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절에는 대학교육의 과정에서 멀리 사회진출을 위한 교육으로 전공과목과 거기에 뒷받침하는 교양과목의 프로그램이 나열된다. 선택적 학과를 주관으로 정해질 수 있다. 신임생에게는 담당 교수의 지도에 따라 전공 이외의 필독할 교양서적을 추천받기도 한다. 가령 법률학을 전공할 초보자에겐 구약성경의 율법서인 ‘모세의 5경’을, 문학을 전공할 준비생에겐, 구약 ‘시가서’와 문학 장르의 관계없이 신약 ‘바울의 서신서’를 탐독하라고 한다.몇 해 전 어느 날, 신문에 글을 쓰고 있는 필자에게 경서교회 원로목사이신 김호수 목사님께서 연락이 왔다. 목사님께서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인 회고록 ‘나의 인생’이란 글을 쓰시면서 부탁 말씀이 하교 되었다. 출판기념회를 하면서 필자에게 서평(책의 내용을 평할 글)을 요청해 왔다. 일개 평신도가 감히 외람스럽게 성직자의 사역을 논할 수 없다고 극구 사양했으나 최후의 부탁이라 하시는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순응하게 되었다.40여 분간 진땀을 흘리며 목사님의 저서 ‘나의 인생’에 대한 독후감을 피력한 적이 있었다. 필자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경 66권의 내용을 정의한다면 ‘빛과 소금’이 말씀의 핵(핵심)이라 믿어온 신자이다. 원래 ‘빛’이란 번쩍이는 광택으로 태양, 별, 달에서 나오는 것으로 시신경을 자극하여 사물을 알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는 희망이나 영광 등을 비유하는 말로 진리나 구원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빛’은 필자의 견해로, 하나님께서 첫 번째 창조 사역은 빛을 창조하신 일과 빛과 어둠을 분리한 일이다. 낮과 밤의 분리를 유지 시킴으로써 자신의 창조를 보존시킨 것이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임재와 축복에 대한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또한 빛은 사랑과 기쁨, 명철과 지혜와 공의로 묘사되었다. 하나님의 임재와 연관된 빛은 종말의 날을 증거가 되었다. 예수께서도 ‘참 빛’, ‘세상의 빛’인 것처럼 성도들은 모두가 ‘빛의 아들’과 자녀인 것이다.개신교 찬송가 가사에, 빛의 사자들이여/ 어서 가서 어둠을 물리치고/ 주의 진리 모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 선한 사역 위하여/ 힘을 내라. 주 함께 하시겠네/ 주의 크신 사랑 전파하며/ 복음의 빛 비춰라// 주님 부탁하신 말 순종하여 진리 전파하라/ 산을 넘고 물 건너 힘을 다해 복음의 빛 비춰라// 동서남북 어디나 땅 끝까지/ 주님만 의지하고/ 눈 어두워 못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작가가 루이스 선교사는 ‘사도행전’의 말씀을 토대로 작사한 선교 찬송이다. 복음을 전하는 ‘빛의 사자’의 역할을 힘찬 선율로 표현한 작가이다. 가사의 모체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에 의존한 것이다. 말씀이 곧 참 빛이었다. 빛이 되신 하나님을 맞아드리고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신 것이다. 빛과 열은 이것이 곧 생명이다. 아라비아 속담에 빛은 빛으로 태어나지만 모든 광명은 하나님에게서 태어난다. 빛과 더불어 소금은 방부제요, 생활 필수품으로 음식에 맛을 내고 그 당시 사해에서 생산되는 소금에 세금을 부과하기도 했다고 한다. 구약에서 ‘소금의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요, 예수님은 소금을 이 세상과 구별됨을 강조하였고, 소금을 비유로 교훈적인 말씀을 남겼으며 제자들 사이의 화합을 보장하게 된 것이다. ‘누가복음서’에 ‘소금은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라는 비유의 말씀에 큰 은혜가 담겨 있다. 유럽 폴란드에 가면 소금광산이 있다. 태고 때는 그곳이 바다였을 것이다. 소금이 인체에서 사람의 건강을 도우는데 내륙지방에는 바다가 멀리 있다. 인체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봉급 시에 현금과 함께 얼마의 소금도 배급했다고 한다. 영어로 봉급을 셀러리(salary)라 하는데, 그 말의 어원이 솔트(salt)라는 소금에서 온 것이다. 옛 선인들은 소금을 바다에서 나는 금(金)과 보화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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