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진 노래 가락에 이끌려 절로 걸음이 멈춰졌다. 그리곤 `확성기를 통하여 들려오는 애조 띤 노래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궁금해 주위를 둘러봤다. 이 때 저만치 시장 한 구석에 많은 사람이 운집한 게 눈에 띄었다.  5일장이 서는 재래시장 안은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노래가 들리는 곳으로 들어섰다.  삼십대 후반쯤 됐을까. 얼굴만은 곱상하게 생긴 여인이 그곳에 있었다. 여인은 시커먼 고무 튜브를 잘라 허벅지 부분까지 껴입었다. 그리곤 힘겹게 시장 바닥을 휩쓸며 몸을 끌고 있다.  곁엔 그녀의 것으로 보이는 좌판처럼 생긴 나지막한 손수레가 놓여있다. 그것 위엔 손톱 깎기, 수세미, 세수 비누, 목욕 타월 등속의 잡화가 가득 실려 있다.  그러고 보니 멀리까지 들려온 노래 소리는 그녀의 호객 행위였다. 절절함이 묻어나는 그녀의 노래는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 듯 했다. 그곳을 지나치는 많은 행인들이 걸음을 멈춘 채 그녀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필자도 집에 갈 생각을 잊은 채 그녀의 노래에 혹하여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노래는 벌써 몇 곡목이나 바뀌고 있었다. 이번에는 구구절절 한 맺힌 사연이라도 펼치려는 듯 노래는 더욱 구슬프게 들려왔다.  "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 얌전한 몸매에 수줍은 눈동자. /고운 마음씨는 달덩이 같이/ 이 세상 끝까지 가겠노라고 … < 생략>" 라는 노래를 부르자 필자 자신도 모르게 콧날이 시큰하며 눈가가 젖었다.  이 때였다. 살아서 설설 기어 다니는 꽃게를 좌판에 놓고 파는 남자 꽃게 장수가 꽃게 한 마리를 여인의 손수레 위로 던지며 농을 걸었다.  " 이봐. 오늘 저녁 서방님하고 꽃게탕이나 끓여 먹으라구"  그러자 이번엔 곁에 있던 물오징어 장수가 물이 줄줄 흐르는 오징어 한 마리를 손수레 위에 슬쩍 던지며 꽃게 장수와 비슷한 농반 진담 반의 말을 던졌다.  " 꽃게탕 끓일 때 이 오징어도 넣고 끓여" 반말의 농지거리와 함께 던진 오징어의 먹물이 갑자기 터져서 삽시간에 손수레 위 잡화들을 덮쳤다.  하지만 여인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이 너무도 의연하여 `도대체 여인은 속도 없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때 곁의 여인 몇몇이서 나누는 이야기를 귀동냥 하게 됐다. 수년 전만 하여도 여인은 멀쩡했단다. 그런 그녀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단다. 남편마저 딴 여인과 눈이 맞아 여인의 곁을 떠났단다.  홀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정상인도 어려운 일이다.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더구나 불구의 몸으로 남편에게 버림까지 받고서도 절박한 의지로 저렇듯 몸부림치는 그녀를 보자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변화 없이 반복되는 삶에 대하여 알 수 없는 권태와 회의를 느꼈잖은가. 인생사에 가장 절실한 게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삶을 산 듯하다.  그녀의 손수레에서 몇 개의 잡화 등속을 고른 후 만 원짜리 지폐 석 장을 건넸다.  그러자 몇 천원의 거스름돈을 건네준다. 그 돈을 거절하자 여인은, " 거스름돈은 챙기세요. 주부에겐 단 돈 천 원도 큰돈입니다" 라며 천 원짜리 지폐 다섯 장을 내 손에 쥐어준다.  그녀의 말에 괜한 허세와 값싼 동정을 보낸 듯하여 얼굴이 화끈했다. 하긴 주부에게 단돈 몇 천원은 어찌 보면 허투루 쓸 금액은 아니다. 콩나물을 사면 한 보따리 아니던가.  세상엔 많은 돈을 부정한 방법으로 가로채고도 일말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이 여인처럼 단돈 몇 천원도 남의 것을 넘보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기에 이나마 이 사회가 지탱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인일일까.  이 여인을 보며 문득 언젠가 오른 겨울 산에서 보았던 꽃 한 송이가 떠올랐다. 아직 겨울의 끝자락이 남았던 지난 2월 중순 어느 날 속리산 문장대 바위틈에서 보았던 꽃이 그것이다.  그 꽃은 혹한이 채 가시지 않은 날씨에 눈 속을 뚫고 피어난 꽃이라 매우 경이롭게 느껴졌다.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산자락에 피어난 그 꽃은 일명 `얼음색이 꽃`이었다.  해가 바뀌면서 산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강인한 그 풀꽃은 꽃말조차 `봄의 미소`라고 한다. 그 꽃이 피어나면 주위의 눈이 모두 녹고 봄이 온다하여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장돌뱅이 이 여인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 그 꽃을 닮았다고나 할까. 어려운 역경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여인이다. 이런 여인의 모습은 참으로 강인해 보였다. 아울러 그동안 삶의 지표를 잃고 물질만 숭상해온 우리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삶인가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래 그녀 앞에서 나도 모르게 절로 옷깃이 여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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