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여사는 20대 초반에 결혼하여 1남 2녀를 낳았다. 사대 봉제사를 하는 경주 C가문에 시집가서 공무원인 남편을 내조하며 농사일도 거들며 열심히 생활하였다. 낳은 자녀들의 교육 뒷바라지를 하느라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없었으나 한 마디 불평 없이 정성을 다해 시봉(侍奉)과 봉제사를 하며 시댁 가율(家律)에 어긋남이 없이 헌신적으로 살았다.   공무원 박봉을 쪼개 쓰며 마치 낭떠러지 좁은 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듯 조심스럽게 생활하면서 10여리 떨어져 있는 밭에 나가 곡식과 채소를 심어 가꾸며 육신이 뙤약볕에 새까맣게 변색되는 것도 모르고 땀 흘리며 일하였다. 그것이 자녀 학비 충당에 얼마나 큰 보탬이 되었을까 만은 그래도 배추, 고추, 상치, 무, 참깨, 들깨, 호박 등을 손수 가꾼 것으로 먹었으면서 여분은 시장에 내다 팔아 자녀 학비 마련에 마음과 힘을 다했던 것이다. 그래서 두 딸과 아들 모두 명문 지방 국립대학교에 입학 시킬 수 있었다. 장녀는 국정원에 근무하는 총각과 혼인을 하였고, 차녀는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의사의 꿈을 키우다가 졸업반에서 자퇴하여 민권운동에 참여해서 노조의 교육국장을 맡아 나름대로 직분에 충실히 근무하여 거명되는 명성을 얻었다. 또 국립부산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대학 교단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으니 모두가 대단하다고 칭송을 하고 있다. 아들은 대기업에 취업하여 부장직을 맡아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모범 사원으로 자랑스러운 인물로 되고 있다.   K여사는 총명한 재능을 타고 났으나 당시 여건이 여의치 못하여 남동생 삼형제 대학교육 때문에 학교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 되어 20년 전부터 경주향교에 입학하여 천자문, 사자소학, 명심보감, 사서를 배우고 서화를 익혀서 한문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고, 서화전에 출품하여 특선을 하는 등 탁원한 재능을 발휘하여 여생을 나름대로 보람 있게 보내고 있다. 그런데 K여사는 80순에 접어들어 좋지 않은 질환이 또 발견되어 수술을 받았다. 당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무리하게 일한 관계로 두 관절이 마모되어 통증이 극심해서 근년에 두 다리의 관절을 어쩔 수 없이 인조관절로 이식수술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중대 수술을 받았으니, 어찌 인생이 허무하지 않으리.   의사의 지시에 따라 밭에 텐트를 쳐 놓고 맑은 공기와 햇볕을 받느라고 신종 유배지 생활을 한 덕택으로 병이 호전되는 듯하였으나, 재검을 받은 날 의사로부터 재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통첩을 받고는 생을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대로 견디다가 죽느냐 아니면 자식들에게 1000만원 수술비를 받아서 수술을 하느냐의 문제로 며칠을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며 장고(長考)를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국정원에서 이사관으로 퇴임한 맏사위는 그런대로 생활에 걱정이 없을 것 같아서 장녀에게 수술비 1,000만원을 얻기 위해 고속버스를 타고 딸집에 가서, 조심스럽게 수술비를 말하니, 이 장녀는 조용히 말을 듣고 있다가 말이 끝나자 말자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 안 그래도 죽을 터인데, 돈 들어 수술을 왜 해.”하고 불효막심한 말을 하여 큰 쇼크를 받았다.   못된 자식이라고 욕을 하고 싶었으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수술을 해 보았자 며칠, 몇 달을 더 살지 모르는데, 돈을 낭비할 것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괘씸 하였지만 꾹 참고 몰래 눈물을 감추며 내려오고 말았다. ‘내가 왜 저런 못된 딸을 낳았던가.’하고 원망과 후회를 하였다는 것이다.   둘째 딸은 인근 도시에 살고 있기 때문에 평소에 자주 들려서 부모의 건강을 먼저 생각해 주고 비록 생활은 넉넉하지 않지만 병원에 데리고 가서 입원 수속도 해 주고 건강 상태를 물어서 일상생활을 어떻게 하라고 일러 주는 등 효녀의 도리를 다 하기에, 이 딸에게는 미안해서 수술비 말을 꺼 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에게 병의 재발과 수술에 관해 이야기 하니, 아들은 “지금 돌아가시면 절대로 안 돼. 만약에 돌아가시면 아버지는 형편 상 모실 수 없으니, 수술을 해서 살아야 돼. 돈이 문제가 아니야. 그리고 저도 객지 생활하면서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했는데 2년만 있으면 퇴임해서 고향에 다시 내려와 부모님 모시고 효도 한 번 해 볼 수 있도록 단단히 마음먹고 수술 꼭 받으시고 건강회복 꼭 해야 돼요. 수술비 걱정 절대하지 말고요” 아들의 말을 들으니, 처음에는 아버지를 모시는 도구적인 존재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섭섭한 마음이 들었는데, 퇴임해서 고향에 내려와 효도한다는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는 것이다. 며칠 후 맏딸로부터 돈 1000만원 송금했다는 것과 어차피 죽는 것이 인생인데 수술하지 말라고 한 것은 악착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뜻에서 농담을 했다는 것이다. K여사는 자녀들의 깊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생각하면서 재수술을 받았다. ‘무자식이 상팔자라’ 하지만, 늙어서는 마지막에 자식에게 의지 한다는 삼종지의(三從之義)는 아직 버릴 수 없는 강상(綱常)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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