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많은 오해는 대개 의심에서 온다는 말이 있다. 오해는 뜻을 수못 해석하거나 또한 그러한 해석을 두고 한 말이다. 의심은 확실히 알 수 없어서 믿지 못함이나, 또는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의심은 원인과 결과에 대한 불신이다. 그래서 성실한 사람은 자신의 성실한 의심을 절대 버리지 못한다.  그리고 편하지 못한 마음에는 늘 의심과 함께 산다. 대체로 보아서 종교의 힘은 믿음으로써 얻고, 학문의 힘은 의문으로써 얻는다고 한다.  `팔만대장경`에 지혜없는 자는 의심이 끊일 날이 없고, 지나친 의심은 과오를 범한다고 한다. 도둑 맞으면 어미 품도 들춰본다는 말이 있다. 물건을 잃게 되면 누구나 다 의심스럽게 생각되며 심지어는 가장 가까운 부모까지도 의심하게 된다는 뜻이다.  내 것 잃고 죄 짓는다. 제 물건을 잃어버리면 의례 애매한 사람까지 의심하게 된다.  의심하면 눈에 귀신이 보인다는 말도 있고, 아무것도 모르는 자는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으며, 사람을 의심하면 고용하지 말것이며, 고용하면 의심하지 말라 했다.  오해가 생기면 언쟁으로 막는 것이 아니고, 절충과 다른 사람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동정적인 노력으로만 막을 수 있다. `매(새)를 꿩으로 보았다`는 말은 사나운 사람을 순하게 잘 못본다는 뜻이고, 무슨 일에 너무 정신이 쏠리면, 나쁜 것은 전혀 안보이고, 좋은 것만 보인다는 말이다.  이해는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으로 모르던 것을 깨달아 알아듣는 마음의 결정이다.  시인 괴테는, "우리들이 이해하지 않는 일은 남을 제어(순종) 시키기가 어렵다"고 한다.  사물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가 다시 거기서 탈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번 부딪혀보고 나중에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다.  사람들은 이해되지 않는 일은 쉽게 평가한다.  이해는 모든 우정의 과일을 낳고 기르는 토양(흙)임에 틀림없다. 인간을 잘 이해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그들을 결코 급하게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인의 태도는 사람의 행동을 비웃지도, 한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으며 오직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마음이 상책이라 한다. 모든 것을 이해하면 마음은 지극히 관대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꺼리가 되는 것은 조용한 이해에 고집(아집)이 따른다. 사람은 의지가 강해서라기보다 능력이 부족해서 고집을 부릴 때가 있다.  가끔 고집이 실책을 낳는다. 자기 생각에 흥분해서 고집을 부릴 때에 그 사람이 얼마만큼 어리석은 가가 드러난다. 고집이 센 것은 인간의 마음이 쉬는 본원적인 충동의 하나로 자기가 어리석지 않다고 우기는 데에 있다.  그래서 고집과 혐오(싫어하고 미워함)는 가까이 붙어서 다닌다는 말도 있다.  성인들의 어록에, 고집쟁이는 처부술 수는 있어도 복종시키지는 못한다.  딱딱하기는 삼년 묵은 물박달나무 같다. -고집이 매우 센 사람을 일컬음  길로 가라니까 메(산)로 간다.- 유리하고 편한 방법을 가르쳐 주었는데도 그대로 하지 않고 굳이 제 고집대로 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 이처럼 이해가 불통이면 오해를 낳고 오해는 고칠 수 없는 고집을 낳는다. 결국 딱딱한 나무는 부러진다.  단단한 것보다는 허물허물한 것이 오래간다고 한다. 단단하고 여문 이(치아)는 썩어도 허물허물한 혀는 영구적이고 안 썩는다. 약한 철사는 휘어져도, 강철은 잘 부러진다.  아량은 깊고 너그러운 마음씨지만, 이기심은 공공심과는 반대로 이기심은 자기의 이익만을 꾀하는 이해심과는 거리가 먼 나쁜 마음이다. 산을 옮길 수 있는 믿음과 자신이 있어도 남의 눈 밖에 나는 불량인은 사회에서 격리되는 존재가 된다.  세상 일은 좋은 것이 그냥 좋은 것이라 선인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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