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일이다. 5일장이 서는 재래시장을 막내딸과 함께 찾았다. 시장 안을 하릴없이 이곳저곳 구경하노라니 점심때가 훌쩍 지났다. 허기를 느껴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만치에 `역전 식당`이라는 간판을 이고 있는 나지막한 건물이 눈에 띄었다. 그곳 건물에 자리한 식당 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그러자 초로의 아주머니가 우릴 반갑게 맞이한다.  홀 안은 손님이 없어 썰렁했다. 자릴 잡고 자세히 둘러보니 식당 내부는 매우 허름하다. 의자 및 식탁도 낡았고, 벽지도 누렇게 빛이 바랬다. 형광등 불빛마저 어두침침하다.  이 때다. 컵에 물을 따라주던 딸아이가 귀엣말을 해온다. 우유병을 물병으로 재활용 했다고 말이다. 딸아이의 말에 물이 든 병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우유가 담겼던 원형의 플라스틱 병이다. 물병을 얼마나 오래 사용했는지 병 밑바닥에 물때까지 달라붙었다.  왠지 비위가 상해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할 때다. " 많이 기다리셨지요? 저희 집은 청국장 전문 식당이라서 직접 청국장을 띄워서 장을 끓입니다. 비지장도 맛 좀 보시라고 서비스로 드립니다. 또한 엊그제 고향에 다녀오며 봄나물을 캐왔는데 봄나물도 드셔보세요" 라며 그녀가 음식을 내놓는다.  뚝배기 속에서 펄펄 끓는 청국장과 비지장이다. 이 음식을 대하자 일어서다 말고 다시금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입안에 군침이 절로 돌아서다. 식탁 위엔 두릅나물, 취나물, 냉이 나물 무침 등 봄나물이 수북하게 담긴 접시가 즐비하다. 또한 그 옆엔 배추 겉절이와 계란말이까지 보였다.  식당엔 나오는 반찬이 몇 가지 정해져 있다. 이에 반하여 이 식당은 달랐다. 반찬이 자연산 식재료로 요리한 음식이 다수다. 또한 어머니 손맛 같은 정성이 한껏 깃들어져 있었다. 청국장, 비지장 맛도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끓여주던 구수한 그 맛이다. 딴 곳은 쌀밥이 주류이다.  그러나 노란 좁쌀이 섞인 잡곡밥 역시 맛이 일품이었다. 이는 손님의 건강을 염두에 두고 지은 밥인 듯하다. 무엇보다 음식 차림표에도 없는 제철에 나오는 두릅이며 취나물 등의 봄나물까지 손님상에 내 놓았잖은가. 이런 주인아주머니의 마음 씀씀이에 매료 돼서인지 모든 음식이 입맛에 딱 맞았다.  이에 더하여 손님에게 살가운 인정까지 덤으로 듬뿍 얹어주니 그곳 음식이 더욱 맛깔스러웠다. 그날 다이어트의 적(敵)이라는 밥을 두 공기나 비웠잖은가. 실은 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하자 이 모양을 본 아주머니는 추가로 밥 한 공기를 더 갖다 주어서다. 그 밥 역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이로보아 식당은 음식 맛이 생명이다.  그날 찾은 식당은 겉볼안과 너무나 달랐다. 비록 비위생적인 플라스틱 빈 우유병을 물병으로 재활용 하고 내부 시설은 딴 곳에 비하여 누추했다.  하지만 식당 주인의 마음만은 참으로 따뜻했다. 눈앞의 이문을 계산하기 보다는 자신의 식당을 찾은 손님들이 밥 한 끼 맛있게 먹어주길 진심으로 원했던 것이다.  식당 주인에게 이곳을 찾는 손님마다 이렇듯 푸짐한 밥상을 차려주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저희 집을 찾아오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우므로 손님들에게 곱빼기로 보답을 해 드리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 라고 답한다. 그 말에 그녀가 매사 감사해 하는 겸손함을 지녔다는 것을 대략 짐작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곳 식당을 찾아주는 손님들이 자신이 직접 요리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에 대하여 정성과 넉넉한 인심으로 보답하는데 인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당 주인으로부터 `곱빼기`라는 말을 참으로 오랜 만에 들었다. 곱빼기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음식 두 그릇의 몫을 한 그릇에 담는 분량` 이라고 이르고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중국 식당에서 자장면을 주문할 때면 꼭 우리들 것은 곱빼기로 청하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 때 어머니께서 사주던 자장면 맛은 이즈막에도 혀끝에 감돌곤 한다.  어디 이뿐이랴. 어머닌 평소 우리에게 타인으로부터 사소한 것을 받더라도 두 배로 쳐서 갚는 것을 습관화 하라고 타일렀다.  타인에게 받기만 하고 갚는 것에 소홀한 것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거지 본성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지난날 어머니 말씀을 돌이켜보니 남이 베푼 은혜나 친절에 대해선 고마운 마음을 늘 잊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러고 보니 식당 주인의 `곱빼기 철학`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그녀는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덥석 타인에게 베푸는 일을 망설이지 않았잖은가. 뿐만 아니라 그 일만이 자신이 취할 진정한 이익이라는 말까지 하였다.  요즘처럼 각박하고 살벌한 세태에 좀체 듣기 어려운 말이 아니고 무엇이랴. 삶이 힘들 때마다 가끔 그녀의 말을 가슴에서 꺼내 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시린 가슴이 모처럼 훈훈해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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