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 31일 섣달 그믐날 자정을 기해 서울의 보신각과 전국 교회의 종소리, 그리고 각 지방마다 33번 종소리가 세파에 울려 퍼져 경건한 마음으로 송구영신을 맞이한다. 송구영신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뜻 깊은 역사의 순간이다. 제야의 종을 울리는 시각에 대해서는 구년(지난해) 중에 107번 치고 새해에 들어와서는 1번(한번)을 더 치는 가설이 있다. 불교 종단에서는, 사람은 108번의 속죄의식으로 108의 숫자만큼 깨달음이 있다는 설도 있다. 한 때는 원단(설날)의 인시(새벽 3시~5시까지)에 치기 시작했으며, 108의 숫자가 달리 해석되는 경우도 있었다 한다. 1년의 12개월과 24절기 그리고 72후 (5일간)를 합친 것이라는 풍설도 있었다. 필자는 6세 때,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들린다. 저 깊고 깊은 산 오두막 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 동심을 들뜨게 한 축가를 불렀다. 느지막한 나이에 새삼 마음의 추억을 달래는 ‘미사의 종’에 감미롭고 애절한 감동은 지금껏 멈출 수 없다. 빌딩의 그림자/황혼이 짙어갈 때/성스럽게 들려오는/성당의 종소리/걸어오는 발자국마다/눈물 고인 내 청춘/한 많은 과거사를 뉘우쳐 울적에/오, 산타마리아의 종이 울린다.//달도 없고 별도 없는 이 광막한 세상에 나를 던진 자는 누구인가. 어둠을 헤치고 정처 없이 걷는 이 발걸음- 저 멀리 니콜라(미지의 세계)에 종소리 처량한데 부엉새 울지마라 가슴 아프다고 한 참회의 노래도 있었다. 그리고 누구나 겪은 일이지만, 필자는 8살 때 국민학교(지금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때 그 노래는 평생을 두고 기억한다. “학교 종이 땡땡 친다. 어서 모여라.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학교 종소리에 맞춰 입학이 허락되었다. 필자는 교직에서 학생들과 50여년을 종소리와 함께 생활했다. 한 때 학창시절에는 영문학을 공부하여 미국 작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탐독했고, 스페인 내란을 담은 작품으로 소설의 무대인 스페인도 세 차례 다녀왔고, 작가의 여러 소설의 현장인 남미 카리브의 진주라는 쿠바도 순행했고, 미국 파라마운트 영화사에서 영화도 보았다. 떠나 보내는 한 해가 마치 영원한 이별 같이 느껴지는 연말에 가슴에 뭉클거리는 노래가 기억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외로운 이 나그네 길/안개 깊은 새벽 나는 떠나간다/이별의 종착역/아, 언제나 이 가슴에/덮인 안개 활짝 개고/비바람이 분다/눈보라가 친다/끝이 없는 고달픈 이 나그네 길’- 이별의 종착역. 손석우 작사 작곡에 손시향이 불렀던 이 노래. 영원처럼 노래 부른 가수도 미국으로 떠났다. 이 맘때면 전 세계적으로 애송되는 스콜랜드의 가곡 ‘올드랭사인’ 으로 곡명은 ‘그리운 옛날’이란 뜻의 노래로 한국에서는 ‘석별’이란 노래이다. 또한 ‘올드 브랙조’는 미국의 가곡으로, 흑인 노예 ‘조’와의 약속에 의해 만들어진 ‘젊고 즐거웠던 시절은 다 가고, 친구들도 이제 다 가버렸네’. 연말이면 애송되는 노랫말 속에, 후회와 아쉬움, 그리고 못 다한 애석한 꿈이 가사 속에 녹아 있다. 개신교 찬송가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며 부르는 찬송가에 새해의 꿈과 희망을 찬양하고 있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어둡던 이 땅이 밝아오네. 슬픔과 애통이 기쁨이 되니, 시온의 영광이 비쳐오네”. 여러 종류의 온갖 음향 중에서 가장 장엄하고 감명 깊은 것은 묵은 해를 보내는 제야의 종소리이다. 한 노사가 가는 세월 두고 남긴 시조에 ‘힘으로 가는 해를 잡을 길 바이 없어/예부터 가는 광음 꿈이라 일렀고야/이 인생 모르는 새에 늙은 건가 하노라’. 2023 계묘년, 마지막 남은 4일.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해 갑진년 대망의 해가 또 다시 뜨고, 구국의 종이 또 다시 울린다. 그 종소리는 교회 새벽 기도회를 알리는 구국의 소리이며, 천국에 가장 가까운 성스런 음악일 것이다. 앞길에 아름다운 희망이 있으면 이별도 축제와 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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