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빈대를 잡는다고 소독하는 장면이 TV 화면에 가끔 비친다. 60년대 중반 관측장교 시절에 빈대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생생하다. 춘삼월 호시절 어느 날 최전방 관측소 근무를 명받고 높이 1062m의 적근산 306관측소에 관측병, 유선병, 무선병과 같이 가파른 산길을 숨 헐떡이며 올라갔다.    산에는 봄꽃이 다투어 피고 파란 새싹이 월동의 시련을 잊은 듯 깨끗한 모습으로 돋아나야 할 터인데, 그 곳 적근산 정상에는 영하의 매서운 날씨 탓으로 초목은 두꺼운 눈에 덮여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호지(胡地)와 같은 동토(凍土)의 지역이었다. 역대관측장교가 기거했던 벙커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토벽에 써놓고 떠나간 선임 장교의 유서 같은 낙서는 두려움과 고독에 불덩이 같은 청춘시절을 국방의 최첨단 임무 수행으로 보냈던 마음 아픈 세월의 한 단락이었다. 영하 30도의 혹한에 간첩 3명이 이곳을 침투하다가 얼어 죽을 지경에 투항했다는 이야기, 고등고시 준비를 철저히 하여 합격했다는 이야기며, 소주가 마시고 싶어서 찬물을 대용으로 마시며 술맛 좋다고, 어! 취한다고 써 놓은 글귀가 또한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저마다 그려 놓은 각종 벽화는 산상 생활의 고달픈 정서를 잘 나타낸 순수 예술적 의미 깊은 표상이었다. 놀라운 것은 빨갛게 칠해진 빈대의 체혈(體血)이 눈길을 끌었다. 빈대를 조심하라는 선임 장교의 친절한 안내문에서 불편했던 잠자리를 짐작할 수 있었으나, 최전방 고지에 빈대가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밤마다 간첩처럼 몰래 침습해서 관측장교 한 사람의 군용피를 빨아 먹고 살아야 하는 빈대의 생활도 비참한 현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런 대책 없이 3개월 동안 빈대와 더불어 생활하다가 다시 본대로 내려오니 모두가 반가웠다. 그 후 한 달이 지나고 다시 양송이재배사 관리장교로 파견근무를 명받았다. 이곳은 사병 20명과 같이 다섯 개 동에 종균 시킨 양송이를 기르며 사병들에게 귀농교육을 시키는 학습센터라고 한다. ROTC 3기생 한해 선배 장교가 반갑게 맞이하면서 세 가지를 당부하였다. 간첩이 침투하는 루트이니 경계를 철저히 할 것, 양송이 재배사업은 육사8기 출신인 포병사령관의 특수한 영농사업이므로 장성(將星)을 비롯한 미군 VIP가 불시에 많이 내방하므로 영어 브리핑도 잘 할 것, 그리고 숙소에 빈대가 많으니 물리지 않도록 조심할 것 등이었다. 우선 양송이 재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도착 첫날부터 교재를 펼쳐서 양송이 재배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독공(獨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송이가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온도는 섭씨 13도에서 15도 사이이고, 습도는 70내지 80% 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양가도 프로테인을 비롯하여 각종 미네랄(mineral)이 많이 함유되어 있고, 특히 트리시나제(tricinase)라는 혈압강하제가 들어 있어서 성인병에 좋은 고등채소라는 것이다. 첫날 늦도록 책을 보았기 때문에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른다. 긴장과 수면부족으로 언제나 시달리던 육군 소위 초급장교의 애환이 일시불로 풀리는 상황이라 제약 없는 무규격(無規格)의 잠을 잤던 것이다.   몸에 뱀이 기어오르는 것 같은 기분에 깜짝 놀라 깨니, 뱀은 보이지 않고 순식간에 달아나는 민첩한 빈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모포를 털고, 빈대가 숨을 각 틈새에 DDT가루를 잔뜩 뿌려 놓고 다시 잠을 청했다. 소등하고 30여분 지나니 다시 반대의 2차 침투가 시작되었다. 도대체 이 빈대들이 어떻게 위험한 DDT지뢰밭을 통과했는지 알 수 없었다. 첫날은 빈대와 전쟁에서 적응훈련으로 모든 시간을 허송하고 말았다. 다음 날 사병을 시켜 침대를 만들어서 침대 네 다리는 헌 철모에 물을 채워 담그게 하였다. 빈대가 침대 위로 기어오르려면 철모에 담긴 물을 통과해야 하므로, 그것은 빈대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기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얼마 후 다시 몸이 가려워서 잠을 깨고 말았다. 빈대가 그 사이 모포 속으로 몰래 들어와서 피를 빨아먹은 것이다. 철모에 담긴 물을 어떻게 건넜으며 그 중 몇 마리가 익사했을까 하여 살펴보니 수장(水葬)된 것은 한 마리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철모강을 도강(渡江)하지 않았다면 공수(空輸) 투하된 것이 틀림없음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 다음 날은 목침대 위해 군용 텐트(Tent)를 치고 그 모서리 끝에는 DDT봉지를 달아서 빈대가 천정에서 텐트에 낙착(落着)하여 침대에 기어 오르는 경로를 철저하게 차단하였다. 완벽한 조치를 취했다고 생각하며 다시 잠을 청했으나 몇 시간 지난 뒤에 몸이 또 가려워서 잠을 깨지 않을 수 없었다. 불을 켜면 신속하게 대피하는 그들 생존 원리가 간첩과 다를 바 없었다. 어려운 코스를 무사히 통과하여 목적지인 내 몸까지 올라온 이 빈대는 분명 인간의 지혜를 능가하는 영물이다. 사람의 피를 빨아 먹고 사는 빈대. 생각만 하여도 온 몸이 가려운 듯 지긋 지긋하다. 빈대는 잡아야 한다. 간첩 같은 빈대를 철저하게 잡아야 한다. 지구상에는 사람이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빈대 같은 사람이 없지 않고, 빈대 보다 우둔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니 우리 인간이 어찌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까 자문해 진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