌 아이는 돌도 채 안 돼 보였다. 그중 사내아이는 대 여섯 살, 여아는 여덟 살쯤으로 보였다. 이 아이들 외모가 흡사 강아지의 비루한 모습과 닮았다면 지나칠까. 그 아이들은 보온성이 전혀 없는 남루한 얇은 옷을 걸쳤다. 그 모습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만 원짜리 넉 장을 여인 등에 업힌 아이 손에 쥐여주었다. 계단을 오르다 말고 잠시 뒤를 돌아봤다. 그때까지 필자 등 뒤에서 고맙다고 연신 허리를 굽히는 여인 모습이 더욱 마음을 짠하게 했다. 이 여인 일이 아니어도 얼마 전 생활고를 비관, 세 모녀 및 청년이 자살한 사건은 무척 안쓰럽다. 그들에게 적으나마 관심을 가졌더라면 이런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요즘 너나없이 삶이 팍팍하다. 역병의 위험과 위협에 수년째 노출돼 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높은 금리 및 물가가 서민들의 삶을 가일층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민속 명절인 추석은 어김없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 창궐 이후 예전과 같은 명절 분위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날만큼이라도 소외된 이웃에 대한 마음의 온기를 지녔음 한다. `막부치`로나마 불쌍한 이들의 애환을 어루만졌던 인정 많은 선조들이다. 그 자비를 명절 때만이라도 돌이켜 본다면 훨씬 세상은 따뜻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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