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젊음을 유지 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았다. 하지만 불로초를 먹은 진시황도 노화는 피할 수 없었잖은가. 이것을 증표라도 하는 것일까. 젊음을 잃지 않으려는 안간힘과 달리 그동안 부모님이 주신 천금 같은 육신이 차츰 무너지기 시작했다.  치아가 하나둘 삭아 서 급기야는 의술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치아를 총 5대 발치한 후 임플란트를 식립 했다. 어디 이뿐이랴. 치조골이 상하여 잇몸 수술까지 수차례 감행했다. 병원 중에 가장 가기 꺼려지는 게 치과다. 그곳 의료도구만 봐도 마음이 경직되고 두려움에 온몸에 전율이 흐를 정도다.  며칠 전 갑자기 찾아온 치통에 시달리다가 단골 치과를 찾았다. 엑스레이 검사 결과 또 잇몸 뼈가 상했단다. 마취를 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동안 약물에 의하여 별다른 통증은 못 느꼈다.  이 때 엉뚱하게 죽음을 떠올려봤다.`사람이 생을 다하여 죽음을 맞이할 땐 어떤 육체적 고통이 뒤따를까?`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숙연해진다. 치아를 발치하거나 잇몸을 수술할 땐 마취제라는 약제의 효능을 빌리곤 한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는 극도의 통증이 수반될 듯해서다. 이럴 땐 어떻게 이 고통을 다스릴 수 있을까? 어떤 묘약도 죽음 앞엔 약효를 발휘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다.  흔히 불교에선 죽음을 윤회의 한 톱니바퀴를 도는 것이라고 이른다. 이승의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에선 축생(畜生)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믿기도 한다. 성불(成佛)한 선사에겐 죽음은 곧 생사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이잖은가. 하지만 중생들에겐 죽음은 곧 공포요, 고달픈 생의 귀결(歸結)이다.  스님들에겐 번뇌의 적멸(寂滅)이자 법신(法身)으로의 탄생이라 할 죽음이다. 이런 연유로 말미암아 선사(禪師)들은 죽음조차 기꺼이 맞이하는 일에 의연 하였다. 당나라 `보화`라는 스님은`임제`로부터 관을 선물 받고 덩실덩실 춤을 췄다고 하잖은가. 또한 명나라 관인(官人) `경통` 역시 스스로 장작더미에 올라앉아서 불을 붙이고 소신(燒身)의 공양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죽음을 논하노라니 어린 날 기억이 새롭다. 경주 김 씨 집성촌에서 대지주였던 부농의 외가다. 40대에 청상이 된 증조할머니는 젊은 날 남정네와 같은 기개를 지닌 분이였다. 외가를 찾을 때마다 화롯가에 장죽을 두드리며 집안 대소사를 호령하기도 하였다. 당시 96세였으나 꼿꼿한 허리, 우렁찬 목소리엔 늘 서슬이 시퍼렇게 묻어났다.  필자 나이 6살 때 일이다. 이분께서 어느 날 자리보전 하였다. 방문을 열고 방안에 들어서자 필자를 본 증조할머니는 닭 벼슬처럼 늘어진 당신의 목울대 살갗을 연신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며, " 이놈의 목숨 줄이 소 심줄이여. 얼른 이 목숨 줄이 끊어져야 할 텐데" 라곤 했다.  그 말을 되뇌며 뒤울안의 빨갛게 익어가는 앵두를 바라보던 할머니의 처연한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어린 마음에도`진정 할머니는 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증조할머니는 그런 일이 있은 후 그 해 가을, 식사를 하다말고 벽에 기대어 자는 듯이 눈을 감고 죽음을 맞이했다.  돌이켜보니 지난날 증조할머니 죽음이 마치 법력(法力) 깊은 고승의 조사열반(祖師涅槃)과 같다. 이는 언젠가 신문에서 보았던 서옹 스님의 사진에 의해서다. 장좌불와(長左不臥)로 조사 열반에 든 서옹 스님이었다. 두 손을 모으고 가부좌를 튼 채 좌탈(坐脫)한 스님은 금세라도 두 눈을 번쩍 떠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법어(法語)를 들려 줄 듯 보였다. 스님의 열반에 드는 모습에서 평생 그분이 다진 법력을 가늠한다고나 할까.  이밖에도 스님들 죽음의 기행은 다양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혜가, 달마를 잇는 3祖인 `승찬`이라는 스님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뜨락을 거닐다가 나뭇가지를 잡은 채 죽음을 맞았다고 하잖은가. 물구나무를 선 채로 임종한 스님도 있다. 중국 당나라 등은봉이 그다.  옛 고승들의 기행적(奇行的) 죽음이 아니어도 죽음은 숙명적이다. 죽음의 조수(潮水)를 물리칠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 이로보아 인생이 한낱 한 조각 뜬구름이란 다소 허망한 생각마저 드는 이즈막이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그릇된 욕망에 사로잡혀 온 자신이 마냥 부끄럽다. 몇 백 년 생을 사는 것도 아니잖은가. 관 속에 이승의 것들을 전부 싸안고 가는 것도 아니련만…. 헛된 욕심에 휘둘려 본연의 자세를 잃고 살았음을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참으로 지혜롭지 못한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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