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어디를 가더라도 원효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찰도 많이 있겠으나 원효를 흠모하여 세워진 사찰도 많다. 이처럼 우리나라 불교사에서 원효를 빼곤 이야기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효에 대해서 아는 바가 의외로 많지 않다.  원효의 철학적·사상적 이해보다는 에피소드에 더 친숙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자루 빠진 도끼를 빌려주면 하늘 받칠 기둥을 깎겠다는 은유적 구혼장으로 유명한 요석공주와의 러브스토리, 의상대사와 중국유학길에 마신 해골 물 이야기, 사복과 생과 사에 대한 문답 배틀로 유명한 사복불언(蛇福不言), 오어사에서 서로 내 물고기라고 우긴 혜공 스님과의 도력 테스트 등 원효 관련 이야기들은 생생하게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지만, 원효가 동아시아 최고의 철학가 사상가, 저술가임에도 그에 대한 평가는 다소 부족한 느낌이다.  원효가 저술한 책은 100 여부, 240권에 달하지만 아쉽게도 전해지는 것은 23종 26권 정도이다. 동아시아에서 질적·양적 수준 통틀어 원효를 넘어서는 사람은 없다. 원효의 철학과 사상은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중국과 일본에 더 알려졌으며, 생존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원효와 친숙하지 못한 이유는 불교라는 종교적 해석으로 울타리 안에 가두고 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어려운 한문으로 되어있어 불교적 지식의 바탕없이는 이해가 어렵기 때문이다. 서양 철학이 기독교와 분리할 수 없듯, 동양 철학도 불교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한국 사람의 사고와 생활 저변에는 자신도 모르게 배어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최근 1년간 도서관에서 원효와 관련 책들을 여러 권 빌려 읽었지만, 기본 지식과 소양이 부족하다 보니 수박 겉핥기식 독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원효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 외에 재미로 읽는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원효의 책 제목에 붙는 경-經(부처님 말씀), 론-論(부처님 직계 제자 또는 보살의 글), 소-疏(조사 대덕의 글)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종요(宗要)란 전체 줄거리를 함축해서 요점을 풀이했다는 뜻이다. 소(疏)와 기(記)에 대한 것이 9종, 종요는 5종이다.  완전히 남아있는 저서로 `대승신기론소`, `대혜도경종요`, `법화경종요`, `열반경종요`, `미륵상생경종요`, `보살계본지범요기`, `발심수행장`, `대승육정참회`, `이장의`, `무량수경종요`, `아미타경소`, `미타증성게` 등이 있다.  부분적으로 남아있는 저술 중에는 `화엄경소` 10권 중 1권, `영락본업경소` 3권중 1권, `해심밀경소` 3권중 서문, `판비량론` 1권중 1부, `중변분별론소` 4권중 3, `십문화쟁론` 2권중 일부, `범망경보살계본사기` 2권중 1권 등이 일부 남아있다. 이외에도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것들이 `반야경소`, `승만경소`, `무애가`등이 있다.  `금강삼매경론`은 원효가 비주류에서 주류사회로 진입하는 계기가 된 책이다. 소의 등위에 올라 두 뿔 사이에서 지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5권이었으나 누가 훔쳐 가서 3일 만에 3권으로 다시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제까지 황룡사 백고좌회에서 한번도 초대받지 못했던 그가 `옛날에 서까래 백 개가 쓰일 때는 비록 들지 못했으나, 오늘 아침 대들보 하나가 필요한데 오직 나 홀로 가능하구나`라는 말로 주류사회에 한 방 먹인 유명한 일화도 있다. 그리고 중국으로 전해진 `금강삼매경소(疏)`은 `금강삼매경론(論)`으로 격상시켜 원효를 `해동보살`로 높여 부르는 계기가 되었다.  `대승신기론소`는 인도의 마명이 지은 대승기신론에 대한 주석서로 여러 가지 불교 이론을 체계화하는 기틀이 마련되고, 대승 경전을 풀이하여 중국 화엄 사상 발전에 기여했다. 삼장법사 현장의 글을 보완하였으며, 중국 화엄 고조 법장 글의 모태가 되었으며 둔황에서 필사본 일부가 발견되었다.  `발심수행장`은 처음 출가한 수행자들의 필독서로 간결하고 간곡한 문장가 면모를 볼 수 있다. 전문을 인용하고 싶을 만큼 수려한 문장이 돋보인다.  `법화경종요`는 묘법연화경을 종지와 대의를 간단명료하게 해설한 책으로 몇 권의 종요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고 평가하는 책이다. 회삼귀일(會三歸一), 일불승(一佛乘) 사상으로 신라 불교의 대중화에 이바지했다.  `십문화쟁론`은 불교의 모든 이론을 10문으로 분류한 원효 사상을 정리 및 종합하여 저술한 것의 일부가 해인사에 남아있다. 불교 발생지인 인도로 역수출된 역작이다.  `판비량론`은 원효가 당나라 현장법사가 설파한 불교 논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불교 논리학 난제의 해법을 제시한 저술이다. 신라 시대 필사본이 일본에서만 전해지고 있는 아쉬움 많은 책이지만 역사적 가치가 높은 책이다.  더불어 언급하고 싶은 원효의 책들은 많지만, 일부만 인용해 보았다. 원효에 대한 기록들은 `삼국유사`의 `원효불기(元曉不羈)` 편과 중국 송나라 찬녕이 왕명으로 편찬한 `송고승전`에 전해진다. 고려 시대에는 `대성화쟁국사(大聖和諍國師)`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분황사에 `화쟁국사비`가 세워졌다.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원효의 화쟁 사상이 확대, 계승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이규보의 `파한집`에서 무애를, 근세에 와서 최남선이 한국불교 완성자로 원효를 평가했고, 이외에 이기영, 고익진 등에 의해 지속적으로 원효의 사상은 연구되고 있다. 원효 관련 논문만 하더라도 수백 편 이상이고, 지금도 계속 쓰여지고 있다. 원효 철학과 사상은 유럽에서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원효의 철학과 사상은 요즘 사람들에게도 유효한 가르침이다. 답답하고 막막한 길을 원효가 가르쳐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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