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간통 사건을 기억한다. 그 사건의 주인공은 어을우동(於乙宇同)이라는 여인이다. 그녀를 흔히 어우동이라고도 호칭한다. 그녀는 다 아다시피 조선 전기 시대의 시인·서예가·작가·기녀이기도 하다. 하지만 후세에 이르러서는 그녀의 지난 행적은 불미스러운 일로 회자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런 그녀에게 왠지 연민이 인다. 자신의 남편에게 버림 받았잖은가. 이로보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인의 운명과 희비(喜悲)를 쥐락펴락하는 게 남정네인 듯하다면 지나치려나. 심지어 그녀 남편 이동은 왕족이기도 했잖은가.  하지만 왕족인 남편에게 버림받은 어우동은 끝내 조선 성종 때 조정의 고위 관료들과 성 스캔들을 일으키는 미천한 기생이 되었다. 당시 어우동은 얼마나 빼어난 미색(美色)을 갖췄길래 막강한 권세를 거머쥔 조정의 고위 관료들이 그녀의 유혹에 흔들렸을까? 아마도 그녀는 아리따운 용모뿐만 아니라 예술적 재능도 갖췄으니 교양과 지성도 겸비 했을 게 뻔하다. 무엇보다 그녀 팔에 각기 다른 남자와 변치 않을 사랑을 언약한 문신이 무려 6개나 새겨졌다고 전해온다. 당시 그녀의 많은 남성 편력을 한 눈에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어우동의 팔에 새겨진 문신을 떠올리노라니 범죄 스릴러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남자 인물들이 문득 눈앞에 그려진다. 그 문신을 자세히 살펴보면 용, 꽃, 나비 등이 등이며 팔에 주로 새겨져있다. 이것으로써 주인공 자신의 위용 및 존재감을 드러내는 듯하다. 디지털 시대엔 문신도 제 2의 언어로 작용 하나보다. 이런 문신을 대할 때마다 그것에 대한 최초 기록에 흥미마저 느낀다.  고대 중국 문헌인 `위지(魏志)`의 진한전(辰韓傳)과 마한전(馬韓傳)에 의한 내용이다. 두 나라 어부들이 험한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 때 사나운 큰 고기의 공격과 해침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온몸에 문신을 했다고 전해온다. 또한 이런 문신의 역사는 약 1만 년 전으로 대략 짐작한다는 학계의 보고도 있다. 이는 1만 년 전에 만들어진 아무르 강 중류 사카치알리안의 암각화에 문신을 한 인면 상(人面像)이 많아서란다. 이에 비해 우리는 약 2,000년의 문신 역사를 지닌 것으로 알고 있다.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다윈조차, "세계 어느 나라든 문신이 없는 민족은 없다" 라고 언술했다. 찰스다윈의 언명이 아니어도 조선 시대엔 연비(聯臂)라 하여 상민들 사이에 사랑을 약속한 남녀끼리 문신을 하는 습속도 유행 했었다고 한다. 이로보아 유구한 세월동안 우리 피부 깊숙이 자리해 온 문신이다.  근대에 이르러선 문신이 자칫 공포감을 조성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범죄 스릴러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 하는 주요 인물들이 문신한 팔뚝에 힘을 주며 뽐내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위협적이잖은가. 필자 역시 이런 감정을 경험 했다. 지난여름 마을 앞 호숫가를 산책하다가 우락부락하게 생긴 덩치가 큰 남정네 두 팔에 휘감긴 용의 문신을 대한 적 있다. 앞서 걸어가는 남자 팔에 정교하게 새겨진 용의 문신은 비늘까지 생동감 있게 그려져 금세라도 꿈틀대며 남자 살갗을 떠나 하늘로 승천할 듯 보였다. 하지만 그 문신을 대하자 왠지 이질감을 느낀 게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필자 같은 경우도 철없던 시절엔 이 문신에 잠시 매료된 적이 있다. 학창 시절, 죽마고우와 우정을 영원히 변치 않기를 결의(結義) 하는 마음에서 계획한 일이었다. 이 때 서로 이름 첫 자를 따서 왼쪽 팔뚝 안쪽에 문신을 새기기로 약속 했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예상치 않게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이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하긴 살갗 깊숙이 따가운 바늘 침에 의하여 마음이 새겨진다한들 어찌 불변을 장담하랴. 이해타산에 의하여 마음이 요동치고, 우정이나 남녀 간 사랑 역시 변하는 게 인간사 아니던가. 더구나 요즘처럼 삭막하고 삶이 어려울수록 마음은 향방을 잃기 십상이다.  수십 여 년 전 서민층이 사는 평수 좁은 아파트에 살 때 일이다. 그 시절 이웃들이 한 집 건너로 하루가 멀다않고 부부 싸움을 했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초등학생 자식들 헤진 책가방, 또는 운동화 사줄 돈이 없어서, 혹은 연탄 값 걱정 등 생계 문제로 부부 싸움을 하는 집이 많았다. 모르긴 몰라도 이 부부들도 연애할 때는 서로 죽고 못 살을 만큼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에 이른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삶이 힘들고 그로 말미암아 고통스러워지자 그 뜨겁던 사랑도 창문으로 도망간 것이다.  이로보아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이 차지하는 위력은 절절한 남녀 간 사랑도 희석 시키는 듯하다. 요즘 결혼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연금 타는 부모님을 둔 사람을 선호한단다. 이래서야 평범한 부모들은 자식 결혼도 마음 놓고 시키지 못할 듯하다. 그래서인가. 요즘 따라 연비(聯臂) 문신으로 영원한 사랑을 꿈꿨던 조선 시대 청춘 남녀의 순정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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